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공동행동 환경부 앞 시위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공동행동 환경부 앞 시위
ⓒ 한상욱

관련사진보기

 
지난 4일, 봄바람 순례단은 대전으로 향하기 전에 오전 세종청사 환경부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새만금 신공항백지화를 위한 천막농성단 활동에 잠시라도 연대하기 위해 환경부 앞 점심시간 홍보활동에 합류하였습니다.

환경부 앞에서 작년 12월부터 '새만금신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환경부 부동의 촉구'를 위해 농성을 시작한 지 4개월이 넘어갑니다. 그러나 환경부는 지난 3월 오히려 '조건부 동의'를 하였습니다. 환경부가 오히려 개발에 면죄부를 주고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였습니다.

점심시간에 쏟아져 나오는 환경부 공무원들에게 '조건부 동의'를 철회하라고 외치지만 이들은 아무런 응답도 없습니다. 바로 옆 망루에서 농성하고 있는 택시노동자에게 힘내라고 손을 흔들고 다시 길을 재촉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골령골 집단학살터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골령골 집단학살터
ⓒ 한상욱

관련사진보기


오후에는 대전으로 떠나 6.25 전쟁 시기, 대전 산내 골령골의 집단학살지를 찾아갔습니다. 골령골 학살사건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임재근 박사가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3년 전, 1950년 6월 28일부터 20여 일 동안 골령골에서 민간인 집단학살이 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은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보도연맹원, 여순사건, 제주 4.3 사건 관련자가 이 골짜기에서 학살 당하고 암매장되었습니다.
  
봄바람 순례단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유족회 전미경(75) 회장님과 회원들이 오셔서 환영해 주셨습니다. 전미경님은 아버지의 얼굴을 모릅니다. 그의 아버지 전재흥씨는 24살 때 골령골에서 학살당하였습니다. 당시 두돐인 딸을 업고 친구 모임에 다니는 자상한 아버지였습니다. 전재흥씨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지 6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딸은 연좌제로 가족이 파괴되고 온갖 수모를 받으며 외롭게 살아야 했습니다.

전미경님은 부여에 살고 있지만 수시로 골령골 학살현장을 찾아옵니다. 비가 오면 혹시라도 땅에 드러난 유골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 꼭 찾아봅니다. 비가 온 지난 일요일 젖은 땅에서 어린아이의 유치를 발견하였습니다. 희생자 가족들에게 학살의 현장은 과거가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행정구역에 '골령골'이라는 이름은 없습니다. 그러나 후세의 사람들은 이곳을 '골령'(骨靈)이라고 부릅니다. '골령'은 '뼈들의 영혼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뼈가 많이 뒹굴고 있어서 '뼈재'라고 불러지기도 합니다.

세월을 흘러도 저 아래 땅속에는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인 국가는 아직도 유해발굴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행여 골령골 산기슭을 따라 곳곳에 핀 진달래가 그날의 진실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골령골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유해는 1250구이며 반경 1km 지역에 7천여 명의 유해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6.25 당시 작전지휘권을 행사한 미국과 이승만의 지시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건입니다. 직접적인 가해자는 충남지구 방첩대, 헌병대 등 군인과 경찰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골령골 학살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골령골 학살지
ⓒ 한상욱

관련사진보기

 
1999년 재미 사학자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골령동 학살현장을 찾아냈습니다. 그동안 묻혔던 비밀이 드러나고 진실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영국기자 앨런 위닝턴은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라는 책에서 민간인이 학살당한 가장 긴 구덩이 길이는 182m였으며 크고 작은 구덩이는 약 1Km까지 이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골령골이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 된 이유입니다.

"1950년 7월 16일 인민군이 미군의 금강전선을 돌파하자, 남아 있는 정치범들에 대한 학살이 또다시 시작됐다. 이날 무수한 여자들을 포함해 적어도 100명씩 트럭 37대, 3700여 명이 죽었다."(당시 영국기자 앨런 위닝턴의 증언)

골령골의 조그만 조립식 사무실 외벽에 걸려 있는 학살현장 사진은 처참하여 차마 보기가 두렵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남은 생은 이곳을 위해 살아갈 것입니다. 여기를 찾아주어 가슴 깊이 감사합니다. 지나가다 여기를 쳐다보기만 해 주어도 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골령골 이야기를 알기 바랍니다. 앞으로 이곳에 평화공원이 만들어져 나의 아버지 이름 석자라도 남아있기 바라는 것이 제 일생의 소원입니다

나는 70년 동안 올가미에 묶인 채 살았습니다. 제 일생은 아직도 6.25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근데 앞으로 제 생애에도 못 벗어날 것 같아요. 정말로 전쟁만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저 같은 사람이 다시는 생겨선 안됩니다."(전미경님의 증언)


해설자는 골령골 민간인 학살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칠천명을 죽인 살인사건'이며 이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하였습니다.
 
산내골령골 사건 희생자 유족회와 만나는 문정현 신부
 산내골령골 사건 희생자 유족회와 만나는 문정현 신부
ⓒ 한상욱

관련사진보기


분단은 전쟁을 낳았고 전쟁은 학살을 낳았습니다. 평화가 사라진 자리에 독재와 군사주의가 들어섰고 우리의 내면에는 증오와 저주가 자리 잡았습니다. 사회는 여전히 반공 이데올로기가 독버섯처럼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70년 넘게 살아오면서 나라의 자주권은 사라졌고 한반도는 전쟁의 위기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과 권력은 '잘살아야 한다'며 개발과 성장을 명분으로 기득권 체제를 공고히 하였습니다. 국가폭력은 은밀하게, 때로는 당당하게 개인의 삶을 파괴하였고 힘없는 이들은 각각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봄바람 순례단은 골령골에서 한국현대사의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의 존재를 세상에 보일 수 없다

봄바람 순례길, 강정에서 출발한 지 20일째입니다. 청주지역 길동무들의 안내로 천안 살림교회를 찾았습니다.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신부님도 참여해 주셨습니다. 종교가 세상을 위로하기보다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살림교회 목사님은 '차별 없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모토로 성소수자 교인들에게 손을 내미는 교회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지역의 페미니즘, 우리의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거야'입니다.

천안지역 여성단체 활동가의 '잊혀진 피해자의 사건들' 안희정 사건 대법원 유죄 선고 이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으로 가해자는 감옥에 갔지만 피해자는 일상으로 아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김지은 피해자는 사회의 관심과 도움 없이 '온전한' 일상을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무지에 의한 2차 가해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김지은씨는 현재 가해자와 가해자가 속한 충남도를 상대로 민사소송 진행 중입니다. 재판부는 이미 대법에서 가해자의 성폭행 행위를 인정하였는데 피해자에게 신체감정을 받아 피해를 '입증'하라고 합니다. 가해자는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으며 범죄의 책임,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없습니다. 발표자는 '편견과 차별이 가득한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인생을 해체하면서까지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는 이유는 그저 인간답게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잊혀진 피해자와 간담회
 잊혀진 피해자와 간담회
ⓒ 한상욱

관련사진보기

 
참가자들은 성폭력 문제를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접근하지 말고 사회구조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공감하였습니다. 성범죄 피해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사회적 삶과 인생 전체를 걸고 싸우는 것인데 이 사회는 피해자 입장에서 서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다른 사회적 이슈에 있어서 누구보다 함께 했던 사람들도 성폭력 문제에 있어서는 판단을 유보하거나 침묵하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죽어가는 농촌 

천안 살림교회를 떠나 산업단지에 둘러싸인 예산군 고덕면 몽곡리를 찾아 주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마을 주민들과 그동안 몽곡리 주민의 환경피해에 연대해온 환경단체 회원들도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홍성에 있는 농촌‧농민‧농사를 위한 공익법률센터 '농본'의 변호사도 오셨습니다. 주민들은 농촌지역 개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고덕면의 폐기물 처리장과 산업단지 내 공장으로 주민들은 환경피해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산군의 삽교 효림마을의 헬기공장, 대술면의 채석단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봄바람 순례단이 방문한 고덕면은 오래전부터 주물단지가 들어서 주민들이 공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고덕면에만 4개의 산업단지와 농공단지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예정입니다. 산업폐기물 처리장이 설치되고 폐목재 처리시설이 증축되고 철강회사가 들어서고 환경오염 시설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공장에서 화학물질이 유출되고 폭발사고도 발생합니다.

바람이 불어도 냄새가 나고 오염물질이 쌓여 갑니다. 대기질 조사를 하면 벤젠과 미세먼지와 오염물질이 검출됩니다. 산업단지 안에 어떤 공장이 들어오는지 알려고 해도 군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반대운동을 하다 보면 농번기 일이 어렵고 공장에 들어서면서 농지가 사라지고 주민에 대한 업주들의 금품회유와 매수로 마을 공동체의 분열과 갈등이 심해집니다. 주민들에게 협박도 합니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20~30년 동안 들어선 공장으로 마을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동네 노인들의 표정이 어둡습니다.

산업단지가 들어설 때 주민 50%의 동의가 있으면 반대하는 사람들은 강제토지 수용까지 당하게 됩니다. 이제 농촌의 산업단지는 환경문제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인권과 생존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환경피해를 입는 몽곡리 주민
 환경피해를 입는 몽곡리 주민
ⓒ 한상욱

관련사진보기

 
주민들은 이제 '농촌은 평화가 없다'고 합니다. 그동안 국가산업이라고 참고 살았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와 억울해서 울화병이 생겼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지금까지 살던 곳에서 살고 싶다고 탄식을 합니다.

자식들이 농사를 짓고 싶어도 농촌은 어느새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역이 무너지면 도시도 무너진다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제발 우리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합니다.

시골에 저항이 없으니까 산업단지와 유해 폐기물과 공해산업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농촌의 희생으로 도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고 항변합니다. 그곳에 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농촌의 현실을 들으며 이렇게 심각한지 사실 알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고 자신의 목소리조차 내기가 어려운 분들이었습니다. 마을 분들은 봄바람 순례단에게 와주어서 고맙다고 하였지만 이 연대가 얼마나 힘이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함께 아파할 뿐입니다.

아픔을 모르는 시대
가난을 모르는 시대
무슨 외로움이 있어
한줄 사랑을 얹겠는가?


간담회에서 한 참석자가 읽어주신 김용만 시인의 '지게'라는 시의 한구절입니다. 공동체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다시 곱씹어 봅니다.

태그:#골령골 집단학살, #잊혀진 피해자, #농촌의 환경피해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함께 나누기 위해

이 기자의 최신기사우리는 모두 '봄바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