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15 08:01최종 업데이트 21.12.1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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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폭등하는 부동산, 치솟는 전셋값, 고용 문제 등은 혼인과 출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어려움을 거쳐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만만치 않다. 어린이집, 유치원을 보내는 문제부터 고민은 시작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기에는 '돌봄'이라는 커다란 벽을 마주한다.

아이를 위해 부모, 유독 엄마는 직장을 포기해야 하고, 경력이 단절되어 시간이 지나면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없게 된다. 오로지 아이만 생각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나면, 몇 년 뒤 시간이 지나 자녀교육을 위한 경제력이 더 필요할 때에는 취업이 어려워진다. 이제 초등 돌봄은 개인의 영역이 아닌 국가 차원의 문제로 더욱 중요하고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현재 돌봄 시스템은 학생 한 명 한 명을 중심으로 운영된다기보다 각 정부 부처, 기관별 사업을 추진하는 성격이 강하다. 돌봄 관련 부처가 분절되어 있다 보니 부처별 연계성이 부족하다. 기관마다 자신의 사업은 추진하고 있으나 수요 대비 부족한 공급, 돌봄의 질 저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제기된다. 사업주체인 교육부, 교육청, 보건복지부, 지자체가 서로 방침이 다른 것도 혼란의 한몫을 담당한다.

초등돌봄교실의 경우 학교의 돌봄교실을 이용하고 싶어도 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17시에 종료되고, 17시 이후까지 운영하는 곳이 적다 보니 맞벌이 부모들이 이용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 특히 학생 수가 많은 과밀학교는 대기자가 많고, 공간이 부족하여 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미리 다닐 학원을 알아보지 않으면 부모가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봐야 하는 일이 실제로 생기게 된다.

돌봄교실에 들어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질 낮은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단순히 수용하고, 보호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곳이 많아 아이를 맡길 데가 없는 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돌봄교실에 보내거나 이른바 학원 뺑뺑이를 돌려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학교는 돌봄교실의 운영 주체가 누구인지를 놓고 교원단체-돌봄노조 간의 갈등, 돌봄전담사의 파업으로 인한 돌봄 공백 등의 부침을 겪어왔다.

기피하는 돌봄

학교의 역할은 시대에 따라서 변화되어 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많은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교육뿐만 아니라 돌봄 등이 학교 공간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아이들을 학교 공간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데리고 있는 것이 과연 아이의 삶의 질에 도움이 되는가 묻는 이들도 있다. 부모와 있는 시간이 많아야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그 시간까지 아이를 맡겨둘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와 현실은 여전히 존재한다. 직업, 노동 구조를 먼저 바꾸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동시에, 그렇게 학교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배움과 쉼, 삶의 질이 나아지도록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양질의 식사와 간식을 나누며, 학교 공간의 울타리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게 하는 돌봄교실 운영 구조 개선이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학교에서는 방과 후 돌봄이 교육의 영역이 아니라고 한다. 극단적인 분리 주장을 하는 이면에는 초등 돌봄의 구조적인 문제가 연결되어 있다. 일단 교사는 자신이 맡은 학급 아이들의 등하교, 정규수업, 생활지도를 하는 것이 기본 직무이다.

현재 학교에는 보통 1~2명의 교사가 돌봄교실 업무를 맡고 있다. 돌봄교실과 관련한 학생 선정, 강사 채용 및 관리, 각종 민원 등으로 인해 대부분 학교에서 돌봄은 기피업무로 손꼽힌다. 교사가 정규수업을 하고 이후에 행정업무와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오후와 저녁 시간 아이들의 돌봄 관련 업무를 맡는 것은 정규교육과정 운영에 소홀해짐으로써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아이들의 돌봄이 중요한 문제이나 주객이 전도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담임교사는 우선 정규교육과정에 집중하고 그에 대한 책무성을 별도로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과 돌봄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냐는 지적도 많다.

이 지점에서 돌봄교육과정을 비롯한 미래 교사의 다양한 역할을 고민할 수 있다. 모든 아이들의 정규교육과정이 같은 시간에 시작해서 같은 시간에 끝나야만 할까? 돌봄에 대한 수요가 있는 아이들이 정규교육과정 속 선택교육과정(돌봄교육과정)으로 학교 공간에서 질 높은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는 없을까?

돌봄이 이렇게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라면, 이를 위해 별도의 교사 배치와 예산 지원까지 고민해보자. 만약 그 학교에 돌봄에 관한 수요가 많고, 또한 정규교사가 그 일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면, 교육 당국은 그 학교에 희망하는 정규교사를 별도 정원으로 배정할 수도 있다. 별도 정원의 희망 교사를 대상으로 유연 근무, 복무시스템 개편을 활용해서 오후에 출근하고 밤에 퇴근하며 정규 수업 대신 방과 후 학교의 전체적인 운영을 맡고 돌봄전담사나 강사 등을 관리하게 할 수도 있다.
 

6일 경남 김해 관동초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이 마스크를 낀 채 거리를 두고 앉아 돌봄교실 수업을 듣고 있다. 2020.5.6 ⓒ 연합뉴스

 
다양한 인력풀을 가지고 있는 도심지역과 달리 정규 교원의 의존도가 높은 농산어촌의 경우 별도 인력을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경우 기존 수당 체계를 개편하여 돌봄을 담당하는 교사가 오후, 저녁시간 돌봄 업무를 추가로 담당할 경우 시수에 따라 추가 수당을 지급하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와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미래형 교사의 다양한 역할 모색 또한 필요하다. 정규교육과정을 담당하는 교사, 오후에 출근하여 방과 후 학교를 담당하는 교사, 교원업무 정상화를 위한 교무 행정을 담당하는 교사 등 분업화와 전문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 희망 교사를 선발하여 1~2년가량 해당 역할을 담당하는 순환제 모델도 가능하다.

다양한 돌봄 모델 

부모의 다양한 선택권을 열어주고 운영 기관, 주체 간 건강한 경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초등돌봄교실의 모델이 하나일 필요도 없다. 학교 공간을 활용하되, 그 운영은 지자체에서 주도하거나, 신축‧리모델링 학교 대상으로 학교 공간 복합화를 통해 지자체와 연계하여 학교 안에 다양한 기능을 넣을 수도 있다.

교육청도 이 문제에 손 놓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어느 교육청의 경우 방과 후 학교와 돌봄 통합 시설을 기존 학교의 유휴공간에 설치하였다. 인근 지역을 묶어 이용 학생을 모집했다. 공간은 학교이지만 운영 주체는 교육청이 맡았다.

지자체와 교육청이 직접 운영하는 직속 도서관들이 전국에 상당히 많다. 이제 도서관도 단순히 책을 대여하고, 공부만 하는 공간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책과 문화를 가까이할 수 있다는 도서관의 장점을 살려 도서관의 역할을 재구조화하여 학생들의 돌봄과 배움의 센터로 활용한다면 기존 시설을 활용하면서도 다양한 돌봄 모델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의 한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작은 도서관을 운영한다. 이 작은 도서관은 인건비와 프로그램비 등을 지원받아 아이들의 돌봄과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이들의 삶을 공동체로 가꾸어 가도록 돕는데, 만족도가 높다. 아이들의 돌봄 기능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활성화하는 데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일정 인구수 이하의 지역은 교육자치-일반자치 통합 모델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그러면 돌봄이 교육청의 영역인지, 지자체의 영역인지를 두고 다투는 일은 없을 것이며 지역 내의 중요한 이슈로 분리되지 않고 시행될 것이다.

무엇보다 한 아이를 중심에 두고 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어떠한 공적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를 총괄하여 조정·안내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사회적 필요에 따라 신설된 질병관리청처럼 돌봄청이 될 수도 있고, 돌봄 행정 내지 전산시스템의 일원화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지역에는 어떤 공적 돌봄서비스가 제공되고 있고, 우리 아이를 어디에 보낼 수 있으며 혹시 보내지 못할 경우 차선책으로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 어느 돌봄 기관과 프로그램이 안전하고 평이 좋으며 질이 높은지 등을 알려주는 곳이 필요하다.

더 이상 자녀의 돌봄 문제로 부모가 직장을 그만두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이들을 공적 돌봄의 테두리 안에서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돌봄교실 자리가 없어서, 프리랜서 부모라 증명할 길이 없어서, 맡아줄 곳이 없으니 질 낮아도 울며 겨자 먹기로 보내야 해서, 맞벌이라 불안한 학원 뺑뺑이를 돌려야 해서 고통받는 부모들이 없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

필자소개 : 교사로서 교육청, 교육부에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정책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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