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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은 공허한 구호로서 난무할 뿐, 위기를 일으킨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정책과 공약은 힘을 못쓰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역행하는 '신공항 건설' '핵발전소' '석탄발전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노동자, 농민 등 기후위기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의 목소리는 외면받고 있다. 이에 전국 120여 개 단체들의 네트워크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은 2월 11일부터 "기후대선전국행동 '기후바람'"을 진행한다. 현재의 정치가 담지 못하는 유권자들의 '바람'과 목소리를 모아, 기후대선과 기후정의의 '바람'으로 한국사회의 정의로운 전환을 만들어가기 위해 기획되었다. "기후말고 체제를 바꾸자, 기후말고 대선을 바꾸자"는 슬로건으로, 2월 11일 삼척석탄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시작하여, 가덕도와 새만금 신공항 예정지, 경주 핵발전소의 주민, 보령의 비정규발전노동자와 홍성의 생태유기농민, 인천 영흥석탄발전소와 청주 LNG건설지역 주민들을 만났다. 아울러 2월 25~26일 서울에서 집중행동으로 기후바람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기자말]
새만금공항 예정지인 수라갯벌
 새만금공항 예정지인 수라갯벌
ⓒ 기후위기비상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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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기후바람은 "새만금 공항 백지화와 갯벌생태계 보존의 날"을 걸고, 군산 미군기지 앞, 새만금 수라갯벌 탐사를 진행했습니다.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해놓고, 국토교통부는 공항계획을 통해 전국에 10개 신공항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고, 그중 하나가 새만금 신공항입니다. 신공항 예정지 수라갯벌에 공항 건설이 시작되려면, 환경부는 국토부가 제출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동의해야 합니다. 올해 상반기, 환경부의 최종 협의 의견이 통보될 예정입니다.

환경부는 갯벌에 살아가는 생명의 삶터를 빼앗고, 결국 기후위기를 악화시켜 모두를 위협하게 될 신공항 개발에 동의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후바람은 환경부가 반드시 부동의 해야 하는 이유를, 피부로 직접 느끼기 위해 갯벌로 향했습니다. 매서운 눈바람을 맞으며, 흰발농게의 서식지로 알려진 곳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일생을 새만금을 터전으로 사시면서, 토건개발 세력에 저항해 오신 오동필 위원장님이 새만금 개발과정과 이곳에 담긴 이야기를 전달해 주셨습니다. 기후·생태계 붕괴에 직면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반드시 보호돼야 할 갯벌과 염습지를 정치인, 미군기지확장, 토건 자본만의 이득을 위한 적자 공항 건설에 희생시킬 수 없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입지선정, 유도로 건설 등의 정황을 보면, 새만금 신공항은 미군이 통제·관리하는 군산공항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새만금 신공항은 생태계와 지역 주민들의 문제일 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인권과 평화, 전 세계적 기후위기와 모두 연결된 문제입니다. 탐사에 앞서 진행되었던 미군기지 앞 집회에서 비상행동 황인철 집행위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사주의와 토건개발, 그리고 기후위기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힘없는 나라, 사회적 약자, 생태계의 희생으로 패권과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평화를 위한 운동, 생태계 보전을 위한 운동, 기후정의 운동은 하나로 연대해야 할 것입니다."
      
십여 년 전, 새만금을 매립할 때는 우리나라에 농지가 부족하다는 논리로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 넓은 갯벌을 눈물로 잃었지만, 거짓말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나고 나서 지금 새만금엔 카지노 개발, 대규모 산업단지 건설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수라갯벌은 새만금에 휘몰아친 개발 광풍 속 마지막 남은 갯벌입니다. 바로 이곳에, 국토부는 둑으로 물길을 막고, 3m가량 흙을 뒤덮고, 그 위에 아스팔트를 발라 활주로를 만든다는 계획입니다.

과거 새만금을 매립할 때, 수상 태양광단지를 건립 할 때도 멸종위기종, 생명들에 대해 어떻게 할 거냐고 시민사회가 따져 물으면 정부는 '대체 서식지인 수라갯벌로 다 이동할거다. 괜찮다'고 해놓고, 결국 마지막 남은 이곳까지 공항으로 만들어 미군에게 넘겨주겠다는 것입니다. 조금씩 갉아먹고 변명을 늘어놓다 결국 마지막까지 다 집어삼키겠다는 것이죠.
      
군산미군기지(군산공항) 앞 집회
 군산미군기지(군산공항) 앞 집회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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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갯벌 하면 발이 푹푹 빠지는 물컹물컹한 느낌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새만금은 원래도 발이 잘 빠지지 않는 하구 갯벌입니다. 걸어가는 길에는 큰 멧돼지 발자국, 새끼 멧돼지 발자국, 고라니 발자국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방해한 듯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배설물도 있었습니다.

눈보라 속 꽁꽁 언 발에 감각이 사라질 때쯤, 흰발농게 서식지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10년 전 바닷물을 막기 전에 무수히 많은 흰발농게가 서식하던 곳이라고 했습니다. 놀랍고 마음 아픈 점은, 해수가 잘 들어오지 않고 있는 지금도, 흰발농게 무리가 물을 기다리며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국토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흰발농게를 한 마리 밖에 못 찾았다고 적었습니다. 서식지에 흰발농게의 구멍과 흔적이 얼마나 많은데, 딱 한 마리만 발견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추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세월을 버텨내야 다시 물이 돌아올까요. 이들이 숨 막혀 죽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일부 학자들은 갯벌이 이미 죽었다고 했지만, 갯벌은 물이 들어올 때까지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켜가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합니다. 육지가 되는 게 아니라, 바닷물이 막혀 염습지로 천이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인데, 이미 쓸모없는 땅으로 바뀌지 않았냐며 개발을 해도 된다는 책상 앞의 전문가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수라갯벌에는 잘못된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행해지는 끔찍하고 기괴한 행위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류충돌 문제를 제기하자, 국토부는 폭음경보와 총으로 퇴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미군은 수라갯벌 근처 소나무를 모두 베서 새들을 쫓아냈습니다. 언제나 '눈' 앞에서만 치우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바로 그 논리로 지금의 기후위기가 발생했고, 해일은 가장 아래에, 가장 미세한 목소리를 지닌 이들부터 차례차례 숨을 졸라오고 있습니다.
  
수라갯벌
 수라갯벌
ⓒ 기후위기비상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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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차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그 어디에도 새로운 공항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갯벌은 기후재난에 증가할 해일과 쓰나미로부터 완충 역할을 하며 우리를 보호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탄소흡수원으로 기능하며 멸종 직전에 놓인 수많은 생명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을 구석까지 몰아붙여 학살하면서, 어떻게 우리의 멸종을 막겠습니까.

갯벌을 걷는 내내 하늘을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전투기가 쉴 새 없이 지나갔습니다. 기후위기 시대, 증가하는 군사적 긴장 속에 어떻게 우리가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겠습니까.  

공항의 증가로 기후위기가 가져올 재난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수십조 원의 돈으로 공항을 지어서 국토균형발전을 하겠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그 수십조 원으로 지금 당장 지역 공동체를 재건하고, 정의로운 녹색 일자리를 만들고, 기후재난 대책 마련에 쓰지 않는 걸까요? 우리는 더 이상 거짓된 말들로 덮여진 학살에 눈감지 않을 것 입니다.

5월 연푸른색, 붉은색 갖가지 색깔의 염습지가 펼쳐질 때 수라갯벌에 꼭 다시 와달라는 부탁을 들었습니다. 이 글에 담긴 구구절절한 논리와 글자 없이도, 장화에 발을 넣고 단단한 갯벌 모래에 발을 딛게 되신다면, 햇빛이 수많은 갈대를 붉게 물들이는 광경을 보신다면, 눈을 낮춰 알알히 맺혀있는 빨갛고 귀여운 염생식물 사이로 작은 고라니 발자국을 발견한다면, 당신도 반드시 듣게 될 것입니다.

긴 세월을 버텨내고 있는 흰발농게, 쉴 새 없이 날아가는 전투기를 피해 날갯짓하는 저어새… 마지막 고향에서 버텨내고 있는 이들의 아우성을요. 그 아우성이 곧 우리의 목소리입니다.
    
군산 미군기지 앞 정기 집회
 군산 미군기지 앞 정기 집회
ⓒ 기후위기비상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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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신공항 반대행동 활동가분들은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언제나 씩씩히, 연대하러 오신 분 한 분 한 분께 감사의 마음을 보내며, 반드시 막겠노라 결의를 다지고 세종시 환경부 앞에서 '신공항 부동의 하라' 천막농성을 이어나가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수라갯벌의 생명과 최전선 당사자와 연결된 우리의 절박한 목소리로, 행동으로, 함께 손을 잡읍시다. 많은 사람은 쉽게 이 문제에 고개를 돌릴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이 곳이 삶이기 때문에, 자기 삶을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없기 때문에. 그 무게를 견디며 오늘도 묵묵히 피켓을 들고, 펜을 잡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미 틀린 거 아니냐고 말할 때, 어떻게 나의 터전을 포기할 수 있냐고, 그런 건 선택지에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흰발농게는 오늘도, 바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고린 멸종반란 활동가입니다.


태그:#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바람, #기후대선, #새만금공항, #수라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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