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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군청 앞에서 제488차 탈핵 순례 집회
 영광군청 앞에서 제488차 탈핵 순례 집회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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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순례길, 3월 28일은 제488차 영광 한빛핵발전소 영구 폐쇄를 위한 행동의 날입니다. 멀리서 길동무들이 오셨습니다. 핵없는 세상을 위한 고창군민연대 회원들, 서울의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의 활동가들과 고 백기완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 만들어진 '노나메기' 재단에서 오셨습니다.

지역주민들과 원불교 교무님들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지금까지 매주 월요일마다 탈핵의 깃발을 들고 영광군청에서 핵발전소 앞까지 생명평화 탈핵순례를 이어왔습니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영광군청 앞에서 탈핵순례 기도회를 마치고 도보순례를 하였습니다.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무지와 탐욕과 오만으로 생명의 존귀함을 망각하고 생태질서를 파괴하며 오직 인간만의 행복을 추구하여 왔나이다. "꺼지지 않는 불"이라는 통제불능의 원자력은 쓰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이미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지구 공동체의 생명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시한폭탄임을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원불교 탈핵 기도문 중에서)

핵발전소를 관리하는 한수원의 원전비리와 부실시공은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영광핵발전소의 콘크리트 격납건물 외벽이 떨어져 나가고 철근 노출, 그리스 누유 등 끊임없는 사건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설비 운전자들의 판단 오류로 출력이 급상승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원전 주변 주민들의 갑상선암 발생률은 전국 평균보다 3배가 높다는 대학 연구기관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들어설 정부는 "탈원전 백지화, 원전 최강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영광 핵발전소 앞 도보순례 후 집회
 영광 핵발전소 앞 도보순례 후 집회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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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운동에 앞장서온 원불교는 '덜 개발하고, 덜 만들고 덜 쓰는' 운동을 통해 핵발전소를 폐쇄하고 태양과 바람의 친환경 에너지로 대전환을 하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바꾸지 않으면 후쿠시마와 같은 재앙이 언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일입니다. 영광, 고리, 월성, 울진의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매일 불안한 삶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핵발전소 위험을 막는 것은 모두가 나누어야 할 사회적 책임입니다. 

노동자들에게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후 늦게 현대제철 순천 냉연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나러 갑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은 언제나 천막 농성장이 있습니다.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이 17년째입니다.

2011년 불법파견 소송을 시작하고 2심까지 승소를 하였지만 아직도 대법원 계류 중에 있습니다. 2021년 3월, 고용노동부는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사주는 어떤 움직임도 없습니다.

검찰은 고발된 현대차 정의선 회장과 안동일 현대제철 대표를 한 번도 소환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제철은 오히려 자회사를 만들어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늘리고 있습니다.
 
현대제철 순천 냉연공장 앞 비정규직 투쟁
 현대제철 순천 냉연공장 앞 비정규직 투쟁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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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순례단은 이번 순례에서 제주, 울산, 대구 등에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법은 기득권만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자본의 범법 행위가 드러나도 처벌하지 않습니다. 사법부는 재판을 오래 끌며 자본 측을 대변합니다. 약한 노동자들에게 이 나라의 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코로나로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노조도 거의 없으며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습니다. 노동의 평등함 없이 그 어떤 평화도 없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몫

봄바람 순례길 15일째, 3월 29일에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 묻힌 열사들을 참배하였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서울과 광주의 길동무들이, 광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은 망월동 구 묘역에 있는 조성만 열사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조성만 열사는 1988년 5월, 명동성당 내 교육관 옥상에서 양심수 석방과 통일을 염원하며 온몸을 던져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분입니다. 그를 잘 아는 친구들은 조성만에게 평소 '예수 같은 사나이'라는 별명을 부쳐 주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문정현 신부님을 찾아와 중앙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조성만 열사는 살아생전 사제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성만은 신부님에게 가끔 편지를 보내면서 서로 잊을 수 없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먼저 떠난 조성만 열사 무덤 앞에 선 문정현 신부
 먼저 떠난 조성만 열사 무덤 앞에 선 문정현 신부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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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순례단은 얼마 전 돌아가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의 묘를 찾아갔습니다. 배은심 어머니 묘비의 글씨는 신부님의 서체입니다. 열사묘역 안내를 해주신 호남민족민주유가족 협의회의 김순님은 배은심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군산 하제 팽팽 문화제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은 작년 봄, 배은심 어머니가 군산에 오셔서 '앞으로 함께 세상 아픈 곳을 찾아다니자'고 약속을 하였는데 이제는 지킬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80년 5월 광주의 열사들은 대동세상을 꿈꾸며 자신의 생명을 죽음과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 민주주의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며 힘없는 사람들의 절규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살아남은 자의 몫이 무엇인지, 망월동을 떠나며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배은심 어머니 묘소에서 참배하는 문정현 신부
 배은심 어머니 묘소에서 참배하는 문정현 신부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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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봄바람 순례단과 함께 하는 광주 시민사회 이야기 마당'이 YMCA 2층 무진관에서 열렸습니다. 광주 기후위기 비상행동, 광주 평통사의 '한미연합 전쟁연습의 문제',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의 '광주의 노동 현실', 광주여성민우회의 '선택이 아닌 생존문제-페미니즘, 천상홍연 프로젝트팀의 '퀴어가 여기 있다'의 발제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YMCA 무진관에서 열린 광주시민사회 토론회
 YMCA 무진관에서 열린 광주시민사회 토론회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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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낮음이 없고 차별이 없는 세상, 모든 생명이 공존하는 평화만이 다른 세상을 만나는 지름길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살고 싶다

오후에는 대양판지 장성공장 노동자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대양판지는 대양그룹의 계열사로 골판지 전문 제조업체입니다. 대양그룹의 이념은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입니다. 그러나 영산강의 지류인 황룡강에 폐수를 무단으로 방류하여 고발을 당하였습니다. 산재가 많은 사업장이며 그동안 노조를 탄압하여 부당노동행위로 처벌을 받은 기업이기도 합니다.

대양판지 앞에 도착해보니 회사 문밖에서 기다리던 노동자들이 환영을 해줍니다. 공장 밖 컨테이너가 노동조합 사무실입니다. 공장 입구에는 '직장폐쇄 철회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습니다. 지회장님에게 조합 상황을 들었습니다.

80명이 일하는 공장에 93대의 CCTV가 일상적인 감시를 합니다. 담배 피는 시간을 임금에서 제외합니다. 여름이면 40도가 훨씬 넘는 고온을 선풍기로 버틴 적도 있습니다. 화장실 다녀오는 것까지 감시를 당합니다. 조합원이면 주말특근을 제외시키며 회사가 세운 노조와 차별을 받습니다. 

회사는 다른 제지 회사에서 노조를 파괴한 관리자를 입사시켜 같은 방식으로 조합을 탄압합니다. 대양제지 노동자들에게 '노동인권'이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사회 자본의 수준이 참으로 저열하기 짝이 없습니다.
 
장성 대양판지 농성 노동자와 봄바람 순례길 만남
 장성 대양판지 농성 노동자와 봄바람 순례길 만남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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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영광핵발전소, #광주 망월동 열사묘역,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탈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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