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18 19:25최종 업데이트 22.05.1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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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사평화의 전당 ⓒ 백경록


대구에는 '노사평화의 전당'이 있습니다. 합리적인 노사문화 정착과 상생 분위기 확산을 위해 2017년 10월 고용노동부 공모사업으로 지어진 국내 유일한 근로자 복지시설입니다. 대구형 노사상생협력 모델의 일환으로 추진된 사업이기도 합니다. 

대구국가산업단지 내 부지면적 1만6500㎡, 연면적 5000㎡,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로, 건립비는 총 200억 원입니다. 


국비 100억 원, 특별교부세 12억 원, 시비 88억 원이 들어간 이 건물은 2021년 11월 개관됐는데,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지상 1층 노동사회와 산업화의 역사를 담은 노동산업역사관, 노동법 등을 알리는 노사상생체험관, 기획전시실, 근린생활시설과 지상 2층 다목적홀 등입니다.
         
하지만 노사평화의 전당을 찾는 시민들은 거의 없습니다. 근린생활시설 2개 중 1개는 공실입니다. 지역보도에 따르면 방문객은 하루 15명 정도로 예측된답니다. 필자가 현장을 직접 둘러본 5월 당일에도 이 건물을 찾는 시민은 거의 없었습니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주말에는 50∼60명 정도 찾는다고 하는데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200억 원이 들어간 이 건물, 찾는 사람들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아닌가요?

사실 노사평화의 전당을 향한 문제 제기는 오랜 기간 이어져 왔습니다. 사업 초기인 2018년 9월 18일 김동식 대구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어렵다를 넘어 심각한 수준인 대구의 노동현실은 외면한 채 노사평화의 전당 건립을 강행한다면 지역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상실감과 패배감만 안겨주는 건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 의원 우려대로 노사평화의 전당은 개관한 뒤 노동자 등 시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닌 외면 받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후 또 의회에서 문제를 삼으니 대구시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올해 신규사업으로 노사상생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 2022년 2월 대구시 일자리투자국장


활성화 대안으로 내세운 노사상생 프로그램은 무엇일까요? 자료를 살펴보니 시에서 집행한 올해 노사문화의 전당 운영비 10억 원 중 노사상생프로그램 예산 4억 원이 있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노사화합행사지원사업 등을 명목으로 1억9천만 원, 한국노총에 '노사상생 사례발굴 확산을 위한 국내·외 노동단체 초청 교류사업' 등을 명목으로 1억9천만 원 지급한다는 계획입니다. 

전당에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직접 프로그램을 세부적으로 운영하며 예산을 쓰는 게 아니라, 노사 대표 단체에 돈을 반반씩 주는 모양새입니다. 심지어 공모 과정도 거치지 않고 두 단체에 약 2억 원씩 일괄 배분합니다. 지급 방식도 문제지만 과연 이렇게 해서 노사평화의 전당이 붐비게 될지 의문입니다.
 
100% 시민모금으로 복원된 전태일의 옛집

 

대구 전태일 열사 옛집 ⓒ 백경록

 
대구에는 '노동'과 관련해 또 다른 유명한 곳이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옛집입니다. 노사평화의 전당이 추진되던 비슷한 시기에 시민모금으로 매입됐습니다.

1948년 대구 남산동에서 태어난 전태일 열사는 6살 무렵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1962년 다시 대구로 돌아온 그는 청옥고등공민학교(현 명덕초등학교 강당)에 다녔는데, 당시 이 옛집에 거주했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이 집에서 보낸 때를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회고했습니다.

그가 대구에서 살았던 옛집을 기념하자는 취지로 모인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은 2019년 창립총회를 기점으로 시민모금을 진행했습니다. 모금에는 2년 동안 시민 3천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저금통을 가져온 어린이, 상인, 비정규직 노동자, 예술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의 시민이 따뜻한 정성을 보탰습니다. 예술인들은 기부 전시회와 콘서트를 열어 성금을 모았습니다. 대구시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0년 2월 시민들의 염원이 담긴 모금액 5억 원으로 전태일 열사가 어릴 적 살았던 집을 매입한 뒤, 열사 50주기를 하루 앞둔 같은 해 11월 12일 문패를 달고 기념식을 열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전태일 열사의 친동생 전태삼씨와 이재동 전태일의 친구들 이사장,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전태일 열사의 청옥고등공민학교 시절 공부를 가르쳤던 이희규 선생님, 대구시민 등 5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대선 때는 이재명, 박용진, 안철수 후보 등이 찾아왔습니다. SNS에는 시민들의 방문 후기가 꾸준히 올라옵니다. 찾는 이 없는 노사평화의 전당과 대조적입니다.

현재 전태일 열사 옛집은 복원 청사진이 있지만 여전히 매입 당시 상태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비용 문제로 후속 사업이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노사 상생을 위한다며 단체에 거액을 나눠주는 대신,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 열사 옛집을 복원하고 기념공간으로 승화시키며 시민들이 계속 찾아올 수 있도록 예산을 쓰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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