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민속 명절 설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설렘보다 걱정이 앞선다. 2020년 설에도 코로나19로 겁에 질려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전화해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절대 오지 말라"라고 방문을 자제했다.

자식들의 거듭되는 당부에 어르신들은 "애들이 아무도 오지 말라고 하라고 혔어"라며 찾아온 우리에게도 손사래를 치셨다. 사회복지사인 나는 돌봄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 상담하는 일을 한다. 그렇게 조심하며 맞이했던 설 명절이 벌써 세 번째가 됐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어르신은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대로 쌓아놓기만 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어르신은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대로 쌓아놓기만 했다.
ⓒ envato elements

관련사진보기

 
명절을 일주일 앞둔 지난 25일 어르신 댁에 방문하니 현관 앞에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식탁과 바닥에도 택배 상자가 어수선하게 놓여 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어르신은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대로 쌓아놓기만 했다.

"이번 설에는 못 온다고 애들이 보내왔어. 애들이 뭐 보냈다고 알려줬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이따가 뜯어봐야지."

눈이 잘 안 보여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뭐냐고 물어봐서 어르신 대신 택배 상자에 적혀 있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배추김치, 갓김치, 굴비, 사골육수 등 종류가 다양했다. 자식들이 아버지 혼자서 식사를 굶게 될까 봐 보내온 음식이며 생필품들이었다.

연휴가 길어지면 덜컥 겁이 나는 게 독거 어르신들의 걱정이다. 복지관 근처에 사는 한 어르신은 평일에는 복지관에서 나눠주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어르신은 도시락 한 개로 점심과 저녁, 두 끼를 해결한다고 좋아하셨다.

그런데 이제 설 연휴 기간인 5일 동안은 도시락도 받을 수 없다. 평소 경로식당에서 도시락을 받아드시던 어르신은 5일간의 식사가 걱정이라고 말씀하셨다.

"명절이 돌아오면 나는 마음이 더 힘들어. 복지관에서 도시락도 못 받잖어. 갈 데도 없고 집에 올 사람도 없고..."

끝내 말끝을 흐리고는 고개를 돌려 눈을 피하셨다. 그럴 때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마땅한 단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침묵으로 대신하자니 너무 무겁게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애써 목소리를 높여 평소보다 높은 톤으로 "오늘은 식사하시고 약은 잘 챙겨서 드셨어요?"라고 다른 이야기로 어르신께 말을 건네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어르신은 대답하셨다.

"그려, 잘 챙겨 먹었지. 걱정 마, 약은 잘 챙겨 먹어."

입맛이 없다면서 컵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어르신은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파서 주방에 서서 음식을 하는 것이 힘들다며 설날 떡국은 끓여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갑자기 다리가 더 불편해져 보조기가 없으면 아예 걷지를 못하니 밖에 나가는 것도 점점 싫고 귀찮으신 것 같다. 이젠 거의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TV만 보고 있다고 했다.

일주일 전 나도 명절 준비를 하려고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여쭤봤다. 시어머니는 지금 위험하니 집에 오지 말라고 하시면서 요즘은 항상 똑같은 이야기를 명절 전에 하신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무섭고 힘드니까 집에 오지 말거라. 그냥 동네에서 사다가 차례 지내면 되니까 아무도 오지 말고 어디 가지도 말고 집에 있거라."

매번 같은 말을 들으면서 가끔은 "그래도 될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번 설에는 어머니 혼자서 준비 다 해 놓을 테니 당일에 그냥 오기만 하라고 하셨다. 최근 2년간은 어머니 혼자 준비를 다 하셔서 명절 전날 시댁에 가면 할 일이 없다.

떡을 맞추고, 간식거리를 사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손주를 보고 싶은 마음에 오지 말라는 말씀과 다르게 버선발로 뛰어나오시곤 한다. 혼자 사시는 시어머니는 오히려 우리를 걱정하신다.

일하는데 힘들어서 이런 것(음식 장만하는 일)까지 시킬 수 없다며 다리가 아픈데도 혼자서 조금씩 며칠에 걸쳐 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신다. 그것도 모자라서 집으로 갈 때는 무언가를 한가득 싸서 차에 실어주신다.

집에 와서 풀어보면 참기름이며, 들기름, 조선간장, 참깨 볶은 것, 들깨가루, 잡곡 등 종류도 그때마다 다르게 다양하다. 그렇게 받아온 걸로 또 일년을 잘 먹게 되어 좋지만 받아 올 때마다 늘 마음이 편치 않다.

이번 설 명절이 시어머니에게도, 어르신들에게도 "코로나 때문에 집에 오지 마라!"라고 하는 말이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가득 모여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다복한 명절이 되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 기재함.


태그:#노인복지, #치매, #사회복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사는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야기 모두가 행복한 세상만들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