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Icon)', 한 분야나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라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의 아이콘으로 우뚝 올라서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열정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반드시 1등이나 최고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각자의 방식으로 인생의 시련기와 콤플렉스를 극복해내며 만인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3월 23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146회에서는 '아이콘'을 주제로 전 프로게이머 홍진호, 먹방 유튜버 입짧은햇님, 배우 윤여정이 출연하여 각자의 인생 이야기를 공개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 tvN

 
홍진호는 '숫자 2의 인간화'라는 소개로 등장했다. 홍진호는 프로게이머 시절 준우승만 22회라는 진기록을 비롯하여 역대 2번째 스타리그 100승, 역대 2번째 스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 우승상금 2200만 원, 게임단 감독 취임일 2012년 2월 22일 등, 기묘한 징크스로 어느새 '2'라는 숫자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홍진호의 트레이드마크인 어눌한 딕션과 숫자 2 징크스를 결합한 '콩라인'이라는 신조어가 2인자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굳어지기도 했다. 홍진호 본인도 2와의 연관성을 굳이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먼저 자학개그와 농담의 소재로 삼는 등,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었다.
 
홍진호는 "2라는 숫자가 예전에는 그냥 놀림거리였다면 이제는 그냥 일상에 스며들었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선수 시절에는 당시 스타리그에서 불리한 종족으로 꼽히던 저그를 고수하며, 2인자라는 꼬리표에, 하필 부모님이 경기장을 찾을 때마다 지는 징크스까지 겹치며 이래저래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고,
 
"선수시절에는 2인자라는 별명이 트라우마였다. 내가 깨야 될 한계치를 남들이 정해놓은 느낌이었다"로 밝힌 홍진호였지만 고심 끝에 자신의 캐릭터와 소신을 끝까지 지키는 길을 택했다. 홍진호는 은퇴식 날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지만 2등도 많이 하면 기억에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서 기쁘다"라는 멋진 어록을 남겨 박수를 받았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 tvN

 
연예인들의 연예인으로 꼽히는 '먹방'의 아이콘 입짧은햇님(김미경)이 등장했다. 먹방에서의 대식가 속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의 어원은 지인이 한 가지 음식을 꾸준히 못먹는 햇님을 보고 "입이 짧다"고 평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햇님은 "여러 개를 먹어야 성이 찬다"고 밝혔다.
 
집안부터 대식가 혈통답게 하루종일 음식 메뉴에 고민한다는 햇님은 "일어나자마자 오늘은 뭘 먹지, 일주일 동안 뭘 먹었지, 제철음식은 뭐가 있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때그때 먹지 않으면 우리 삶이 몇 년이나 남았는지 모르니까"라는 어록을 남겼다. 유일하게 딱 한 번 입맛이 없었을 때는 남자친구에게 실연 당했을 때라고. 햇님은 먹방 시범을 보이면서 피자 세 조각을 겹쳐 만든 쌈에 스파게티까지 넣어먹는 남다른 스케일로 감탄을 자아냈다.
 
햇님은 "틀니를 언박싱할 때까지 계속 먹방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옛날에는 어둡게 지낸 시절도 많았다. 항상 자신감이 없었고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먹는 양도 많고 덩치도 컸으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으로 봤을 때는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 햇살이(구독자들)이 저를 알아봐주신 거다. 방송하면서 자존감이 많이 올라갔다"고 고백했다.
 
햇님은 "아프신 분들이 제 먹방 보면서 입맛을 찾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럴 때 뿌듯하다. 음식은 기본적이지만 생명과 직결되니까"라고 밝히며 "옛날에는 나의 단점과 안 좋은 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장점이 되고 사랑해주시니까 자존감이 더 높아진 것"이라며 보람을 드러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 tvN

 
오스카가 사랑한 명배우 윤여정이 마지막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시작부터 "여기 홍보하러 나왔다"고 돌직구를 날려 MC들을 당황시킨 윤여정은 듣는 이들을 '윤며들게' 한다는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윤여정식 화법이 화두로 떠오르자 쑥쓰러워했다.
 
강동원과의 일화를 언급하며 유재석이 '만나기 힘든 분들'이라고 이야기하자 윤여정은 "촬영장에 가면 다 있다. 비 맞고 있고 길에 자빠져 있고"라고 쿨하게 답했다. <유퀴즈>를 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안 봤다"고 고백하는가하면, 솔직히 TV시리즈 <파친코> 홍보 때문에 나왔다고 인정하며 "죄송하다 비굴해서"라고 고개를 숙이며 웃음을 자아냈다.

윤여정은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건 머리가 아픈 일"이라고 해외활동의 고충을 토로하면서 일화를 밝혔다. 시나리오를 주면서 '한국 배우는 오디션을 봐야 한다'는 제안에 윤여정은 배역에 대한 열정을 전하면서도 오디션은 거부했다고 밝히며 "원래 없는 사람들일수록 자존심이 있지 않나"라고 밝혔다.
 
하지만 윤여정은 자존심 강한 한국인 '선자'라는 캐릭터에 꽃히며 자신이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파친코>를 연출한 코고나다 감독은 "윤여정이 연기하는 순간마다 매료됐다. 그녀의 얼굴은 한국의 역사가 담긴 지도책같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윤여정은 뜬금없이 '유느님'이라는 별명의 의미를 질문했다. 당황하는 유재석 대신 조세호가 "신처럼 완벽하다는 칭찬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윤여정은 "별명도 과하다. 그렇게 바르게 살려면 너무 힘들지 않냐"며 재차 돌직구를 날리며 유재석을 안쓰럽게 보다가 문득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타락한 사람은 아니다. 나도 바른 사람이다"라고 고백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파친코>가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대작이라는 이야기에 윤여정은 "남의 돈은 관심없고 널 얼마 줬느냐가 중요하다"는 명언을 남기며 감탄을 자아냈다. 촬영 에피소드를 묻는 질문에 윤여정은 "매일이 촬영 에피소드다. 진짜 저 감독을 죽이고 나도 죽을까? 도대체 몇 번을 찍으라고 하는 건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 tvN

 
그러면서도 촬영을 마치고 들른 군산의 한 식당에서 팬이 보내준 사이다 한 병에 금세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던 에피소드를 밝혔다. "TV에 나오는 사람이 뭐라고. 나를 특별하게 여겨준 것이지 않나. 그러면 속상하고 힘들었던 마음도 사라지며 다시 촬영을 나간다"며 일상속에 선물처럼 다가오는 소소한 행복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전했다.
 
윤여정은 오스카 수상을 회고하며 "나도 믿기지 않았다. 반추를 해보니까 나한테 그건 '사고'였다"는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 소감은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윤여정은 "전 경쟁을 믿지 않는다. 우리 5명의 후보자 모두 서로 다른 작품과 역할에서 수상자다. 경쟁은 있을 수 없다. 전 그냥 오늘 좀더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라는 존중의 어록으로 현장에 있던 헐리우드 배우들까지 감동시켰다.
 
이어 윤여정은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이게 바로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라며 아들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전하여 웃음과 감동을 자아냈다. 윤여정은 당시 화제가 된 '일하는 엄마' 소감을 듣고 아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뒷이야기를 전했다. "아들들이 아니었다면 제가 일하러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미안한 건 일하는 여자였기 때문에, 아들에게 '엄마의 음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아들들에게 '집밥을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아들들도 '괜찮아, 그래서 우리 모두 말랐잖아'라고 하더라"며 역시 모전자전다운 면모를 드러냈다.

유재석은 할말은 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윤여정의 모습이 멋있다고 극찬했다. 윤여정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한 해 전 아카데미의 문을 먼저 두드린 것을 더 높게 평가하며 자신은 '운'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윤여정은 수상한 트로피들은 모두 지하실에 넣었다고 밝히며 "기를 받겠다고 상패를 구경하러 오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최화정은 아예 자기 집으로 가지고 오라더라"고 폭로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 tvN

 
윤여정은 1970년대 결혼과 함께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약 9년간을 살았다. 당시에는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공항 이민국에서부터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고. 하지만 이제는 공항에 가면 <미나리>를 언급하며 자신을 알아보고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에 오래 살고 볼일"이라며 격세지감을 드러냈다. 윤여정은 미국에서 고단한 시간을 보내던 시절, 모친이 가져다준 배와 깻잎을 넣은 된장찌개의 꿀맛같았던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윤여정은 "60세가 넘어서부터는 사치하고 살기로 결정했다. 그 사치란 좋아하는 작가, 감독의 작품을 돈과 상관없이 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나리>를 함께한 정이삭 감독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똑똑한데 조용하고 현명했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데도 나를 위해서 열심히 한국말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배려가 느껴졌다"고 밝혔다.
 
윤여정은 미국에서 돌아온 후 연기자로서 재기가 쉽지 않았던 과정을 밝혔다. 달라진 방송제작 환경, 화려한 주연배우에서 단역에 가까운 중견배우로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부담감, 이혼에 대한 곱지않은 시선과 사회적 편견 등으로 마음고생을 하면서 차라리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까를 고민하기도 했다고.

그때 용기를 준 것이 바로 김수현 작가였다. 김 작가는 "너 재주있어, 배우 다시 하면 돼"라는 말로 윤여정을 격려했다. 윤여정은 <사랑의 야망> 등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윤여정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어머니와 증조할머니의 추억을 떠올렸다. 윤여정의 모친은 부친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홀로 윤여정을 비롯한 세 자녀를 키웠다고 한다. 또한 윤여정은 어릴 때는 비위생적이라고 싫어했던 증조할머니가 윤여정의 부친인 손자를 잃고 장사익의 '하늘가는 길'을 부르며 애통해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중에는 할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윤여정은 "과학적으로 영혼이 없다고 하는데, 있었으면 좋겠다. 할머니를 만나면 죄송하고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다"며 지금은 매일 증조할머니를 위하여 기도한다고 밝혔다. 윤여정은 "<파친코>의 선자를 연기하면서 이건 우리 증조할머니 세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한 여자의 일생에서 이 땅의 수많은 선자들을 떠올린 것.
 
'윤여정처럼 나이들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윤여정은 "나를 롤모델로 삼으면 안된다. 나는 이랬다 저랬다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배우생활을 하면서 얻고 잃은 것에 대해서는 "얻은 것은 유명해진 것이지만, 이유없이 추켜세워지다가 이유없이 매도당하는 거품같은 것이다. 잃은 것은, 없다. 연기는 일로 했으니까. 사람은 사지육신이 멀쩡하면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후회도 없고 잃은 것도 없다"고 밝혔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윤여정은 늘 가슴속에 담아둔 김수현 작가의 명대사를 언급했다. "내가 대단하고 안타깝게 소중하면 상대도 마찬가지야. 누구도 누굴 함부로 할순 없어. 그런 권리는 아무도 없는 거런다. 그건 죄야" 대사를 낭독하며 윤여정은 "너무 잘쓰지 않았나. 김수현이 쓴 대사 중 최고의 명대사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생계형 배우를 자처하며 연기를 늘 일로 해왔다는 그녀는, 스스로를 예술인보다는 직업으로 생각했기에 대사 한마디, 기회 한 번이 더 절박해 매순간 완벽해지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직장인처럼 성실하게 연기를 하는 와중에도 남들이 하지 않은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다. 오스카 수상소감에서 '1등이나 최고보다 우리 모두 최중(最中)이 되면 안되나'는 그녀의 소감이야말로 그녀가 걸어온 삶과 연기철학을 함축해서 보여줬는지도.
유퀴즈 윤여정 홍진호 입짧은햇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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