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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대선 전국행동 '기후바람' 5일차를 맞아 충남 보령 석탄화력발전소를 찾았다. 아침 햇빛에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가다 마치 뭉게구름처럼 보이는 흰색의 연기를 뿜어내는 석탄화력발전소를 마주했다. 거대한 굴뚝과 뿜어져 나오는 연기, 서울에 사는 나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이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이제 익숙해진 풍경일 것이다.
  
보령석탄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충남도를 정의로운 전환특구로 지정하라" 기자회견
 보령석탄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충남도를 정의로운 전환특구로 지정하라" 기자회견
ⓒ 기후위기비상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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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엔 수도권의 전력수요를 공급하기 위한 대규모 발전설비들이 위치해 있다. 전국의 석탄화력발전소 개수의 절반에 달하는 29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충남에 위치한다. 그뿐 아니라 제철, 석유화학 공장과 같은 심각한 대기오염을 발생시키는 대표적인 온실가스 다배출산업들이 입지해있다. 차를 타고 다니면 송전탑과 공장들을 펼쳐진 논만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보령에 석탄화력발전소가 처음 지어진 것은 1983년이다. 이후 2008년까지 8호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지어지고 바로 그 인근에 2017년 신보령 1,2호기가 건설되었다. 수명이 30년이 훌쩍 넘은 보령 1,2호기는 2020년 12월 문을 닫았다.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발전노동자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발전노동자
ⓒ 기후위기비상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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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석탄화력발전소에서는 미세먼지와 오염물질이 많이 배출되고, 석탄발전소 폐쇄는 온실가스 저감에도 효과적이니 이는 분명 좋은 일일 테다. 하지만 이에 기뻐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바로 발전소 폐쇄로 일자리를 잃은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다. 간담회를 진행한 발전노조 관계자분의 설명에 따르면 보령 1,2호기 폐쇄로 16명의 노동자가 해고되었다.

16명. 언뜻 신문기사에서 스치듯 지나갈 하나의 통계일 수도 있다. 얄팍한 숫자에 담기지 못한 그들의 삶과 그 가족의 삶을 우리는 상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정부의 발전소 조기폐쇄 결정에서 보호받지 못한 그들이 과연 어디로 갔을지 말이다.

이것은 단지 16명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을 위해 더 많은 석탄화력발전소가 문을 닫을 것이다. 더 이상 새로 지어지는 석탄발전소도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 문을 닫는 석탄발전소, 그 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정부는 허공에 떠도는 공염불과 같은 대책들만 내놓을 뿐이다. 대선주자들은 에너지전환과 관련해 엄청난 공약을 떠들고 있지만 노동자들에게는 그 말뿐인 공약조차도 없다며, 한 노동자는 이야기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산업의 기반이 되는 발전산업에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죠. 발전소 일이 정말 힘들어요. '인생 막장'이라는 말이 탄광을 이야기하는 건데, 발전소 현장은 정말 옛날 탄광 같아요. 탄가루가 코, 눈, 귀 안 들어가는 데가 없어요. 그런데도 묵묵히 참고 일해왔어요. 하지만 지금은 (기후위기를 유발하는) 공공의 적, 나쁜 사람들처럼 평가받는 처지입니다."

석탄발전 노동자들은 자식세대를 위해 기후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 해결의 과정이 정의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환과정에서 일방적으로 희생되고,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대선과 기후정의를 위한 참가자들의 '바람'을 적은 투표지
 기후대선과 기후정의를 위한 참가자들의 "바람"을 적은 투표지
ⓒ 기후위기비상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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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망과 요구를 그저 일자리를 지키려는 이기적인 주장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위기는 늘 가장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온다. 석탄발전 폐쇄로 인한 영향이 노동조건이 가장 좋지 않은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찾아온 것처럼 말이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전환을 이야기할 때, 그 전환은 모두 함께 해야하고 그 부담도 함께 짊어져야 한다. 모두에게 정의로운 해법을 찾기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보령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석탄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난 이유다.

석탄가루를 뒤집어쓰며 전력을 생산해온 석탄발전 노동자만큼 현대의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고생해온 이들이 있다. 바로 농민들이다. 먹고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들의 수고에 의존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석탄발전 노동자들 만큼이나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사회적으로 조명받지 못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같은날 오후에는 보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홍성의 홍동마을에서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홍성의 홍동마을은 유기농업의 발원지다. 그 유명한 '오리농법'이 이곳에서 처음 시도되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으로 인해 오리는 우렁이로 대체되었지만, 아직도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농민들이 많다. 무경운, 무투입의 원칙을 지키는 자연농법 등 농업의 규모화와 기계화, 단작화에 맞서 대안적인 농사방식을 고민하고 시도하는 농부들도 있다.
 
홍성 홍동마을의 무경운 자연농 현장
 홍성 홍동마을의 무경운 자연농 현장
ⓒ 기후위기비상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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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생태위기 앞에서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고민하며 생태농업의 길을 선택한 농부들이 바라보는 지금의 현실은 어떨까. 30년 전 귀농하여 유기벼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민은 아무것도 기대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둘 수도 없는 정치에 대한 절망을 토로했다.
 
"지난 30년동안 제가 농사짓는 동안 농민은 계속 피가 말라가고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갔어요. 농사를 짓는 게 30년 전과 비교해보면 경험이 쌓였어도 지금이 더 농사짓기 어려워요. 예전에는 심어놓고 김만 매면 되었던 것도 지금은 제대로 잘 되는 게 없어요. 지금이 기후위기라는 걸 누구보다 피부로 절감하고 있어요. 30년 동안 농사짓고 살면서 제 나름대로 노력을 해왔지만 이제는 가망이 없구나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입다물고 조용히 농사지으며 살다가 빨리 죽기만 바라고 있어요. 사실 죽지 못해 사는 거지 이건 사는 게 아니라고."


우리나라의 농업인구는 전체인구의 불과 4% 남짓이다. 200만이 조금 넘는 농민들은 소수자 중에 소수자로 전락했고 그마저도 고령층이 대부분이다. 가만히두면 자연적으로 소멸하게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정치하는 이들은 농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홍성 홍동마을 밝맑도서관에서의 농민과의 간담회
 홍성 홍동마을 밝맑도서관에서의 농민과의 간담회
ⓒ 기후위기비상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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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근 기후위기를 둘러싼 논의에서 농민들의 주된 심정은 '억울함'이다. 벼농사를 지으면 메탄이 나온다며 논에 물조차 마음대로 대지 못한다는 것이다. 2030년까지 농촌진흥청은 탄소를 배출하는 각각의 농사행위에 대해 세부적인 배출계수를 계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 농민들에게도 탄소배출량이란 꼬리표가 따라붙고, 저탄소인지 아닌지가 새로운 인증체계로 도입되어 보조금과 직불금이 지급될 것이다.

과연 정부가 말하는 저탄소농법은 친환경일까. 현장의 농민들은 의구심이 있다. 기준만 다를 뿐 기존에 기계를 사용하여 대규모로 단작하는 농업에 맞추어진 친환경 인증제도, 직불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생태적으로 농사짓기 위해 작은 농지를 운영하는 소농은 지원체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는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나온 기후변화 대응대책이라는 것이 이러한 피상적인 지원정책이다.

농업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국내 배출량의 약 3%에 불과하다. 논에서 유기물이 썩는 과정이나, 소와 같은 가축의 소화과정과 가축분뇨 처리 과정에서 메탄과 아산화질소가 발생한다. 인간이라면 먹고살아야 하고, 이를 위해 농사짓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온실가스가 나온다면, 이는 감수하고 쓸데 없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 농민들의 토로이다. 탄소라는 잣대로 또다시 농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정책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가 얼마나 탄소를 배출하는지, 따지고 묻고 비교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기후위기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땅에 발붙이고 사는 농민들은 명쾌하게 이야기한다. 기후위기가 온 것이 생산성과 효율성에 사로잡혀 너무나 많은 소비를 했기 때문이라면,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 자체를 되돌아 보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단순하다. 우리의 삶의 수준을 낮추고 필요한 만큼 자급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중요하지만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자연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위기를 느껴온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기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런저런 복잡한 말들 속에서 길을 잃은 한국사회에 가장 변두리에 있는 농민들이 던지는 일침이다.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홍동마을의 빵집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홍동마을의 빵집
ⓒ 기후위기비상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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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 활동가입니다.


태그:#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바람, #기후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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