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08 16:37최종 업데이트 22.05.08 16:37
  • 본문듣기
1920년대 후반 세계 대공황이 초래한 원두 가격의 폭락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커피 생산의 공룡 브라질이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생두를 불에 태우고, 바다에 던졌다.

이런 속에서도 관리들의 눈을 피해 생두를 몰래 숨기고, 바다에 던져진 커피를 몰래 건져서 파는 사기꾼들도 있었다. 가격 변화가 심하고, 그래서 미래가 불투명한 커피 시장이 만든 해프닝이었다. 나라가 망해도 내 이익만을 챙기는 사기꾼이 넘실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대공황이 아직 진행 중이던 1932년에 코나 커피 생산이 본격화된 하와이의 빅아일랜드 서부에서는 커피 생산 시기에 맞추어 학기제가 조정되기도 하였다. 수확시기인 8월부터 11월까지를 방학으로 정하여 어린이들이 편하게 커피 생두 피킹(손으로 따는 일)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1969년까지 유지된 미국 어디에도 없었던 '코나 커피 방학'이었다.

커피 만드는 시간을 줄여라

커피 소비의 거인 미국인들이 대공황으로 그리고 커피 생산의 공룡 브라질이 가격 폭락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동안에도 유럽에서는 새로운 커피 문화가 탄생하였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유럽의 커피 소비 문화에서는 남과 북이 명확히 구분되었다.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이른바 품질이 최상급인 마일드 커피를 선호하였다. 1인당 커피 소비량도 점차 증가하여 1인당 소비량 국가별 순위에서 이들 북유럽 국가들이 대부분 상위를 차지하였다. 이런 상황은 식민지하의 조선 언론에도 보도될 정도였다. 1933년 <중앙일보>(일제강점기 <중외일보> 후신으로 창간된 신문)는 1인당 커피 소비 순위에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가 1위에서 4위까지를 차지한다고 보도하였다(1933년 4월 3일 자, '珈琲이야기').

북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커피를 내리는 방식은 미국인들이 즐겨 쓰는 퍼컬레이터(percolator, 일종의 커피메이커) 방식이 아니라 드립식이었다. 미국처럼 몇 개의 대기업이 엄청난 양의 생두를 독점 수입한 후 대량으로 볶고 획일적으로 포장하여 가게 선반에 올려놓는 일은 없었다.

유럽의 소비자들은 미국과 달리 브랜드 명성이나 판촉 전략에 이끌려 원두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취향에 따라 원두를 선택하고 맛을 즐겼다. 향이나 맛에 따라 선호하는 커피를 골라서 즐기는 고급스러운 커피 문화였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음식처럼 일정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갈고, 드립하는데 최소한 5분~10분 이상이 소요되었다. 손님이 많으면 30분 이상 기다려야 했다. 맛있는 커피를 맛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기다림이었다. 유명한 카페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길게 줄을 설 정도로 19세기 후반 북유럽에서 커피 산업은 대호황이었다.

발명가들은 당시에 등장한 새로운 기술인 스팀 기계를 이용하여 커피 만드는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찾는데 몰두하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시도가 이루어졌다. 드디어 1884년에 이탈리아 토리노 사람 안젤로 모리온도(Angelo Moriondo)의 발명품이 특허를 취득하였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에스프레소 기계와 매우 흡사한 방식으로 커피를 내리는 대형 기계였다.

모리온도는 스팀 기계를 이용하여 1.5기압으로 물을 커피 가루에 투과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토리노 지역의 상품 전람회에 출품되었지만 이후 널리 퍼지지는 않았다. 기계가 너무 컸고, 안전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오직 특허 기록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모리온도에 이어 실용적인 에스프레소 기계를 발명하여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바로 루이지 베제라와 데시데리오 파보니(Luigi Bezzerra and Desiderio Pavoni)였다. 1901년에 밀라노 출신 음료업자 베제라가 포터 필터가 장착된 간편한 형태의 에스프레소 기계를 개발하였고, 1903년에 사업가 파보니는 베제라의 특허를 이어받아 완전히 개량된 형태의 에스프레소 기계로 진화시켰다.
 

베제라 커피 기계. BEZZERA - GALATEA 2GR(수동) ⓒ BEZZERA

 
1906년 밀라노 박람회에 에스프레소 커피(Cafeé Espresso)라는 이름으로 출품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어로는 '빠른 커피기계'(Fast Coffee Machine)였다. 물론 인기가 밀라노와 그 주변 지역을 넘지는 못하였다. 1920년대에 밀라노를 넘어 유럽 전 지역에 에스프레소를 유행시킨 것은 파보니의 경쟁자였던 빅토리아 아르두이노(Victoria Arduino)였다.

1933년에는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커피 기업 일리(Illy)가 세워졌다. 일리는 세계 최초로 자동 에스프레소 기계 일레타(Illetta)를 발명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창업자는 헝가리 출신 이탈리아 기업가 프란치스코 일리(Francisco Illy)였다. 식품화학자였던 그의 아들 에르네스트 일리(Ernest Illy)는 '일리'라는 커피 브랜드를 세계화하였다.

에스프레소 역사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밀라노의 카페 운영자 아킬레 가찌아(Achilles Gaggia)이다. 1938년 가찌아는 스프링-피스톤과 연결된 레버를 이용하여 바리스타가 스팀 압력을 1.5~2기압에서 8~10기압으로 높이는 기술을 발명하였다. 일정한 맛과 일정한 양의 커피를 안정적으로 내리는 기술이었다.

무솔리니의 흔적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 바리스타가 등장한 것이 같은 해였다. 이전까지는 영어 표현인 '바맨'(barman)이었으나, 독재자 무솔리니가 추진한 모든 언어의 이탈리아어화 정책에 따라 '바리스타'라는 단어가 탄생한 것이다. 지금의 전 세계 바리스타들이 이름에서는 무솔리니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무솔리니가 커피 역사에 남긴 두 번째 흔적은 모카포트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가정용 에스프레소 도구인 모카포트는 무솔리니의 알루미늄 산업화 정책의 산물이었다. 1933년 알루미늄 공장을 운영하던 알폰소 비알레티(Alfonso Bialetti)의 모카포트 발명으로 홈카페 문화가 시작되었다. 아프리카의 커피 원산지 에티오피아를 침략하여 아프리카 커피를 다시 유럽에 유행시킨 것도 무솔리니였다.
 

무솔리니(왼쪽)와 히틀러 ⓒ 위키피디아 퍼블릭 도메인

 
이렇게 시작된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의 에스프레소 문화가 라틴계열인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남유럽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이어서 스위스,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그리스 그리고 대륙을 넘어 오스트레일리아로 퍼져나갔다. 고급 아라비카종 커피에 저급 로부스타종 커피를 혼합하여 강하게 로스팅하고, 빠른 속도로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새로운 문화가 출현한 것이다.

로스팅을 강하게 해서 거의 숯 색깔이 나는 원두를 만들었고, 기계를 이용하여 내리는 시간을 확 줄인 새로운 커피의 세계였다. 대부분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하여 갈색 크레마(거품)가 형성되는 새로운 음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로부스타종 커피는 카페인 함량이 높고, 맛이 부드럽지 않다는 이유로 커피 애호가들에게서 외면당해 왔던 싼 커피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아라비카종 커피와 섞어 에스프레소를 만들면 강한 향과 진한 크레마를 형성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미국에서는 한동안 수입 자체가 금지되었던 로부스타종 커피의 소비가 에스프레소의 유행으로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에스프레소의 유행과 함께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우간다를 중심으로 한 중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로부스타종 커피 재배가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등장 초기에는 기계에서 내린 에스프레소 그대로 진하게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무솔리니 시절에는 출근 길에 스탠드바 형식의 카페에서 선 자세로 급히 마시고 일터로 향하는 문화가 등장하였다. 에스프레소에 다양한 첨가제를 넣어 마시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요즘 카페처럼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타서 제공하는 아메리카노 문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등장하여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동안 유럽 카페에는 아메리카노도 없었고, 미국식 대형 기업에서 제공하는 획일화된 원두도 없었다. 그들은 이윤이 아니라 커피를 지향하였다. 에스프레소는 유럽 커피 문화의 상징이다.

같은 양의 에스프레소에는 카페인 함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통 에스프레소는 28그램 정도의 소량을 데미타세라고 하는 전용 잔을 이용해 마시기 때문에 큰 머그잔에 150~200그램 정도를 마시는 아메리카노나 드립커피 한 잔에 함유된 카페인 양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

에스프레소 한 잔에 64.5밀리그램 수준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권고하는 카페인 하루 최고 섭취량은 성인 기준으로 400밀리그램, 청소년은 몸무게 1킬로그램 당 2.5밀리그램이다. 몸무게 50킬로그램 청소년의 경우 125밀리그램으로 에스프레소 2잔 정도는 안전하다. 안전하지만 매우 쓰다는 것이 함정이기는 하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 세계사 + 한국 가배사>(푸른역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