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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사람을 그리는 어반스케치를 하면서 서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생각합니다.[편집자말]
제물포 구락부 입구. 왕벚꽃나무가 멋지다 ⓒ 오창환
 
매달 두 번째 토요일은 인천 어반스케쳐스 정기모임(아래 정모)이 있는 날이다. 인천 어반스케쳐스 정모라 해서 인천 사람들만 가는 것은 아니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이번 정모는 역사적 유물이 몰려있는 송학동 일대다.

'서양 조계지의 사교클럽이었던 제물포구락부, 근대 한옥 양식을 재현한 옛 시장 관사 인천시민愛집, 이음 1977 등 근대건축과 가장 오래된 플라타너스 나무 등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송학동에서 만납니다(인천 어반스케쳐스 공지).'

오늘은 차를 가지고 가서 인성여고 주변 공영 주차장에 주차했다. 목적지인 제물포 구락부를 찾기 위해 언덕 위를 오르다 보니 역사현장 탐사를 나온 고등학생들과 선생님이 보인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서 언덕 정상 부근에 가니 그 유명한 맥아더 동상이 있었다. 동상에서 계단을 내려와 오른쪽으로 가면 제물포 구락부가 보인다.
 
제물포 구락부 입구 ⓒ 오창환
 
제물포 구락부는 외국인들을 위한 사교 클럽으로 만들어졌으며, 금속 지붕을 한 벽돌식 2층 건물로 우크라이나 지역 출신 건축가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이 설계하여 1901년에 문을 열었다.

내부에 바와 테이블 등을 갖춘 사교실, 도서실, 당구대 등이 있고 실외에는 테니스 코트가 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호화로운 건물이었다. 아래 한옥 터에는 일본인 사업가 코노의 별장이 있었다. 그 터에 들어선 건물이 인천시민愛집이다.

제물포 구락부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는 일본 관변 단체가 사용하였고, 1945년 이후에는 미군 장교클럽으로도 사용되었다. 이곳은 1946년부터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사용되었으나, 인천 상륙작전 와중에 포격을 맞아 건물의 상당수가 불탔다. 전쟁 후 다시 시립박물관 또는 자료실로 운영되었다.

참으로 오랫동안 시절의 아픔을 겼었던 제물포 구락부는 2007년 드디어 인천 시민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와 인천의 개항을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스토리텔링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2020년 미공개였던 1층의 석벽 공간을 전시장과 음악감상실로 꾸며 일반에 공개하였다.

밖으로 난 계단으로 2층으로 올라가서 제물포 구락부로 들어갔다. 건물 양쪽으로 넓은 홀이 있고 가운데 바 테이블이 있고 홀을 사이에 작은 방이 있다. 실내도 고풍스러운 옛 분위기를 잘 복원해 놓았다. 아마도 입구 홀에는 당구대를 놓고 가운데 작은 방은 도서관으로 쓰고 안쪽 홀은 연회장을 썼을 것 같다.

20세기가 막 시작하는 때의 은둔의 나라 조선의 제물포. 밖은 칠흑 같이 어두운데, 낯선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담배 연기 가득한 홀에서 당구를 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바 테이블에서 술을 받아서 안쪽 홀로 들어가 왈츠를 추는 영화 같은 장면이 잠시 떠올랐다.

사바틴은 독립문을 비롯해서 한국 최초의 커피하우스 정관헌과 한국 최초의 서양식 도서관이자 파티홀 중명전도 설계한 인물이다(관련기사 : 독립문에서 호텔까지... 이 모든 걸 만든 남자의 정체). 그런데 정관헌과 중명전을 보면서 뭔가 불편함을 계속 느꼈는데 제물포 구락부 보면서 그 원인을 알 것 같다.

모름지기 건물은 평면도로 보았을 때 길쭉하고, 옆에서 보았을 때 창문이 많으면 예쁘다. 그런데 이런 건물은 열효율이 나쁘다. 추운 지방일수록 정사각형에 가까운 평면도로 집을 짓고 창을 많이 내지 않는다. 사바틴은 우크라이나 출신이라 본능적으로 열효율이 좋은 건물을 설계한 것 같다. 정관원도 중명전도 제물포 구락부도 비교적 정사각형에 가까운 평면을 갖고 있고 창이 적어 답답하다. 그래서 내가 불편함을 느꼈나 보다.

제물포 구락부 실내를 그릴까 생각도 잠깐 했지만, 건물 입구의 왕벚꽃 나무를 보는 순간 밖에서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게다가 건물 입구는 드라마 <도깨비> 촬영 장소다. 오늘 날씨 참 좋다. 인천 스케쳐들이 하나둘 올라와서 인사를 나누고 간다.

건물은 흰색이여서 굳이 많이 채색하지 않아도 되고 문과 하늘, 무엇보다 나무 그리기에 치중해야 한다. 배우 공유를 생각하며 건물 입구에 사람 한 명을 그려 넣었다. 저 사람은 도깨비니까 채색도 하지 않고 그림자도 없다.

점심을 먹고 두 번째 그림을 그리려고 인천시민 愛집으로 갔다.

'이곳은 개항기 독일 영사관 부지로 공개 경매를 통해 불하되었으며, 오랜 기간 세창양행 등 독일계 소유의 부지로 활용되었다. 해방 후 인천 예악인들의 문화적 아지트로, 그리고 1966년부터 인천시장 관사로, 2001년부터는 역사자료관으로의 활용에 이어 2021년 7월 1일 인천 독립 40주년을 맞아 오롯이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완전 개방하였다.' - 인천시민愛집 리플릿

인천시민愛집은 절충식 한옥도 볼만 하지만 정원이 아름답다. 그리고 인천항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다. 인천 어반스케쳐들은 제물포 구락부는 대개 한 번씩 그려봐서인지 여기 많이 와 있다. 한옥을 그리면 가장 큰 문제가 기와지붕이다. 안 그릴 수도 없고 자세히 그리자니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초보 스케쳐들 중에는 한옥은 아예 패스하는 경우도 많다. 
 
인천시민애집을 후데 펜으로 그렸다. ⓒ 오창환

그런데 점심을 늦게 먹어 마감시간까지 1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그냥 후데 펜을 꺼내 펜 스케치를 했다. 보통 정모에 가면 오전에 1장, 오후에 1장 그린다. 오전 그림은 잘 그리겠다는 힘이 들어가서 묘사도 자세하고 채색도 화려하다.

오후 그림은 좀 지친 것도 있고 일단 한 장 건졌으니까 마음 편하게 그린다. 나는 내 그림은 오전 그림인지 오후 그림인지 모두 구별할 수 있다. 오후 그림이 마음에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연 다른 사람들도 내 그림을 보면서 그것을 구분할수 있을까?

코로나도 끝나고 날씨도 좋아서 이번 정모에는 오랜만에 많은 스케쳐가 왔다. 그래도 아직 방역 때문에 조심스럽기는 하다. 인천 어반스케쳐스는 지역 챕터로는 이례적으로 월간 혹은 연간 별로 온라인 오프라인 잡지를 발행한다. 운영진에 책 만드는 전문가들이 있어 가능한 듯하다. 재미있는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인천. 더 자주 더 자주 가고 싶다.
 
펜으로 그리면 빨리 그려서 좋다. 어반스케치를 하면 보통 이렇게 인증샷을 찍는다. ⓒ 오창환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게재될 여정입니다

태그:#제물포구락부, #인천시민애집, #인천어반스케쳐스, #사바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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