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피아노를 시작한 지 이제 네 달이 되었다. 겨울에 시작해서 봄을 관통하고 있으니, 두 계절을 피아노와 함께 했다. 이제는 피아노와의 허니문 기간도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어떤 곡을 치든지 마냥 설레고 두근거렸다. 초반에는 나의 취향이나 실력이 잘 가늠 되지 않아서 선생님과 함께 이것 저것 시도해 보는 시간들을 지냈다. 선생님은 매주 여러 종류의 낱장 악보를 프린트해서 나의 실력(?)을 가늠하셨다.

나는 한 곡 한 곡 완성 되어 가는 성취감을 느끼며 나의 취향을 파악해 나갔다. 개인적으로 팝송이나 재즈, 뉴에이지 같은 곡도 좋았지만, 소나티네 악보를 정말 즐겁게 쳤다. 뭔가 제대로 피아노를 배우는 느낌이었달까?

편하게 칠 수 있는 성인 교본 말고 뭔가 '정식으로 피아노 레슨 받는 기분'을 낼 만한, 한 마디로 폼 나는 교재로 배워보고 싶었던 차에, 소나티네 악보를 재미있게 쳤다고 말씀 드렸더니 선생님이 소나티네 교본을 추천해주셨다. 

피아노 교재가 어려워지고 생긴 일
 
 쉬운 곡을 마스터 하고 나니 조금씩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10분 안에 두어 번 밖에 연습을 할 수가 없었다.
쉬운 곡을 마스터 하고 나니 조금씩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10분 안에 두어 번 밖에 연습을 할 수가 없었다. ⓒ envato elements
 
그렇게 나는 소나티네 교본을 시작하게 되었다. 피아노 레슨은 주로 팝/재즈/뉴에이지 교본에서 한 곡, 소나티네 교본에서 한 곡 이렇게 두 곡의 진도를 나갔다. 레슨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배운 곡을 선생님 앞에서 쳐 보고, 보완할 점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두 권의 교본에서 각각 새로운 곡 진도를 나갔다.

어릴 적 그렇게 피아노를 치기 싫어했지만 그래도 체르니 100번은 겨우 끝냈던 경험이 있기에, 선생님이 처음 정해준 악보들은 하루에 한두 곡 씩 완곡할 수 있었다. 물론 더듬거리며 치기는 했지만 어려워서 중간에 곡을 끊어서 배워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선생님과 오른손, 왼손 따로 쳐 보고 익숙해지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합쳐서 연주해 보았다. 시간이 부족하면 양손을 합쳐서 치는 것은 숙제로 내주었다. 

피아노를 배우던 초반에는 틈만 나면 피아노 앞에 가서 앉았다. 밥 먹고 나서 잠시 앉아서 연습하고, 빨래 돌려 놓고 잠시 앉아서 또 연습을 했다. 함께 피아노를 배우는 동지인 남편과 아이의 방해가 종종 있었지만 (아니, 왜 내가 연습할 때마다 본인들도 연습한다고 달려 오는가!) 그에 굴하지 않고 피아노를 쳤다. 10분이면 그 주에 연습해야 할 곡을 여러 번 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쉬운 곡을 마스터 하고 나니 조금씩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10분 안에 두어 번 밖에 연습을 할 수가 없었다. 한 곡 당 2~3페이지 정도였던 연습곡들이 점점 길어지면서 4~5페이지가 되었고, 길어진 곡의 길이에 난이도까지 더해지니 전보다 더 많은 연습을 해야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후루룩 연습을 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들여 연습을 하고 또 해야만 겨우 들어줄 만한 연주를 할 수 있었다.

피아노를 함께 배우는 아이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아이가 첫 번째 곡을 치면서 멈칫멈칫한다. 틀린 부분을 반복해서 몇 번 쳐보더니 처음부터 다시 연결해서 쭉 친다. 아이 옆에 앉으면서 "오~ 연습하니까 금방 잘 치는데?"라고 했더니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두 번째 곡으로 넘어갔다. 이 곡은 난이도가 조금 더 있고, 조금 더 길다. 아이는 몇 번을 틀리면서 겨우 곡을 완성해 냈다. "한번 더 쳐볼래?"라고 했더니 당당하게 "아니, 두 번째 곡 말고 첫 번째 곡만 한 번 더 치고 오늘 연습은 끝 낼래"란다.

원래의 나라면 "그래도 한 번 더 쳐보지 그래~? 한 번 더 연습하면 더 잘 쳐질텐데"라고 이야기 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어려운 길보다는 쉬운 길로 가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번에는 내 차례. 피아노 앞에 앉아서 쉬운 곡부터 먼저 펼쳐 들었다. 쉬운 곡을 연습하며 쌓아올린 자신감을 바탕으로 어려운 곡도 연습 했다. 쉬운 곡으로 쌓아올린 자신감은 어려운 곡을 치면서 조금씩 좌절로 바뀌어 가는 듯하다가 어려운 곡이 조금 익숙해지고 덜 틀리게 되면 더 큰 자신감으로 돌아온다.

아직 나의 실력으로는 연습을 하면 그나마 나아지는 것이 체감 되어서 다행이었다. 그마저도 없었으면 나는 정말이지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한 곡을 열심히 연습해서 어느 정도 마스터했다고 생각해 다음 곡을 연습하고 나서 이전 곡으로 돌아오면 다시 익숙해지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조표가 서로 다른 두 개의 곡을 번갈아 가면서 치다 보면 플랫과 샾이 붙은 곳을 헷갈리기 일쑤였고, 느린 곡을 치다가 빠른 곡을 치면 박자가 늘어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두 번 치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다시 익숙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진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쉬운 곡과 어려운 곡을 번갈아 가며 모래성을 쌓는 아이처럼 자신감을 쌓았다가 조금 무너트렸다가 다시 쌓아 올리는 지난한 과정을 반복한다. 연습을 하면 하는 대로 실력이 쭉쭉 늘지는 않았지만 달팽이 기어가는 속도라도 나아지는 게 느껴질 때마다 연습에 보람을 느꼈다.

한 단계 넘어섰을 때의 희열, 아이도 느끼길

피아노와의 허니문 기간에는 마냥 즐거웠다. "그래, 시작이 반이지!"라며 일단 시작한 나를 칭찬했다. 하지만 마냥 장밋빛이기만 하던 시간이 지나가자 욕심이 올라오면서 어려움도 조금씩 생겨났다. 내가 치는 곡들을 유튜브에서 찾아서 들어보면 완전히 다른 곡처럼 들렸다.

전문가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들을 흉내내는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또 다시 피아노 앞에 가서 앉는다. 연습을 열심히 해서 양손을 실수 없이 치게 되었어도 페달을 밟기 시작하거나 셈여림표를 따지기 시작하면 또 금세 도로아미타불이 되곤 했다. 박자와 음은 물론이고, 셈여림에 페달을 밟으며 감정까지 실어서 치려면 연습만이 살 길이었다.

나의 아이는 아직까지는 피아노를 재밌어 한다. 하지만 허니문 기간이 지나고 나면 재미는 덜해지고 연습량은 늘어나 자칫 그만두고 싶어질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나의 아이도 나를 통해 연습을 꾸준히 하면 더 잘할 수 있음을 배우기를 바란다. 그리고 꾸준한 연습으로 한 단계 넘어섰을 때의 희열을 아이도 알게 되기를 바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아직도 내가 치는 소나티네는 어설프고 뚝뚝 끊기고 강약도 미미하다. 페달을 밟으며 멋들어지게 완성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음원에서 듣는 곡들의 1/100이라도 따라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시간을 내어 피아노 앞에 앉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의 개인 SNS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워킹맘부캐#피아노초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