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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도에 사는 한 어르신이 뻘배를 타고 갯벌로 나가 낙지를 잡고 있다. 6월 20일 낙지 금어기가 시작되기 전의 모습이다.
장도에 사는 한 어르신이 뻘배를 타고 갯벌로 나가 낙지를 잡고 있다. 6월 20일 낙지 금어기가 시작되기 전의 모습이다. ⓒ 이돈삼
 
'벌교' 하면 꼬막, '꼬막' 하면 벌교로 통한다. 보성 벌교는 '꼬막의 지존' 참꼬막의 주산지다. 참꼬막은 알이 굵다. 비릿한 냄새가 약간 난다. 육질을 손으로 만지면 오므라들 정도로 싱싱하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도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하다'고 언급돼 있다.

벌교꼬막의 4분의 3을 생산하고 있는 섬이 장도다. 청정갯벌을 자랑하는 여자만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장도는 '꼬막섬'이다. 장도를 꼬막섬으로 만든 건, 여자만의 갯벌이다. 무안갯벌처럼 황토가 섞인 것도, 장흥갯벌처럼 모래가 섞인 것도 아니다.

장도 주변 갯벌은 유난히 차진 진흙갯벌이다. 갯벌에 한 발이라도 들여놓으려 하면, 금세 푹 빠져든다. 늪 같다. 화장품 크림보다 곱고, 아이스크림만큼이나 부드럽다. 람사르습지, 습지보호구역,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세계자연유산으로도 등재된 갯벌의 '끝판왕'이다. 참꼬막이 여기에서 산다.
  
 여자만에서 채취한 참꼬막. 알이 굵고, 비릿한 냄새가 약간 난다.
여자만에서 채취한 참꼬막. 알이 굵고, 비릿한 냄새가 약간 난다. ⓒ 이돈삼
  
섬마을 어머니와 뻘배
 
 갯벌에서 뻘배를 타는 장도의 어머니들. 뻘과 갯물을 적절히 이용해 움직인다.
갯벌에서 뻘배를 타는 장도의 어머니들. 뻘과 갯물을 적절히 이용해 움직인다. ⓒ 이돈삼
 

뻘배는 갯벌에서 이동하는 도구다. 길이 2.5∼3m, 폭 25∼30㎝의 널빤지다. 갯벌에서 꼬막을 채취하는 어머니들의 자가용이다. 섬마을 어머니들은 이 뻘배를 타고 '뻘짓'을 해서 자식을 키웠다. 가족의 생계도 꾸렸다. 하여, '논 몇 마지기 하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뻘배다. 옛말에 '굴 양식하는 집에 숟가락은 없어도, 조새는 식구들 수만큼 있다'고 했던가. 김준의 책 〈바다맛 기행〉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꼬막섬 벌교 장도에는 한 집에 뻘배가 서너 개 있다. 20∼30년은 기본이요, 50여 년 동안 뻘배를 탄 어머니도 계신다. 매일 물이 들고 빠지는 갯벌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뻘배는 손이고 발이었다. 시집와서 밥 못 짓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뻘배를 못 타는 것은 큰 흉이었다. 뻘배는 생활이고 생계 수단이었지만 며칠 만에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마을 어장을 오가며 뻘짓을 해야 익혀지는 것이 뻘배 타는 기술이었다.'
 
뻘배는 갯벌의 특성을 알고, 뻘과 갯물을 적절히 이용해야 한다.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이용한다. 소설 <태백산맥>에는 '널빤지 위에 왼쪽 다리를 무릎 꿇어 몸을 싣고, 왼손으로 단지와 널빤지 끝을 함께 잡고, 오른발로 뻘을 밀고 나가면서, 오른손으로 꼬막을 더듬어 찾는다'고 적었다. 뻘배는 꼬막 채취 외에도, 낙지나 짱뚱어를 잡으러 나갈 때도 쓰인다.
  
 장도 신경마을의 아침 풍경. 갯벌이 사라진 바다를 배들이 오가고 있다.
장도 신경마을의 아침 풍경. 갯벌이 사라진 바다를 배들이 오가고 있다. ⓒ 이돈삼
  
 생태관광지로 이름난 순천만 갈대밭. 여자만에 자리잡은 장도의 북쪽에 있다.
생태관광지로 이름난 순천만 갈대밭. 여자만에 자리잡은 장도의 북쪽에 있다. ⓒ 이돈삼
 
장도는 여자만(汝自灣)의 한가운데에 떠 있는 섬이다. 양쪽으로 고흥반도와 여수화양반도를 끼고 있다. 북으로는 벌교와 순천에 맞닿아 있다. 남북으로 30㎞, 동서로 22㎞, 면적은 318.17㎢에 이른다.

여자만에는 두 개의 천이 흐른다. 순천동천과 벌교천이다. 순천동천이 여자만과 만나는 지점이 순천만이다. 벌교천이 여자만을 만나 몸을 섞는 곳은 장암리다. 이 일대가 2006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벌교갯벌이다.

득량만이 둘러싼 장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섬의 지형이 뛰어가는 노루를 닮았다고 '장도(獐島)로 이름 붙여졌다. 자연풍광 넉넉하고, 주민들의 정이 살가운 섬이다.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지정돼 있다.

섬의 하루는 뭍의 시간과 다르다
  
 장도 부수마을 안길에 그려진 벽화. 갯벌에서 뻘배를 타는 어르신을 모델로 그려져 있다.
장도 부수마을 안길에 그려진 벽화. 갯벌에서 뻘배를 타는 어르신을 모델로 그려져 있다. ⓒ 이돈삼
  
 장도 부수마을 회관 앞에 그려진 코끼리 벽화. 코끼리 유배와 관련된 해프닝을 아는 듯, 코끼리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장도 부수마을 회관 앞에 그려진 코끼리 벽화. 코끼리 유배와 관련된 해프닝을 아는 듯, 코끼리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 이돈삼
 
마을 안길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림의 주인공은 단연, 뻘배를 타는 어머니들이다. 뻘배를 타고 갯벌에 나가 꼬막을 채취하는 마을 어머니들이 실제 모델이다. 소와 코끼리 벽화도 만난다. 섬마을 할아버지가 28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소가 죽자, 땅에 고이 묻어줬다는 이야기를 표현했다.

코끼리 그림은 태종 때 코끼리 유배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코끼리가 사람을 밟아 죽였고(태종12년 12월 10일), 그 코끼리가 장도로 유배됐다는 <태종실록>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코끼리 유배 섬은 보성 장도가 아니다. 전라남도에는 '장도'라는 이름을 지닌 섬이 몇 군데 있다. 당시 코끼리가 유배된 섬은 순천부 관할의 장도, 지금은 간척과 매립으로 사라진 여수 율촌의 장도(현재 현대하이스코 자리)였다. 보성 장도가 '가고 싶은 섬' 사업을 추진하면서 '코끼리 유배 섬'을 빌려 썼을 뿐이다. 주민들의 의욕과 안이한 행정이 빚어낸 해프닝이다.
  
 소박한 장도의 산책길. 길 이름도 ‘꼬막길’ ‘뻘배길’로 붙여져 있다.
소박한 장도의 산책길. 길 이름도 ‘꼬막길’ ‘뻘배길’로 붙여져 있다. ⓒ 이돈삼
  
 장도에 있는 쌍둥이 우물. 신경마을 바닷가에 있다.
장도에 있는 쌍둥이 우물. 신경마을 바닷가에 있다. ⓒ 이돈삼
 
장도에 쌍둥이 우물도 있다. 신경마을 바닷가의 팽나무 뒤로 있는 작고 아담한 우물이다. 이 물을 마시면 쌍둥이를 낳는다는 얘기다. 실제 마을에 쌍둥이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래 전 얘기라고, 정확히 얘기해주는 주민은 없다.

신경선착장 인근 바닷가에 뱀굴(지네굴)도 있다. 커다란 독사나 지네가 산다는 곳인데, 마을주민의 장난에서 시작된 얘기라고 한다. 1960년대 중반 민간의 막걸리 제조가 금지되던 때였다. 몰래 막걸리를 만들던 주민이, 그 굴에 막걸리를 보관하려고 독사와 지네 소문을 퍼트린 것이라고.

섬에 소박한 산책길도 있다. 길 이름이 '꼬막길', '뻘배길'로 붙여져 있다. 신경백사장~벼락맞은바구~가느바구~대촌 당산나무, 일정금~하방금전망대~북두름산~부수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정겹다. 일정금과 하방금은 배를 댄 곳,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를 가리킨다. 부수마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해발 76m의 북두름산에서는 질펀한 갯벌과 주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장도 부수마을 뒤편의 밭 풍경. 땅콩이 많이 심어져 있다.
장도 부수마을 뒤편의 밭 풍경. 땅콩이 많이 심어져 있다. ⓒ 이돈삼
  
 장도 부수마을 풍경. 모내기를 마친 논에 집들이 반영돼 아름답다.
장도 부수마을 풍경. 모내기를 마친 논에 집들이 반영돼 아름답다. ⓒ 이돈삼
 
여자만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장도의 하루는 뭍의 시간과 다르다.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내는 바다의 시간에 맞춰져 있다. 하루 48분씩 늦어지는 만조를 기준으로, 섬사람들의 시계도 48분씩 늦어진다.

장도로 들어가는 배의 출발시간이 날마다 다른 이유다. 바다가 내어주는 시간에 따라 배가 운항한다. 벌교 상진항에서 '장도사랑호'를 타면 30여 분 만에 데려다주는 장도이지만, 오가는 뱃시간은 날마다 다르다. 갯벌섬에서 배우는 또 하나의 미학이다.
  
 장도사랑호. 바다가 내어주는 시간에 맞춰 벌교 상진항과 장도 신경항을 오간다.
장도사랑호. 바다가 내어주는 시간에 맞춰 벌교 상진항과 장도 신경항을 오간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보성장도#꼬막섬#여자만#코끼리유배섬#뻘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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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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