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아르코온라인극장'에서 상영된 연극 <터키행진곡>이 '제58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상을 받으면서 김풍년 연출가가 무대에서 밝힌 소감이다. 간지럼 태우며 날아오르는 머릿니 '서캐'로 비유하며 세상과 소통한 이유는 '이렇게 작아도 될까' 싶은 질문들로 창작활동을 이어온 그의 다짐이 담겼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김 씨의 서캐처럼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발상의 전환이 무대 위에서 완성됐다. 

수상작은 '죽음을 대하는 낯설고 경이로운 풍경'을 보여주는 작당모의의 2021년 창작 신작 <터키행진곡>이다. 아스팔트에서 태어난 애벌레가 그곳을 탈출해 더 뜨거운 석양으로 뛰어든다는 내용이다. 절망의 죽음을 존엄한 인간의 마지막 모습으로 그려낸 연극.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 앞에서 담대하게 발을 떼는 장면을 거창하지 않게 표현했다. 그가 이렇게 그린 배경에는 최근 몇 년간 용감한 죽음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무섭거나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것을 마주하는 당사자의 태도에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이것은 오스트리아에 전쟁하러 온 터키 군인보다 군악대에 시선을 모은 모차르트의 심정과 다르지 않다. 총, 칼보다 음악에 사로잡혀 인류 역사에 남을 곡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연출가의 상황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쉽지 않은 주제를 경쾌하게 표현한 연극의 배경이 궁금했는데, 여기에 몇 개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죽음을 마주하는 낯선 경험이 축적돼
 
 제58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상을 수상한 작당모의의 김풍년 연출가가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제58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상을 수상한 작당모의의 김풍년 연출가가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 필룩스

 
"죽음이 저와는 먼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결정적으로 다가온 순간이 있었어요. 김창완밴드의 'Forklift'(동생의 죽음에 헌정한 곡)을 들었을 때였어요. 이것이 진짜 레퀴엠이라 느꼈죠. 우리는 죽음을 위대하거나 거창하게 얘기하는데, 김창완 아저씨는 동생의 죽음 앞에 어떤 노래를 불러줘야 할지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2년 전, 할머니가 집에서 돌아가셨어요. 아흔에 한글을 처음 배웠는데, 매일 '미나리, 고구마, 어머니'와 같은 받침 없는 단어를 썼어요. 새벽 네 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죠. 나도 저렇게 온전한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을까 되물었어요.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제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모습을 봐라. 슬퍼하거나 울지 말라. 죽음의 문 앞에서 할머니는 소풍가기 전 날처럼 설레어 하셨죠. 할머니는 매일 가시던 밭으로 배추흰나비가 되어 날아가신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는 '죽음'이 위대하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낡고 젖은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믿는다. 그것은 오히려 "잘 표현했다. 이렇게 가벼워도 될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장송곡과 레퀴엠으로 뭔가가 더 부가되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잘 알았지. 그런 생각은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고, 이후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친절하지 않은 연극을 관람하는 방법

그는 작품을 관람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여느 연극처럼 서서히 타오르는 듯한 전개 구조를 가지지 않고 온갖 요소가 반복하는 연극을. 아마도 연출가만의 특징으로 자리잡은 그것을 '친절하지 않은 서사'라 불렀다. 이야기를 따라가려고 하면 전체를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지 말고, 보는 대로 느끼란다.

"제가 기본적인 기승전결의 구조를 못 쓰기도 해요. 그런데 늘 그렇게 써야하나요? 제 스승님은 '너는 왜 진주는 있는데, 줄이 없냐? 그래서 네가 진주목걸이가 될 수 없을 거다'라며 안타까워하셨죠. 그런데 줄이 없다면, 알만 가지고 작업하면 되잖아요. 제게 없는 것을 있는 척 하면 어색해지고, 제 옷이 아니잖아요."

그가 자주 듣는 93.1 클래식FM의 정각 시그널이 바로 5초짜리 '터키행진곡' 주제부다. 그걸 듣고 있으면 "두 번째 타임을 너에게 주겠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1~2시까지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정각을 알리는 '삐'라는 시그널이 울리면 다시 시작하라는 메시지로 들린단다. 마치 '리셋'하라는 느낌이랄까. 

"우리가 59분까지는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는 '죽음'을 경험하죠. 모차르트가 이제 다시 시작해도 된다며 리셋버튼을 눌러주니까 새 삶을 얻게 돼요."

모차르트의 론도처럼 끊임없이 변주·변조가 반복되는 연극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풍년 연출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풍년 연출가 ⓒ 필룩스

 
그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3악장 처럼 주제에 대한 변주와 변조가 뒤죽박죽인 론도 형식으로 연극을 만들었다.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 애벌레를 통해 죽음을 대하는 낯설고 경이로운 풍경을 터키풍으로 풀었다. 끊임없는 변주를 반복하는 스타일이 연극의 곳곳에서 드러났다. 

"한 명의 배우가 하나의 역할만 하지 않아요. 한 번 등장한 배우는 여러 명으로 다역할을 맡아요. 배우들은 되도록 퇴장을 안 하고 끝날 때까지 무대 위에서 삶을 삽니다. 순전히 배우는 '관찰된' 몸으로 여러 인물로 바뀌는데 관객들은 이 연극적 약속을 알아차려요."

이런 친절하지 않은 서사와 변주와 변조가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는 오히려 더 빠르게 이해하고 즐거워한다고 말했다. 마치 순간순간 큐브 돌리듯이 막 바뀌어도 관객은 불친절하게 바뀌는 것조차 즐거워한단다. 2년 전 그는 가족과 함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무작정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 중에 가장 중요한 일과는 가족이 서캐를 잡는 일이었죠. 다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다음날엔 더 빠른 속도로 번져있었죠. 넷이 아무리 잡아도 박멸속도보다 번식속도가 더 빨랐어요. 여러모로 피로감이 쌓이는 시간을 지나왔잖아요. 이로 인해 우리 같은 작은 존재들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우리는 더 빠른 속도로 질문하고 왕성하게 답을 찾아갈 거예요. 후미지고 쾌쾌한 소극장에서 서캐처럼 물어뜯고 긁게 만들고, 다시 멋지게 날아오를 거라는 믿음이 있죠. 죽음과 같았던 시간이 주는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허투루 받거나 머뭇 버려서는 안 돼요."

앞으로 더 작은 곳에서 더 작은 이야기로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면서 이번 백상예술대상의 수상이 어떤 전환점이 될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불안하고 두려운 부분이 있어요. 뭔가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쫄거나 어색해지지 않을까. 그 전에는 해도, 안 해도 그만이라는 자세로 용기냈는데, 이제는 뭔가를 이룬 듯 착각하고 거만해질까 무서워요. 지금도 열악한 조건 속에서 용기내고 있는 작업자들이 많아요. 그들이 제일 부럽습니다."
아르코온라인극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화 연극 김풍년 백상예술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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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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