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반려인들의 언어'입니다. [편집자말] |
"은이야, 치카하자!"
매일 밤 잠들기 전 내가 반려견 은이에게 건네는 말이다. 칫솔을 보여주면 은이는 살짝 으르렁 소리를 낸다. '싫다'는 의미다. 하지만 달콤한 반려견 전용 치약 냄새에 금세 혀를 낼름거리고 나는 그 틈을 타 얼른 은이의 입에 칫솔을 집어 넣는다. 그리곤 즐거운 푸념을 한다. '정말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몰랐어. 밤마다 개를 양치시키다니.'
은이가 내 삶에 들어온 후 나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은이가 홀로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외출은 가급적 반나절 이내로만 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1일 1산책을 하며, 매일같이 은이의 응가를 관찰하며 건강상태를 살핀다. 이렇게 지낸 지 6년 6개월째에 접어든 요즘. 나는 내가 사용하는 언어마저 달라졌음을 느낀다.
인간이 만든 모든 세상에는 그 세상만의 언어가 있듯, 반려인의 세계도 그렇다. 반려인들의 커뮤니티에서 독특한 말들이 쓰이기 시작했는데, 이 중 몇몇은 널리 퍼져 반려인 사이에서 '표준어'처럼 자리 잡았다. 이 말들엔 반려인들의 애틋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우리 집에서 자주 사용하는 반려인의 언어를 소개한다.
'발사탕'은 그만!
"은이야, 발사탕 그만! 발은 사탕이 아니야!"
우리 집에서 이 말이 들린다면, 그건 하루가 시작됐다는 의미다. 은이는 아침마다 식구들을 깨워놓은 뒤, 자신은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이불의 가장 푹신한 부분에 얼굴을 파묻고 '쩝쩝' 소리를 낸다. 자세히 보면 자신의 앞발을 시뻘게지도록 핥고 있다. 은이의 버릇 중 하나인데 이렇게 개가 발을 핥아대는 것을 '발사탕'이라고 한다. 마치 발을 사탕처럼 쭉쭉 빨아댄다고 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고양이에게 발을 핥는 행위는 자연스런 행동이지만, 개에게 발사탕은 건강하지 못한 버릇 중 하나다. 개들이 발사탕을 하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로 파악한다. 간지러움을 유발하는 질환이 있어 발이 가렵거나 혹은 혼자 있거나 심심할 때 눈 앞에 보이는 발을 핥으며 위안하던 것이 버릇이 되어버리거나.
은이가 발을 핥는 이유가 둘 중 어느 쪽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알러지성 가려움 때문이라 생각은 하지만, 여행을 가거나 외출을 했을 때는 전혀 발을 핥지 않는 것을 보면 심심해서일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은이의 발사탕은 내게 늘 '미안함'을 유발한다. 알러지 관리를 잘못해준 것도 내 탓이고, 심심하게 놔두어서 버릇이 되게 만든 것도 왠지 내 탓인 것만 같다.
특히 습한 여름에 발사탕이 더욱 심해지는데 몇 해 전 장마철에 심한 발사탕으로 습진이 생긴 후부터 은이는 미용할 때마다 발의 털을 짧게 민다. 털이 긴 채로 침에 젖어 있으면 습진이나 피부염에 더 잘 걸리기 때문이다. 엊그제도 은이는 미용을 하면서 발등의 털을 밀어 올렸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그 발이 유난히 안쓰러워 보였다. 은이의 발을 볼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다짐한다. '발등털 밀어 올리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더 잘 케어해줄게. '
매일 보고 싶은 '우다다'와 '똥꼬발랄'
'발사탕'이 되도록 하고 싶지 않은 말이라면, 점점 더 간절하게 자주 내뱉고 싶은 말도 있다. 바로 신날 때 질주하는 모습을 담은 '우다다', 사고를 친 후에도 금세 발랄하게 뛰어노는 것을 일컫는 '똥꼬발랄'(이 두 말은 고양이에게도 많이 사용한다)이다.
'우다다'는 개들이 갑자기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는 행동을 말한다. 은이는 목욕 직후나 혼자 집을 지키다 식구들이 돌아왔을 때 '우다다'를 한다. 목욕 후 털을 말린 은이는 개운한 느낌 때문인지 거실을 매우 빠른 속도로 뛰어다닌다. 식구들이 귀가했을 때에도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우다다' 세리머니를 한다.
이런 행동들은 내겐 은이가 건강하고 활력 넘친다는 의미이기에 지켜볼 때마다 마음이 뿌듯하다. 그런데 몇 달 전 은이가 목욕을 한 뒤에 '우다다'를 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 날 은이는 저녁 먹은 것이 체했는지 '우다다' 없이 조용히 앉아 있다 속을 다 게워냈다. 마음이 철렁했던 순간이었다.
'똥꼬발랄'은 점점 그리운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처음 만났던 3살 때 은이는 종종 의자를 계단 삼아 식탁에 올라가거나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고를 쳤다. 그러고는 태연히 애교를 부리며 '똥꼬발랄' 하게 놀곤 했다. 하지만, 만 9살 6개월에 이른 지금의 은이는 말썽을 거의 부리지 않는다. 쓰레기통의 휴지를 뒤집어 쓰고도 '나 잘했지요?'라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은이의 모습은 이젠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은이가 내 슬리퍼 한 짝을 완전히 해체시켜 놓았을 때 나는 화가 나기는커녕 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밀려왔다. '나의 개 은이가 여전히 신발 한 짝을 순삭할 만큼의 에너지와 튼튼한 치아를 갖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하고 말이다.
'참지 않는' 본성과 '꼬순내'를 마음껏 펼치길!
한동안 인터넷에서 앙증맞은 말티즈가 갑자기 화를 내는 영상들이 유행했다. 그 영상들에는 '말티즈는 참지 않긔'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 후 나의 입엔 '은이는 참지 않긔'라는 말이 붙어버렸다.
나는 이 영상들에 정말 100% 공감이 됐다. 개들도 사람처럼 성격이 모두 다르다. 하지만 종별로 비슷한 면들도 있는데 바로 이 '참지 않긔'는 말티즈의 본성을 매우 잘 표현하는 말이다. 순백의 털에 까맣고 동그란 눈을 가진 말티즈는 그야말로 천사 같다. 은이를 처음 본 사람들은 종종 "정말 순둥순둥해보여요"라고 말을 건넨다.
하지만 말티즈는 고집도 세고 자기 주장이 강한 개다. 가족이라 해도 원치 않을 때 만지려 하면 하얀 앞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린다. 경계심도 강해 낯선 소리가 들리면 코를 곯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짖어대기도 한다. 한때 나는 이런 은이의 행동을 교정시켜 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반려견 교육과 관련된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 책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지나가다 당신의 머리를 갑자기 쓰다듬으면 좋겠느냐. 개도 마찬가지다. 그런 개를 야단치기 전에 당신의 행동을 먼저 돌아봐라.'
나는 뜨끔했다. 내가 은이를 존중해주지 못했음을 깨달았고 그 후 은이의 '참지 않는' 행동이 나오면 얼른 내 행위를 멈춘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반려견이라고 해서 사람의 손길이 늘 즐거운 것은 아닐테다. 우리가 타인이 우리의 선을 지켜주길 바라듯 말이다. 내게 '말티즈는 참지 않긔'라는 말은 각자의 고유한 본성과 선을 지켜줘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또 하나. 아마도 반려인이라면 개의 발바닥에서 나는 '꼬순내'의 매력을 잘 알 것이다. 개들의 발바닥 패드에서 나는 이 독특한 냄새가 기분 좋게 느껴진다면 그건 당신이 반려인으로 정체화했다는 의미다.
이 말 역시 반려동물의 고유한 특징을 존중해주는 표현이라 여겨져 참 마음에 든다. 나는 은이가 자신의 '꼬순내'를, '참지 않는 성격'을 편하게 드러내길 바란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특징들을 존중받을 수 있을 때 어떤 생명체든 행복할테니 말이다.
이처럼 나는 반려인으로 살면서 전에는 몰랐던 언어들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언어를 통해서만 사고하는 사람에게 사용하는 언어가 많아졌다는 건 그만큼 알게 된 세상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은이와 함께 하면서 나의 언어는 넓어졌고 내 세상도 넓어졌다. 그리고 이 말들은 인간이 아닌 다른 종과 소통하고 공감하고 연결되게 해준다.
다른 존재와 연결되는 기분은 정말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하다. 마치 아이유가 <strawberry moon>에서 노래하는 '바람을 세로질러 날아오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긍정적인 기분은 사고의 폭을 더욱 넓힌다. 그래서인지 나는 은이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세계에도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나의 세계를 넓혀준 은이에게, 세상의 모든 동물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나 역시 동물들의 세계를 더욱 존중하고 지켜주겠다고 다짐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