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5년 KTX승무원 노동자의 우울증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다. 단순히 고객과의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성희롱 등에도 노출되었다. 회사는 감정노동을 하는 이들에 대한 적절한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다. 노동자는 일에 대한 고충뿐만 아니라 회사가 자신들을 보호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가 컸다. 산재는 승인되었지만 노동자는 더 이상 회사에 대한 애정을 갖지 않게 되었다.

2020년도 또 다른 KTX승무원 노동자가 공황장애로 상담을 왔다. 그녀는 5년 전 우울증으로 승인된 노동자의 입사 동기였다. 5년이 지났지만 회사는 여전히 노동자에 대한 처우개선과 보호조치에 미흡했다. 다시 산재신청을 했고, 승인은 되었지만 내내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이 책 <일하다 마음을 다치다>는 노동자가 일을 하면서 발행하는 정신질환과 안타까운 자살이 노동자의 잘못이 아니라 회사와 조직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정신질환과 자살이 개인적 보상차원을 이상의 직장을 바꾸고 변화시켜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임을 알려 주는 책이다. 
 
일하는 사람의 정신건강 이야기, '일하다 마음을 다치다'
 일하는 사람의 정신건강 이야기, "일하다 마음을 다치다"
ⓒ 나름북스

관련사진보기

 
이 책은 5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제1장 '일과 정신건강'에서는 일이 어떻게 스트레스가 되는지, 직무스트레스와 그 접근방법과 측정방법은 무엇인지 알려준다. 직무스트레스가 병이 되지 않기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 이론과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제2장 '정신질환의 이해'에서는 정신질환의 개념과, 원인, 중요한 정신질환의 유형, 원인, 사례를 함께 제시하고 있다. 제3장 '자살의 이유는 알 수 없다지만'에 있어서는 '자살'이 한국사회 및 직장 내에서 개념화되기까지의 과정, 자살현황과 통계가 실제와 다른 이유, 업무관련 자살현황과 심리부검 등이 기술되어 있다. 제4장 '정신질환과 자살의 산재보상'은 정신질병의 산재 신청과 방법, 판정사례, 현재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방향을 제시한다. 제5장 '일하다 마음 다치지 않는 직장을 위해'에서는 법률상 노동자의 권리와 사업주의 구체적인 의무, 정신건강을 증진을 위한 접근방법 및 사례 등을 알려준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일터에서 발생한 정신질병이 노동자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와 조직의 문제임을 일관되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2020년도 정신질병 산재사건은 581건으로 많이 증가했지만, 평생 유병율 25.4%에 비하면 아직도 매우 적다. 자살도 80건 내외로 신청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아직도 정신질병을 자신, 가족 등 사생활의 영역으로 국한시키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 책은 실제 회사 내에서 받는 스트레스(직무스트레스)가 어떻게 정신질환이 되는 것인지 그 과정에 대한 이론적 접근(직업성 긴장모델, 노력-보상 불균형모델, 조직정의 모델)과 설명이 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접근방법이 노동자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울 수는 있다. 그렇지만 직무스트레스 원인과 분석방법은 앞서 정신질환이 노동자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설득함에 있어 필요한 과정일 수 있다.

셋째, 정신질환과 질병의 개념, 그 원인이 단순히 개인(가족, 유적 등)이 아니라 환경과 상호작용의 문제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인이 오해할 수 있는 원인, 진단기준, 취업이나 보험에서 불이익 여부, 약물중독 가능성, 치료비 등에 대한 상식을 넘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노동자가 어떠한 권리를 구체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지는 알려준다.

넷째, 산재 신청시 실무적 방법과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의 예방(1차, 2차, 3차)의 범위와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과 어떻게 지내야 하며, 자살예방프로그램의 내용과 방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기술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책의 대상이 조금 모호하다는 점이다. 거의 대부분 내용은 노동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부득이 직장의 개선과 변화라는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회사나 인사 관리자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살 파트에 있어, 최근 2020년 통계를 기반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2021년의 「자살예방백서」를 인용했다지만, 사망원인통계나 경찰청 통계 모두 2019년이 아니라 2020년 통계가 이미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자에 따라 책의 수준이 조금 높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재해보상파트에서 경위서 작성방법은 산재를 어렵게 인식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정신질환 산재에 있어 중요한 의무기록지 활용방법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나, 법령의 부정확한 사용(공무원연금법이 아니라 공무원재해보상보험법)이나 현재 공단 조사과정의 문제점(특히 특진의 문제점)을 기술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마지막으로 파트별로 실제 산재 정신질환 노동자와 그 가족의 목소리를 담았으면 보다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한다. 

2004년 전까지 철도기관사 노동자들이 부득이 사상 사고를 낼 경우 '손 씻기'라는 의식을 했다. 직접 시신을 치운 이후 운행을 마치고, 사건경위서를 쓴 이후 소주를 부은 그릇에 손을 씻는 행위를 말한다. 이후 몇 명의 노동자들이 자살했고 알려지지 않은 많은 노동자들이 괴로워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나서 싸웠고, 예방프로그램과 상담시스템을 교섭을 통해서 만들어냈다. 

이 책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아픔과 당신 가족의 자살은 무엇 때문이냐고. 이제야 조금씩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고, 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누군가 마음이 아픈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다면, 이 책은 그런 손을 내밀어 주는 '친구'와 같은 역할을 해 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노보연 회원이자 공인노무사인 권동희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일터> 2월호에도 게시됩니다


일하다 마음을 다치다 - 갑질 고발과 힐링을 넘어, 일하는 사람들의 정신건강 이야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은이), 나름북스(2022)


태그:#과로자살, #정신_건강, #산업_재해, #자살, #산재
댓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