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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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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정도면 거의 난파선 수준이다."

지난 3일 오전 TBS <뉴스공장>에 출연한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현재 국민의힘 선대위를 일컬어 한 말이다. 사람에 따라 너무 과장됐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 말은 당장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현실로 다가왔다. 떨어진 윤석열 대선 후보 지지율에 대한 책임을 두고 국민의힘이 바로 그날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침부터 김종인 총괄 선대위원장이 "선대위 전면 개편"을 표명했고, 이어 급작스레 윤석열 후보의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다. 이후 말이 많았던 신지예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의장이 전격적으로 사퇴했고, 오후에는 김종인 위원장을 제외한 김기현 원내대표와 김도읍 정책위의장 등 선대위 지도부 전체가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이 과정도 순탄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의원총회에서는 이준석 당대표도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이에 이 당대표는 그럴 일 없다며 일축했다. 김종인 위원장의 사퇴를 두고도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대선을 두 달 정도 앞두고 국민의힘이 권력투쟁으로 당이 쪼개질 정도로 내홍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한 명으로서 이번 국민의힘 사태가 경악할 수준은 아니었다. 큰 선거를 앞두고는 권력투쟁과 이합집산이 늘 있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제1야당이 이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조금 놀라웠지만,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저 내홍은 정리될 것이고 윤 후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국민 앞에 설 것이다.

다만 어제 '아비규환'의 국민의힘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김종인 위원장이 윤석열 후보에게 했다는 바로 그 발언이었다.

"내가 당신의 비서실장 노릇을 선거 때까지 하겠다. 총괄선대위원장이 아니라 비서실장의 노릇을 할 테니, 후보도 태도를 바꿔서 우리가 해준 대로만 연기만 좀 해 달라,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꼭두각시 대통령

사실 처음 위 발언을 동영상 대신 기사의 짧은 제목으로 봤을 때는 어리둥절했다. 김종인 위원장이 이야기한 연기가 무슨 뜻인지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았던 탓이다. 무엇을 연기하자는 거지? 설마 그 연기가 '배우들의 연기'를 뜻하는 것인가?

다행히 기사는 이런 구독자의 궁금증을 이미 예상한 듯 '연기'라는 단어 옆에 친절히 '演技'라는 한자까지 적어놓고 있었다. '연기: 배우가 배역의 인물, 성격, 행동 따위를 표현해 내는 일.' 김종인 위원장은 대놓고 자당 후보를 '연기'나 하라고 저격하고 있었다.

뜨악했다.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굳이 대놓고 대통령 후보에게 연기를 주문했다고 고백하다니... 선대위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고육지책인지, 아니면 대선을 이미 포기한 노정객의 탈출용 명분 쌓기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말도 안 되는 언사를 들은 국민들의 당혹스러움이다.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박근혜와 최서원(개명 전 이름 최순실) 트라우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가 박근혜를 탄핵했던 것은 그가 꼭두각시로 대통령을 연기했고, 최서원이 그 뒤에서 국정농단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부끄러움 하나 없이 또 다시 윤석열 후보에게 연기를 운운하고 있다. 대놓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과연 누가 윤석열을 꼭두각시 대통령으로 세워놓고 권력의 사유화를 원하고 있는가. 윤석열 후보는 전두환 옹호 발언을 하면서 사람만 잘 쓰면 된다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 어쩌면 이는 그가 아니라 국민의힘의 기조인지도 모른다.

3류 배우 윤석열?
 
한국거래소 개장식 참석을 끝으로 이후 일정을 잠정 중단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로 들어서고 있다.
 한국거래소 개장식 참석을 끝으로 이후 일정을 잠정 중단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로 들어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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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궁금한 것은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던 윤석열 후보의 심정이다. 도대체 윤  후보는 어떤 인물이기에 선대위 총괄위원장에게 그런 치욕적인 말을 듣고도 그 자리에 있단 말인가. 한때 가장 큰 칼을 휘두르는 검찰총장으로서 대놓고 정권에 대항해 인기를 끌었던 이가 이제는 연기라도 해서 꼭두각시 대통령이 되고 싶은 건가?

순간, 지금까지 윤석열 후보의 이해되지 않았던, 어울리지 않았던 말과 행동들이 눈앞을 스쳐갔다. 전두환 옹호 발언과 관련하여 부득불 사과를 한 뒤 분에 못 이겨 SNS에 개사과를 올려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일명 '울산봉합' 이후 빨간 후드티를 입고 이준석 대표를 따라다니며 어쭙잖게 사진 모델을 하던 모습 등등.

어쩌면 지금까지 국민들이 보고 의아해 했던 윤석열 후보의 모습은 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3류 배우의 비극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는 검찰과 관련된 안건만 빼고 모두 선대위가 써준 대사를 읊는데 바빴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소위 '족발집' 정책발표 영상(2일 '코로나19 자영업 피해 현장 간담회')은 이런 심증을 더욱 굳히게 만든다. 윤석열 후보는 한낱 배우에 불과했던가.

뒤늦은 수습과 해결책

'연기' 발언 논란이 불거지자 국민의힘은 진화에 나섰다. 김종인 위원장은 영화배우 출신인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예로 들며 후보의 말실수를 줄이기 위함이라 강조했고, 김재원 최고위원은 대선을 영화촬영에 비유해서 쓴 표현이라고 해명했다. 하태경 의원은 단지 좀 더 신중하게 국민들 눈높이에 맞는 표현을 써야 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아무리 김종인 위원장이 윤 후보에게 자중하라는 뜻이었다고는 하나 대선주자에게 연기를 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은 분명 선을 넘은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이 이야기했듯 이는 김종인 위원장이 윤 후보를 깔보고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발언이며, 민주당이 주장하듯 국민의힘이 윤 후보의 무능과 좌충우돌을 자인하기에 가능한 말이다. 

윤석열 후보가 위와 같은 위기를 타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자신이 꼭두각시 후보가 아님을, 연기나 하는 아바타가 아님을 국민들에게 당당히 밝혀야 한다. 물론 잦은 말실수 때문에 구설수에 오를 가능성이 높지만 이를 극복해내야 한다. 어차피 이제부터 김종인 위원장의 대본을 읊은들 곧이곧대로 믿어줄 국민도 얼마 없다.

부디 자신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내길 바란다. 그것이 조금 더 나은 대통령을 뽑고 싶은 국민들이 원하는 바다.

태그:#윤석열, #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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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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