| 20년 동안 소년보호 시설, 보호처분 집행 현장에서 소년들과 동고동락한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기자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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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소년분류심사원 소년부 재판을 앞두고 위탁된 소년들에 대한 보호, 교육, 상담, 분류심사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
| ⓒ 최원훈 | 관련사진보기 |
나는 20년 동안 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으로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비행예방센터에서 비행청소년들을 교화하고 있다. 기사를 연재하는 목적은 현장 경험을 근거로 '촉법소년'과 '소년범죄'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소년원에 가면 살인, 강도, 강간이라는 강력범죄를 저지른 소년범들을 볼 수 없다. 이들은 애초에 소년부로 송치되는 대신, 형사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소년교도소로 가기 때문이다. 여론의 요구대로 강력범죄는 엄벌에 처하고 있다.
문제는 촉법소년의 강력범죄를 엄벌하기 위해 연령을 하향하자는 여론인데, 이는 보호처분을 받은 촉법소년의 실질적인 교육과 교화, 보호를 내실화하는 정책과 병행해서 추진해야 한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대부분의 촉법소년 범죄에 대해 보호처분으로 교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 자극적·단편적으로 보도되는 소년사건의 기사 몇 줄을 읽고 크게 분노하는 대중이 잠시 마음을 다스리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소년범죄의 재구성
지난 기사(
촉법소년 연령 하향, 이거 알면 쉽게 추진 못합니다 http://omn.kr/1zp16)에서 언급한 촉법소년 3이 저지른 강도상해 사건의 예를 보자. 이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은 범죄의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5명의 촉법소년이 가출해서 거리를 배회한다. 만 13살이 집을 나가기로 결심하고 실천에 옮기는 일은 쉽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각자의 이유로 5명의 촉법소년은 집을 나갔다. 가출 소년들에게 가출한 이유를 물어보았을 때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무엇일까?(현장에서 소년들과 상담하면서 수천 명에게, 수천 번을 물어보았다)
'친구들과 놀고 싶어서'이다. 이 말은 '집에 있기 싫어서'와 같은 말이다. 가정폭력과 학대, 경제적 궁핍, 부모와의 갈등, 학교생활 부적응 등의 원인 때문에 집에 있는 것이 너무 힘들고 싫다. 고생이 되더라도 가출해서 나를 이해해주는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이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가출'이 아니라 '탈출'이다.
어린 소년들이 거리를 배회하게 되면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촉법소년들은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다. 당장 배가 고프고 잘 곳이 없으니 아파트 주차장을 돌며 문이 잠기지 않은 차량 안에 들어가 돈을 훔친다. 편의점에서 과자와 라면을 훔친다. 5명의 소년들도 처음에는 절도를 해서 생활비를 벌었다.
이들은 원래 친구들도 있고 모르는 사이도 있었으나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모였다. 절도를 해서 돈이 생긴 소년들은 무인모텔로 갔다. 서로의 처지를 얘기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범죄를 모의했다.
역할분담을 했고 여학생이 스마트폰으로 채팅 앱에 들어가 '13살, 만남 원해요'라는 글을 올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한 40대 후반 성매수남이 접근했다. 조건만남이 성사됐다. 조건만남 상대역을 맡은 여학생이 성매수남과 함께 모텔에 들어갔다.
성매매를 하기 전에 나머지 공범들이 모텔에 들이닥쳐서 성매수남을 협박하고 폭행했다. 소년들은 체크카드를 강탈해서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뽑은 뒤 달아났다. 이 사건은 10년 전에 발생했지만, 이후로도, 지금도 소년사건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사건이다. 5명의 촉법소년들은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들의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경찰은 사건을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했다.
재판 전, 소년들은 소년분류심사원에 4주 동안 위탁되는 과정을 거쳤다. 비행환경과 단절하여 수용생활을 하면서 담임교사, 상담교사, 신경정신과 전문의, 분류심사관 등 전문가들의 교육과 상담, 치료를 받았다. 소년분류심사원은 이 과정을 통해 도출한 가장 적합한 보호처분 의견을 소년부 판사에게 제출했다. 판사는 이 자료를 근거로 소년원 등 보호처분을 결정했다.
이 자료(분류심사서)에 반영되는 내용은 소년의 가정환경, 학교생활, 교우관계, 범죄경력, 심리검사 결과, 생활태도, 상담내용, 신경정신과 전문의 의견, 범죄원인 분석 등이다. 단순히 '강도상해'라는 죄명을 보고 처분하지 않는다. 가정과 학교, 사회의 책임을 통감하기 때문에 이러한 교육과 상담, 분류심사의 과정을 통해 심사숙고한다.
5명의 촉법소년이 저지른 강도상해 범죄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한 집안의 가장인 40대 후반의 중년 남성이고, 반듯한 직업을 가진 회사원이다. 많은 사람들이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가족이 피해자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비난한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가족이 이 강도상해 사건의 피해자라면 연령 하향에 찬성할 수 있겠느냐?" 아니, "연령 하향만이 답이라고 확신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을 수 있다. 13살 가출 소녀가 아버지뻘 되는 성인과 조건만남 성매매를 통해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사회를 만든 것은 어른들이다. 우리는 촉법소년이 손쉽게 차를 빌리고 모텔에서 혼숙을 하고 술집에 드나드는 것이 가능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사회도 변했다
소년법 폐지 및 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내세우는 논거는 요즘 청소년들은 소년법이 제정된 1953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적으로 성숙했고, 정신적으로 영악해졌으며 그에 따라 범죄도 나날이 흉포화·지능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청소년이 영악해진 것은 정보화 사회의 영향이 크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정보화 사회는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범죄를 만들어냈다. 예를 들면, 초등학생과 중학생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휴대폰으로 손쉽게 온라인 도박사이트에 접속해서 불법도박을 할 수 있다.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 물품 판매 글을 올린 뒤 돈을 입금받고 물건을 보내지 않는 방법으로 사기범이 된다. 보호자의 명의로 가입한 휴대폰 번호로 렌터카 앱을 통해 차를 빌려서 무면허로 운전한다.
후배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뒷담화를 하는 것을 보고 불러내서 즉각적인 보복 폭행을 한다. 13살 소녀가 조건만남 앱을 통해 성인과 만나 성관계를 하기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속도와 영상의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10대들은 예전에 비해 더 충동적이고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다. 과거에는 없었거나 불가능했던 범죄가 스마트폰을 몇 번 터치하면 가능해지는 환경 속에서 범죄의 유혹에 더욱 쉽게 빠져든다.
1차 집단인 가족은 개인의 인성이나 가치관 형성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비행청소년의 상당수는 결손가정에서 성장하거나 가정이 해체되어 방임되고, 가정폭력과 학대의 피해자가 된다. 가정의 역할을 일부 대체해야 할 학교는 입시경쟁에 바빠 학교에 부적응하고 비행을 일삼는 소년들을 끝까지 감싸 안을 여유가 없다.
결국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하며 비행적 하위문화를 공유하는 비행친구에게 애착하게 되고, 이들을 준거집단으로 삼으면서 공동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소년범에 대한 혐오만으로는 안 된다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범죄자니까. 그 나이에 감히 범죄를 저질렀으니까."
드라마 <소년심판>의 심은석(김혜수 분) 판사가 한 말이다. 또한 언론에 보도되는 소년범죄 기사의 댓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 '책임의식'이다.
극 중에서 심은석 판사는 누구보다 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범죄의 이면을 면밀히 살피면서 엄정하지만 적절한 처분을 하기 위해 진정성을 가지고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한다. '그 나이에 감히'라는 말속에는 청소년들이 범죄에 이르기까지 일부 원인을 제공하고 보호하지 않고 방임한 기성세대와 사회의 책임의식이 담겨있다.
소년범죄는 한 번에,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범죄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분석한 뒤 소년에게 적절한 처분을 결정해야 한다. 보호처분 집행 기관의 시설과 교육과정을 혁신하여 보호처분을 내실화해서 재범을 방지하고 강력범죄로 진전되는 것을 막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혐오'만으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