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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2007년 대선에 승리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참혹한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그렇지만, 당선 전의 이명박 후보에게서는 그런 모습이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예언 같은 발언을 했을 뿐이다. 그해 10월 23일자 <국민일보> 기사 '정동영 대통합신당 대선후보 인터뷰'는 그날 정동영 후보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두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 억울한 꼴을 당할 것"이라고 발언한 사실을 보도했다.
 
이명박 대통령(가운데)이 2010년 9월13일 청와대에서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등 대기업 대표들과 조찬 간담회를 하던 모습.
 이명박 대통령(가운데)이 2010년 9월13일 청와대에서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등 대기업 대표들과 조찬 간담회를 하던 모습.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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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억울한 꼴' 이상의 참혹함을 노무현에게 안긴 이명박이다. 하지만, 당선 전에는 그런 미래상이 쉽게 예견되기 힘들었다. 이명박이 '내가 집권하면'이란 표현을 써가며 내놓은 발언은 '친기업 정책을 펴겠다' 같은 것이었다.

그해 10월 29일자 <경향신문> 기사 "이명박 '집권하면 친기업 정책 펴겠다'"는 이날 그가 대한상공회의소 특강에서 경제계 인사 300여 명을 앞에 놓고 그렇게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제대로 안 돌아가는 것은 친기업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자신이 집권하면 그것이 실현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특정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보다 노동자를 억누르는 친기업 정책이 사회에 훨씬 더 큰 해악을 끼친다. 그런 점에서 '내가 집권하면'을 전제로 했던 친기업정책 시행 역시 문제적인 발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지 않았던 이명박도 당선 뒤에는 험악하게 행동했다. 그는 검찰을 통해 노무현을 욕보이고 구속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결국 참혹한 상황이 벌어졌다.

당선도 전에 "적폐 수사" 거론하는 윤석열 후보  

그에 반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아직 당선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무서운 발언들을 하고 있다. 9일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집권 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수사를 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돼야죠"라며 강한 소신을 피력했다.

눈엣가시 같은 공수처에 대한 조치를 예고했으므로 검찰을 내세워 그렇게 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수사에 관여 안 할 것"이라고 단서를 달긴 했지만, 이 단서는 '문 정권 수사를 하겠다'는 발언과 상충된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8일 '힘내라 택시! 소통의 날' 정책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8일 "힘내라 택시! 소통의 날" 정책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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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이명박 중 누가 더 험악하게 행동할지, 그것을 비교할 기회가 생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대통령 권력에 대한 윤석열의 인식과 태도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점이다. 그가 집권하게 되면 주어진 권력을 공정하고 냉정하게 행사할 수 있을지, 국민의 것인 권력을 과연 국민의 것처럼 조심스레 행사할 수 있겠는지에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윤석열은 검찰총장에 대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저항했다. 검찰개혁 못지않게 법무부장관의 지휘권에 대해서도 저항의 몸부림을 보였다.

그런 그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수사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을 지휘하는 선을 훨씬 넘어 대통령이 검찰에 개입하는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 그런 발언을 서슴없이 입에 담고 있으니, 추미애 장관과 대립할 때 보였던 것과 모순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후보 입에서 나온 '전 정권 수사' 발언... 대통령이란 자리를 어떻게 보는걸까
  
2020년 6월 22일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현 국민의힘 대선 후보).
 2020년 6월 22일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현 국민의힘 대선 후보).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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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는 검찰총장 선거가 아니라 대통령 선거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되면 전 정권을 수사하겠다고 발언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드러낼 만한 발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렇지만 집권 뒤에는 용서의 정신을 실천했다. 보수세력이 여전히 막강한 정치적 현실도 감안한 것이겠지만, 전두환이 김 전 대통령에 존경심을 표한 데서도 느낄 수 있듯이 김대중의 용서는 진심을 담은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은 대통령 권한을 정치보복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에 관한 한, 그는 대통령 권한을 공기(公器)처럼 대했다. 대통령의 권한을 국민 공공의 것으로 대하고, 이를 사적 감정을 해소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이전 정권에 대한 공격을 예고하는 윤석열과 너무도 대비되는 모습이다.

'7시간 통화'에서 부인 김건희씨는 내가 정권 잡으면 무사하지 못할 거다, 우리가 안 시켜도 경찰들이 알아서 입건할 거라는 등등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부부의 장담이 실현된다면 한국 사회가 얼마나 큰 폭풍에 휩쓸리게 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측근 검사 가리켜 '독립운동' 운운... 윤석열의 위험한 생각  

윤석열이 위험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은 인터뷰의 또 다른 대목에서도 나타났다. 측근인 한동훈 검사를 독립운동가처럼 묘사한 부분이 그것이다.

그는 한동훈 검사를 가리켜 "이 정권에 피해를 많이 입어서 중앙지검장 하면 안 되는 것이냐?"고 말했다. 그런 뒤 "거의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며 "일본강점기에 독립운동 한 사람이 정부 주요 직책에 가면 일본이 싫어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랑 똑같은 것"이라고 발언했다.

일본의 반발이 무서워 독립운동가를 중용하지 않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처럼, 차기 정권이 문재인 정권을 두려워해 한동훈을 중용하지 않는 것 역시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굉장히 유능한 검사이기 때문에 아마 검찰 인사가 정상화되면 각자 다 중요한 자리에 갈 거라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한동훈 검사를 중용하리라는 생각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이 갈라선 근본 원인은 검찰 개혁에 있다. 검찰 개혁은 문재인 정권이 주도했지만, 이를 배후에서 추동한 동력은 시대정신과 국민적 요구다. 오래 전부터 제기돼온 과제를 문재인 정부가 제도적으로 구현시켰을 뿐이다.
 
2019년 11월 2일 수많은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광장 인근에서 ‘검찰개혁 여의도 촛불문화제’를 마친 뒤 국회 앞을 지나며 검찰개혁 입법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2019년 11월 2일 수많은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광장 인근에서 ‘검찰개혁 여의도 촛불문화제’를 마친 뒤 국회 앞을 지나며 검찰개혁 입법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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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그런 검찰 개혁에 맞선 한동훈을 "거의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는 결국, 윤석열 자신이 스스로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은 시대정신에 대한 저항이고 국민적 요구에 대한 저항인데도 이를 '거의 독립운동'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한국 검찰이 보여준 부조리의 심각성을 그가 제대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국민적 지탄을 받은 검찰 기득권을 지키려는 몸부림을 '거의 독립운동'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검찰제국'에 대한 향수가 그의 내면에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검찰 공화국'의 '공화국'은 좋은 표현이다. 이제까지의 한국 검찰은 민주공화국에 역행하는 일을 많이 했으므로, 과거의 검찰 권력을 회복하려는 시도는 검찰공화국이 아닌 검찰제국의 재건을 위한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윤 후보는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을 '거의 독립운동'으로 평가함으로써 과거의 검찰 권력에 대한 향수를 드러냈고, 집권하면 이전 정권을 수사하겠다는 생각을 입에 담기도 했다.

이는 그가 대통령 권력이 공기임을 크게 의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국민 모두를 위해 조심스레 행사해야 한다는 점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 '공기'를 다룰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케 된다.

태그:#대통령선거, #윤석열, #정치보복, #적폐수사 발언,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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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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