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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명절을 앞두고 아버지께 연락이 왔다. 큰집에서 더는 모이지 말고 각자 제사를 지내면 좋겠다고 했단다. 명절 당일 점심이나 먹으러 오라는 아버지의 말에 얼떨떨했다. 갑자기 회사에서 특별 휴가라도 받은 기분이랄까. 아내에게 이 소식을 전하니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감출 수 없었다.

결혼하고 명절 때 늘 싸웠는데

매번 명절 때면 차가 막힐까봐 이른 새벽부터 서둘렀다. 고속도로에서 사투를 벌인 후 도착하면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사촌들과 어색한 인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제사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다들 결혼해서 아이들까지 합하면 서른 명이 넘는 식구들이 좁은 방에 모여 절을 하면 한겨울임에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제사를 마치면 안방에 큰 상을 펴고 큰아버지부터 남자들이 차례로 자리에 앉는다.

그러면 며느리들은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해서 상을 차리고 남자들은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비좁은 공간에 자리도 없어, 거실로 밀려난 여자들은 다닥다닥 붙어 앉아 남은 음식으로 허기를 때웠다. 그리곤 나머지 정리마저 여자들의 몫이었다.

결혼하고 첫 명절을 맞이한 아내는 이런 풍경을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아내는 명절 때 친척들과 만나 가족 예배를 지낸 후 간소하게 음식을 나눠 먹고 헤어졌다고 한다. 평생 해보지 않은 절을 하는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최대한 형식을 간소하게 한 명절 음식
▲ 조촐한 명절 식사 최대한 형식을 간소하게 한 명절 음식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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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지나간 추억으로 남았지만, 절을 해야 한다는 어머니와 못하겠다는 아내 사이에서 중재하느라 몹시 힘들었다. 그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땐 어디 한강에라도 뛰어들고 싶은 적도 있었다. 남자들은 편하게 있고, 여자들만 고생하는 명절의 모습 역시 아내에게 익숙지 않았고, 그것은 곧 우리 사이의 싸움으로 번졌다.

명절 때가 가까워지면 아내는 예민해졌고, 나도 눈치를 살피느라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명절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사소한 일에 크게 다투기 일쑤였다. 명절의 진정한 의미는 오래간만에 가족들이 모여 안부를 묻고, 덕담을 나누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명절 하면 가장 떠올리는 것은 음식을 만드느라 허리도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어머니다. 내가 결혼하고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 고생은 고스란히 며느리에게 전해졌다. 그 속에서 남자인 나는 방관자로서 지켜만 보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뜻하지 않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아버지와 통화를 마친 후 고심하다가 아내에게 먼저 여행을 제안했다. 그 당시 양가 모두 가까이 살고 있어, 명절 당일 점심은 본가에서, 저녁은 처가에 다녀오면 나머지 연휴 기간은 오롯이 우리만의 것이었다. 결혼하고 10년 만에, 아니 태어나 처음으로 명절 때 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가족의 화목을 일구는 명절도 가능합니다
 
이제는 명절 때가 되면 여행 가방을 싼다.
▲ 여행 가방 싸기 이제는 명절 때가 되면 여행 가방을 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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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당일 점심 때 본가로 향했다. 어머니께서 절대 음식을 해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아내는 전을 만들어 양가에 가져가자고 했다. 그래서 전날 아이들까지 총동원해서 전을 부쳤다. 종류는 명태전, 호박전, 깻잎전이었다. 아직 어렸던 둘째도 고사리손으로 열심히 누르고, 뒤집고 놀이처럼 신이 났다. 예쁘게 담은 전을 할머니 손에 드리며 얼마나 뿌듯해 하던지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거실에 상을 폈다. 아버지는 손주들 준다고 미리 준비한 LA갈비를 불판에 구웠다. 나는 얼른 엉덩이를 바닥에서 떼고 새우튀김을 만들고 있는 어머니 옆에서 부지런히 음식을 날랐다. 아내는 상 위에 놓인 음식을 가지런히 배치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즐겁게 식사를 했다.

둘째는 귀여움을 뽐내며 부모님을 기쁘게 만들었고,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후 아버지는 소화를 시킨다며 본인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했다. 아내가 나섰지만, 한사코 괜찮다며 서둘러 부엌으로 향했다. 명절 때면 안방에서 큰아버지, 작은아버지와 술을 마셨던 모습이 생생한데 이런 변화가 나도 좋았다. 가족 후식 담당인 첫째와 나는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서 왔다.

저녁때 처가댁에 가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간단히 가족 예배를 마친 후 조촐하게 저녁을 함께했다. 다만 설거지 담당이 나로 바뀌었고, 뒷정리는 장인어른과 처남 몫이라는 것만 달랐다. 밤 늦도록 명절 때 방영하는 가족 영화를 보고 느지막이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속초로 여행을 떠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그 뒤로도 명절 때 가족 여행은 연례행사가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설이 다가왔다. 아버지께 연락을 드려 명절 당일인 화요일에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작년에 문경으로 이사 간 처가에는 전 주에 미리 다녀왔다. 아내는 이번에도 여행 계획을 짰고, 나는 과감하게 회사에 목, 금 연가를 냈다. 가평에 있는 펜션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올 예정이다.

이제는 아내도 나도 명절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오히려 기다려진다. 그리고 나니 명절의 참 의미가 보였다. 남자는 편히 있고, 여자만 노동에 시달리는 불합리함이 아니라, 조촐하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 하고 정을 나누는 그런 명절 말이다.

코로나가 평범한 일상을 앗아갔다. 한편 많은 사람이 모이기 어려운 이 시기가 어쩌면 새로운 변화를 시작할 변곡점이 될 수 있다. 가족끼리 조촐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형식도 간소히 하고, 음식도 간편히 하면 모두가 즐거운 명절이 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변해야 했다. 이번 명절에도 나는 엉덩이를 가볍게 하리라 다짐했다. 내 몫을 다하기 위해서 전도 부치고, 음식도 나르고, 설거지와 뒷정리도 하면서 함께 하는 명절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 뒤에 있을 달콤한 가족 여행을 꿈꾸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태그:##명절, ##명절증후군, ##새로운명절, ##함께하는명절, ##노동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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