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의사로 일하면서 우리 조상들이 남긴 다양한 옛그림과 한의학과의 연관성을 들여다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 온 문화와 생활, 건강 정보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기자말]
더운 여름날이 계속되는 요즘이다. 지구온난화로 한국의 여름은 점점 빨라지고 길어져 4개월 가까이 되었다고 하니, 이제 여름은 사계절 중 가장 긴 계절이 됐다. 
 
신윤복, 1813년, 비단에 담채, 각 119.3*37.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행려풍속도병(일부) 신윤복, 1813년, 비단에 담채, 각 119.3*37.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신윤복, 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CC BY

관련사진보기

 
신윤복의 행려풍속도병 중 두 폭의 그림이다. 행려풍속도는 풍속화의 일종으로, 선비가 세속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풍정을 그리고 있다. 산수화처럼 산과 나무가 화면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서민들의 다양한 일상을 담고 있다. 김홍도, 김득신 등 이름난 풍속화가들은 이러한 그림을 즐겨 그렸는데, 집안 장식을 위해 세시풍속도를 병풍 형식으로 그린 것이다.

이 행려풍속도병은 원래 전체가 몇 폭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현재는 4폭이 남아있다. 네 폭은 <수하납량>, <기려도교>, <야유>, <노상문승>으로 위의 그림 중 왼쪽은 <수하납량>, 오른쪽은 <야유>이다. 기려도교에는 '계유년 여름 혜원이 그리다'라고 쓰여 있어, 이 그림들이 1813년 여름날의 정경을 묘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수하납량>은 '나무 그늘에서 더위 쫓기' 혹은 '씨름'으로, <야유>는 '여름날의 정경', '여름의 휴식'으로 불리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기려도교>는 '나귀 탄 선비',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선비'로, <노상문승>은 '길을 묻는 아낙네', '승녀와 부녀자들'로도 부른다.

옛그림의 제목은 책이나 자료마다 달라서 때론 혼동을 주는데, 이는 그림의 작가인 화가가 직접 제목(화제)을 기록해 놓을 때도 있지만 후세 사람들이 그림의 특징을 잡아 쉽게 이름을 짓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수하납량(일부)
 수하납량(일부)
ⓒ 신윤복, 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CC BY

관련사진보기


<수하납량>의 화면 가운데에 있는 나무의 양 옆으로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른쪽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씨름판을 벌이고 있고, 왼쪽에는 갓과 의복을 모두 갖춘 선비들이 앉아있어 대조적이다.

웃옷을 벗은 채 씨름을 하는 두 사람 주위로, 더위를 조금이라도 덜 느끼기 위해서 상의를 탈의한 채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무에 기대어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옷을 입고 갓까지 쓰고 있다. 이들 모두 나무 아래에서(수하) 서늘함을 맞으며(납량), 더운 여름철을 이겨내는 공통점이 있다.
 
야유(일부)
 야유(일부)
ⓒ 신윤복, 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CC BY

관련사진보기


<야유>에서도 역시 나무 그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상의를 벗고 바짓단도 걷어 올린, 한껏 늘어진 모습으로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이들이 앉아 있는 곳을 감싸듯 돌면서 흐르는 계곡물은 한층 시원함을 더해준다.
 
신윤복, 18세기, 종이에 채색, 28.2 x 35.6 cm,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135호
▲ 혜원 전신첩_납량만흥 신윤복, 18세기, 종이에 채색, 28.2 x 35.6 cm,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135호
ⓒ 신윤복, 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CC BY

관련사진보기


위의 그림은 <혜원 신윤복필 풍속도첩 납량만흥>이다. '납량'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으스스하고 무서운 분위기의 납량특집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시원한 자연으로 피서를 떠나, 춤과 음악의 흥에 취한 양반들이 한껏 느긋해 보인다.

그림 오른쪽에 있는 네 명의 악공은 각각 장구, 피리, 해금을 연주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악공과 기생이 함께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하니, 아마 춤을 추는 여성과 악공은 한 팀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 우리가 더위를 피해 산으로 계곡으로 여름휴가를 가서 즐기는 것과 비슷한 느낌도 든다. 

더위 먹은 병

한의학에서는 풍한서습조화(風寒暑濕燥火)의 육기(六氣)를 우리 몸에 질병을 일으키는 6가지 원인으로 본다. 바람을 맞거나 너무 추울 때, 더울 때, 습할 때, 건조할 때, 화가 지나칠 때 병이 될 수 있다.

이중 서(暑)가 바로 '여름의 더운 기운'을 뜻한다. 그만큼 여름에 기력이 약해져 지치기 쉽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더위 먹은 병'이란 게 몸에 무리를 주는 하나의 질병임을 예전부터 인식했던 것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사계절 중 여름에 특히 건강을 관리하기가 힘들다고 강조하며, 여름철을 건강하게 보내는 방법 몇 가지를 제시한다.

1. 뱃속이 차고 설사하기 쉬우니, 찬 음식을 먹고 마시지 말아라.
2. 얼음물과 찬 과실을 많이 먹으면, 가을에 병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
3. 여름 한 철은 사람이 정신을 빼앗기는 시기므로, 정기를 굳건히 보양해야 한다.
4. 삼복더위에는 내리쬐는 더위가 기력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방사(성행위)를 더욱 삼가야 한다.
5. 생각을 고요히 가라앉혀 마음을 편히 가져라.

또한 인체를 하나의 작은 우주로 보아, 자연의 섭리에 맞추는 것이 건강해지는 길임을 이야기한다. 밤이 긴 겨울에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 충분한 잠을 자는 것이, 해가 긴 여름에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바쁜 현대사회에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산다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계절이, 날씨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변화하는 주위 환경에 몸이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노약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적당한, 어느 정도의 선을 정하고 지키는 것은 건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윤소정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nurilton7)에도 실립니다.


태그:#신윤복, #행려풍속도병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