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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관훈토론회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거판에 발을 들이지 않으시길 정중하게 요청한다"라고 발언했다. 여기서 문 대통령의 발언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집권 시 전 정권 적폐 청산 수사'를 공언하자 그에 대해 문 대통령이 사과를 요구한 것을 이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연 선거판에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심상정 후보가 틀렸다.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은 선거판에 발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자취에 답이 있다.

제17대 대선을 앞둔 2007년. 당시 제1야당인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선후보는 '잃어버린 10년, 참여정부 실패'를 외치며, 노무현 대통령을 두고 '경제를 망친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아래와 같이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2007년 6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참여정부 평가포럼' 초청 특강을 하고 있다. 이날 노 대통령은 "지금 7% 경제성장률 외치는 사람들, 멀쩡하게 살아있는 경제 살리겠다고 하는데 무리한 부양책이라도 써서 경제위기라도 초래하지 않을까 불안하다"며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를 정면 겨냥했다.
 2007년 6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참여정부 평가포럼" 초청 특강을 하고 있다. 이날 노 대통령은 "지금 7% 경제성장률 외치는 사람들, 멀쩡하게 살아있는 경제 살리겠다고 하는데 무리한 부양책이라도 써서 경제위기라도 초래하지 않을까 불안하다"며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를 정면 겨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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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전략 없는 대운하, 대운하 건설비는 단기간에 회수되지 않는 투자이다. (...) 한나라당 정권을 잡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게 좀 끔찍해요. 무책임한 정당이다." - 2007. 6. 2. 참여정부평가포럼 강연 중

"이명박씨가 내놓은 감세론이요, 6조8000억 원의 세수 결손을 가져오게 돼 있거든요. 6조8000억 원이면 우리가 교육혁신을 할 수 있고요. 복지 수준을 한참 끌어올릴 수도 있습니다. 이 감세론, 절대로 속지 마십시오. 대운하, 민자로 한다는데 그거 진짜 누가 민자로 들어오겠어요? 그런 의견을 말하는 것은 정치적 평가 아닙니까? 참여정부 안 그래도 실패했다고 하는데, 내가 이 얘기 아닙니까? 여보시오, 그러지 마시오. 당신보다 내가 나아. 나만큼만 하시오. 그 얘기입니다." - 2007. 6. 8. 원광대학교 특강 중

"참평포럼이 나를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한 것 아닌가? 나는 열린우리당에서 선택된 후보를 지지한다. 불변이다. 열린우리당이 선택한 후보를 지지하고, 그 후보가 또 어디 누구하고 통합해 가지고 단일화하면 그 단일화 된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내가 갈 길이다." - 2007. 6. 13. 한겨레신문사 요청 대담 중


노무현 대통령의 위와 같은 몇 가지 정치적 발언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을 이유로 주의 조치를 받았다.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판단한 노 대통령은 6월 21일 곧바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며 대선 기간 내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대선 지나고 나온 헌법재판소의 결정

헌재의 결정은 그해 12월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한 달여 뒤인 2008년 1월에 나왔다. 결정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노무현 대통령은 소속 정당을 위하여 정당활동을 할 수 있는 사인으로서 기본권의 주체가 된다. ②대통령은 국회의원과 달리 선거중립의무가 있다. 그러나 ③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는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표현행위만을 규제한다. 또한 대통령의 직무집행과 관련된 공적인 행위만을 규제한다. 따라서 대통령의 순수한 개인적인 영역까지 규제하는 것은 아니다. - 헌법재판소 2008. 1. 17. 2007헌마700 참조

여기에 헌재는 이런 사족을 덧붙였다. "다만, 대통령의 절대적인 지명도 및 그 지위와 업무의 성질로 말미암아 그의 '사인으로서의 기본권행사'와 '직무범위 내에서의 활동'의 구분이 불명확하므로, 순수한 개인적 영역은 매우 협소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헌재는 결국 구분의 불명확함을 변명 삼아 노 대통령의 발언이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에 해당하고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았다고 결정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비겁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관련해 헌법 제7조 제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위 발언들은 해당 규정이 금지하는 행위, 즉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해서 직업공무원에게 신분상 불이익을 주거나 직업공무원들을 선거에 동원하는 등 관권선거를 획책하는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노 대통령의 해당 발언들은 대통령의 직무활동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정당에 소속된 개인으로서 자당 후보를 지지하거나 타당의 정치적 비판에 대응하는 것은 대통령제 하의 대통령에게 주어진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 범위 내에 있다고 본다. 

오히려 송두환 주심 재판관의 반대 의견이 타당하다. 그는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에게 선거중립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통령, 선거 포함 국정 전반에 관련해 입장 표명하는 건 당연"이란 반대의견
 
2008년 1월 17일, 이강국(가운데) 헌법재판소장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았다며 노 대통령이 중앙선관위 위원장을 상대로 낸 헌법소원에 대한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2008년 1월 17일, 이강국(가운데) 헌법재판소장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았다며 노 대통령이 중앙선관위 위원장을 상대로 낸 헌법소원에 대한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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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은 국민의 선거라는 정치과정을 통하여 직접 통치권의 정당성을 부여받고, 단순한 정책집행 기능을 넘어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므로 국회의원과 같이 태생적으로 정치적 존재이며, 따라서 대통령이 선거를 포함한 국정 전반에 관련하여 정치적 입장과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필요한 것이라 하여야 한다." - 헌법재판소 2008. 1. 17. 2007헌마700 참조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대통령에게 정치적 중립의무 및 선거중립의무를 요구하는 곳은 없다.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한편,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을 의회에서 선출하고, 상징적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 특히 정파적 발언이 제한된다. 독일 연방대통령의 지위가 그렇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의 여왕도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상징적 국가원로로서 대통령이 아니다. 대통령제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선거에서 국민이 직접 뽑는 '정치인 대통령'이다.

현행 대통령제 하의 대통령에게 정치적 중립의무를 부과하고 선거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라고 강요한다면, 이는 대통령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게 되므로 헌법위반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대통령이 자당의 후보를 지지한다고 발언한들, 그렇다고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대통령의 뜻을 따라 후보를 선택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유권자들은 후보선택의 자기결정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한다. 2022년에도 대통령에게 정치적 중립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결국 국민 특히 선거권을 가진 18세 이상 유권자들의 인격권과 자기결정권을 부정하게 되는 반헌법적인 처사다.

정치인과 정치문화가 헌법과 헌법정신을 못 따라가면, 정치인과 정치문화가 바뀌어야지 헌법과 헌법정신을 억압할 일은 아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쏘아 올렸던 '대통령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 보장 요구는 비단 대통령 개인의 헌법적 권리 찾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권자들이 주체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헌법적 권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이번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대통령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헌법상 인격권과 후보자 선택의 자기결정권의 주체로서 유권자들을 존중하는 선거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남경국씨는 남경국헌법학연구소장입니다.


태그:#노무현 대통령 , #문재인 대통령 , #제20대 대통령선거, #대통령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 #후보선택의 자기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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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국헌법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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