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만 존재하는 비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언제든지 물러나야하는게 프로스포츠 감독들의 숙명이다. 그래서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져야 하는 감독의 운명을 흔히 '파리 목숨'에 비유하기도 한다. 2022시즌 K리그가 아직 시즌 초반인 4월에 불과하지만 추락하는 팀 성적 속에 벌써부터 자리가 위태로워 보이는 감독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현재로서 올시즌 파리목숨 1호가 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후보는 역시 김남일 성남FC 감독이 꼽힌다. 김 감독이 이끄는 성남은 9라운드까지 치른 현재 1승 2무 6패(승점 5)로 K리그1 12개구단중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성남은 최근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일 수원FC를 상대로 7라운드만에 첫 승을 신고하며 한숨을 돌리는 듯 했지만 6일 김천(0-3), 9일 전북(0-4)을 상대로 2경기 연속 대량실점을 허용하며 참패했다. 공격은 답답했고, 수비에서는 맥없이 무너졌다. 무기력한 경기력에 분노한 홈팬들이 패배 후 김남일 감독과 선수단에게 거센 야유와 질타를 퍼붓기도 했다.
 
김 감독은 실제로 사임 직전까지 갔었다. 김 감독은 김천전을 대패한 직후 "감독으로서 부족한 게 많다.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미래에 대해서 구단과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사실상 누가봐도 자진 사퇴를 암시하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구단에서는 계속 지휘봉을 잡아줄 것을 간곡히 설득했고 김 감독도 구단의 만류에 마음을 돌리며 자진 사퇴는 일단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전북전 참패로 부진은 계속됐다. 김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은 경기 후 서포터즈석으로 가서 고개를 숙였지만, 몇몇 팬들이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선수단을 질타하면서 오히려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2002 한일월드컵의 영웅 김 감독은 2020시즌을 앞두고 성남의 지휘봉을 잡으며 프로 사령탑으로 처음 데뷔했다. 성남은 지난 2시즌 연속 10위를 기록하며 치열한 강등 전쟁 끝에 가까스로 1부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그리고 올해는 초반부터 최하위로 추락하며 다시 유력한 강등 후보 0순위가 됐다. 이미 2016년 한 차례 강등의 아픔을 경험한바 있는 성남으로서는 다시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다.
 
김남일 감독의 성과와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현재의 성남은 과거 K리그와 아시아 무대를 휩쓸던 전성기의 성남이 아니고 시민구단으로서 1부리그 잔류가 현실적인 목표인 팀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성남은 올 시즌 간판 외국인 공격수 뮬리치의 완전 영입을 비롯하여 팔라시오스, 이종호, 권완규, 김민혁 등 알짜배기 전력을 대거 영입했다. 지난해 12월에는 260억 원을 들여 최신식 클럽하우스까지 설치할만큼 시민구단으로서는 투자 규모가 결코 적은 팀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하위권을 전전하는 성적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김남일 체제 이후 성남은 경기당 1골도 넣기 힘든 만성적인 골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2020시즌 27경기 24골-2021시즌 38경기 34골에 그쳤다. 올시즌도 9경기에서 7골밖에 넣지 못했다. 그렇다고 수비가 강한 것도 아니어서 실점이 벌써 득점의 세 배에 가까운 무려 20골을 내줬다. 공격에서는 빌드업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측면 위주의 단순한 공격루트에 선수 개인기량에 많이 의존하며 뮬리치의 원맨팀이 된 반면, 수비에서는 중원과 수비라인 사이에서 간격 유지가 되지 않아 대부분의 실점이 상대 크로스와 2선 침투에 너무 쉽게 공간을 허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 감독 특유의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인한 돌출행동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2020시즌에는 경기 종료후 심판 판정에 무리하게 항의하다가 퇴장당하며 잔류 경쟁이 한창이던 시즌 막바지에 감독이 자리를 비우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한 바 있다. 최근 사퇴 철회 해프닝도 부진한 팀 성적과 팬들의 과도한 비난으로 압박을 받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가뜩이나 어수선한 상황에서 수장의 경솔한 처신은 팀분위기를 수습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구단은 전북전 참패에도 일단 김 감독에 대한 신임을 확인했지만 지금같은 부진이 계속된다면 상황은 달라질수 있다.
 
성남보다 불과 한계단 위인 11위에 위치해 있는 수원도 박건하 감독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여 있다. 전통의 명가 수원은 현재 1승 4무 4패(승점 7)에 그치며 최근 7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져 있다. 지난 10일 라이벌 FC서울과의 '슬퍼매치'도 0-2로 완패했다.
 
수원의 레전드 출신이기도 한 박건하 감독은 2020시즌 후반기에 전격 부임하여 당시 강등위기에 몰린 팀을 구해내며 찬사를 받았다. 지난 2021시즌에는 팀을 상위스플릿에 복귀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극심한 부진을 드러내며 파이널라운드 무승에 그쳤고 전술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졌다.
 
최근의 수원은 강팀과 약팀을 가리지않고 주도권을 내주면서 이기기보다 지지 않는데 비중을 둔 듯한 지루한 축구를 펼치고 있다. 경기를 거듭하면서 전술이나 조직력이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지난 시즌에는 선수단의 줄부상과 구단의 지원 부족이라는 핑계라도 있었지만 올 시즌에는 상황이 나아졌음에도 경기력은 지난 시즌보다 더 나빠졌다는 점에서 박건하 감독에 대한 평가도 점점 악화되고 있다.
 
K리그2에서는 경남FC를 이끌고 있는 설기현 감독의 고전이 단연 눈에 띈다. 설 감독이 지휘하는 경남은 9라운드까지 2승 2무 5패로 K리그2 11개구단중 9위에 그치고 있다. 선두 광주와는 벌써 13점차가 벌어졌고 10위 부산, 최하위 안산(이상 승점5)과도 불과 3점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경남은 설기현 감독 부임 이후 K리그2에서는 상위권의 전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설 감독은 부임 첫해에는 팀을 승강 PO 최종라운드까지 끌어올리며 선전했으나 지난해는 6위에 그치며 2년 연속 승격에 실패했다. 경남은 성적부진에 대한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지난해 설 감독과 1년 재계약을 선택했지만 현재까지만 놓고봤을때는 최악의 한 수가 됐다.
 
설 감독은 개막전이던 서울 이랜드전부터 한때 자신이 지도했던 채광훈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으로 퇴장당하는 기행까지 선보이며 팬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 지난 11일 9라운드 김포전(1-2)에서는 올해 처음 프로로 전환한 신생팀의 홈경기 첫 승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부임 초기에 강한 개성과 자신감으로 주목받았던 '설사커'는 어느새 부정적인 조롱과 비아냥 대상으로 전락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감독 경력을 시작한 김남일 성남 감독과 더불어 설 감독은 '스타 출신 지도자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도 9라운드까지 5무 4패에 무승에 그치고 있는 K리그2 최하위팀 안산 그리너스의 조민국 감독을 비롯하여 외국인 사령탑들인 K리그1 대구FC의 가마 감독과 K리그2 부산의 페레즈 감독 등이 저조한 성적과 실망스러운 리더십으로 팬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과연 이들중에서 누가 먼저 시즌 끝까지 완주하지 못하고 불명예 퇴장하는 1호 감독이 나오게 될 지 팬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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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설기현 박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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