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공식 포스터.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공식 포스터. ⓒ 영화사 조아

 

연출가 남편과 배우인 아내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아내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남편은 여기에 조언하며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겉으로 보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완벽한 부부의 모습이다. 감정의 파고 없이 평온한 두 사람의 일상은 우연히 출장이 연기돼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서 파국을 맞는다.

평범한 치정 멜로내지는 심리극처럼 보이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진짜 힘은 대사 자체가 아닌 맥락과 배우들의 조화에 있다. 일본 차세대 영화인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으로 영화는 가후쿠(나시지마 히데토시)와 아내 오토(기리시마 레이카)의 관계 그리고 오토의 죽음 이후 가후쿠가 맺게 되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밀도 높게 그려낸다.

무리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영화화했다는 걸 떠올리면 오히려 선입견을 갖기 쉽다. 뭔가 우울하거나 무거운 분위기의 캐릭터는 술과 섹스로 점철되는 특정 취향을 갖기 마련이었고, 부유하는 현대인의 단면을 나름 몽환적으로 그리는 작가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에 대해 일관된 비평이 있기에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크다.

결론적으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이 영화는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충분하다. 주인공의 시선으로 세상을 향한 허무주의에 휩싸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묵직하고 뜨거운 내면의 무언가를 건드린다.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도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가후쿠는 아내의 죽음 이후 내면적으로 황폐화를 경험한다. 큰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던 그는 체호프의 연극을 연출하게 되는데 아내와 잠자리를 가진 것으로 의심되는 전도유망한 배우 다카츠키(오카다 마사키)를 비롯해 몇몇 인물들에게 점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다카츠기와 함께 가후쿠에게 큰 영향을 주는 캐릭터가 바로 새로 고용된 운전 기사 미우라 미사키(미우라 토코)다. 앳된 청년의 얼굴이지만 좀처럼 말과 표정이 없는 미사키는 체호프 연극을 준비하는 가후쿠의 차를 운전하면서 드문드문 맞장구를 치거나 단편적인 이야기를 꺼낼 뿐이다. 그러다가 서서히 자신의 사연을 드러내는 가후쿠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가정 폭력에 시달렸던 아픈 과거를 꺼내놓는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관련 이미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관련 이미지. ⓒ 영화사 조아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관련 이미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관련 이미지. ⓒ 영화사 조아

 
아내의 외도를 삼킨 채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은 가후쿠의 본질적인 두려움은 감정을 드러내는 일로 아내를 영영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무거운 침묵이 오토를 더욱 억눌러 왔음이 영화 곳곳에서 상징처럼 드러난다. 결국 아내를 사지로 몬 것은 가후쿠 자신이 아니었을까. 학대하던 엄마의 죽음을 담담하게 전하던 미사키를 보며 가후쿠는 무언가를 깨닫는다. 

영화는 이렇듯 차 안에서의 대화신, 연극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한국, 중국, 일본 배우들이 한데 모여 대본 리딩을 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이번 영화를 준비할 때 배우들에게 감정을 자제한 채 수없이 대본을 읽을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일종의 극 중 극의 구성인 셈이다. 밀도 높은 대사를 온전히 배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상대 캐릭터와 마주할 때 기적과도 같은 연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게 감독의 평소 지론이다. 영화 속 가후쿠는 어쩌면 감독 스스로의 모습 일부가 반영돼 있는 결과물일지 모른다.

손에 잡히지 않는 깊은 상실감을 이토록 영화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또 있었을까 싶다. 각 배우들 간에 연기 호흡이 단순히 유기적인 것을 넘어서 마치 주인공 캐릭터의 삶 자체에 스며들 듯 어떤 개연성을 부여한다. 충분히 완전한 화학적 결합의 순간이라 할 수 있다. 2021년 제74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고, 북미 주요 영화제에서도 비평가상 및 작품상, 각본상을 휩쓸고 있는 이유다. 

한줄평: 상실감과 어떤 희망을 동시에 영화로 표현하다. 이는 마법에 가깝다. 
평점: ★★★★☆(4.5/5)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관련 정보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니시지마 히데토시(가후쿠), 미우라 토코(미사키), 오카다 마사키(다카츠키), 기리시마 레이카(오토), 박유림(이유나), 진대연(공윤수), 소냐 위엔(재니스 창), 안휘태(류종의)
원작: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 중 '드라이브 마이카' 편
수입: 영화사조아
공동수입 및 배급    : ㈜트리플픽쳐스    
디지털배급: ㈜질리언뷰
러닝타임: 179분
등급: 15세이상 관람가
개봉: 2021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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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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