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자영업자 폭력 보고서 열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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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21.12.03 17:47최종 업데이트 21.12.10 13:26

4일 동안 문자 114건 보낸 미용실 앞 스토커

[열린 문 - 여성 자영업자 폭력 보고서 ⑤] 가게 유리는 투명하고, 문은 열려 있다

단순 업무방해, 주취폭력이 아니다. 이것은 젠더폭력이다. 여성 자영업자 102명을 만났다. 여성 자영업자 대상 범죄 판결문 287건을 집중 분석했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열린 문'의 공포였다. 가게의 문은 가해자에게도 열려 있어야 한다. 가해자가 마음먹으면 언제고 그 문을 열고 침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찰도 법도, 열린 문을 막아설 안전장치가 되지 못했다. <오마이뉴스>는 여성 자영업자를 상대로 한 젠더폭력 실태를 최초로 분석·보도한다. <편집자 말>
여성 자영업자 폭력 보고서

가게 유리는 투명하고, 문은 열려있다. "24시간 지켜본다"는 문자는 허언이 아니었다. ⓒ 이강훈

고작 두 달 사귀었다. 하루에 수십통의 전화를 걸고 전화를 받지 못하면 온갖 욕설이 담긴 문자를 보내는 남자를 여자는 견딜 수 없었다. 여자의 집에, 여자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남자는 매일, 수시로 찾아왔다. 여자는 헤어지자고 했다. 남자는 지독하게 집착했다. 수십통의 문자를 보냈다. 여자가 헤어지자고 한 12월 중순부터, 다음 해 1월 초까지. 18일 동안 남자는 194번 문자를 보냈다. 크리스마스 즈음 그의 집착은 극에 달했다. 12월 22일부터 12월 25일까지 남자는 114건의 문자를 보냈다. 하루 평균 28.75건. 여자의 휴대폰은 24시간 울려댔다. 자정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쉴 새 없이 문자를 보낸 날도 있었다. 여자가 만나주지 않자 남자는 여자가 출근할 때를 기다렸다. 남자는 출근한 여자를 어디선가 지켜봤다. "24시간 지켜본다"는 문자는 허언이 아니었다.
“출근하자. 미용실 쉬나?”
“출근하네. 아들을 보초 세우나보네. 사진 찍어봐야 무슨 소용 있냐 ^^”
“다른 놈들은 미용실 와서 커피 먹고 앉았는데 나는 못 오게 하고.”
“가게 앞에 밥 처먹으러 다니니.”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미용실,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은 감시대상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칼로 찌른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9시 32분, 남자는 미용실 근처를 서성였다. 여자가 혼자 있는 시간, 그 때를 노렸다. 오전 11시 26분, 손님이 떠나고 여자 혼자 남았다. 남자는 미용실 '열린 문'으로 들어와 여자를 찔렀다. 이웃 주민이 여자의 비명을 듣고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여자는 목숨을 잃었을지 모른다. 여자가 생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미용실 문은 열려 있어야 했다. 남자가 마음먹으면 언제고 침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남자는 "미용실 하는 한 (나를) 봐야한다"며 겁박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닫혀있는 문'조차 없었다.

늘 열려 있어야 하는 문

여성 자영업자 가게의 문은 가해자에게도 열려 있어야 한다. 이같은 장소의 취약성 때문에 여성 자영업자들은 스토킹을 비롯한 성폭력 범죄에 더욱 무방비로 노출돼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오마이뉴스>는 2020년 재판이 이뤄진 여성 자영업자 대상 성폭력 사건을 찾아봤다. 식당·부동산·미용실·네일숍 등의 키워드에 성추행·성폭행·폭행·성폭력․피해자 등의 키워드를 조합했다. 이렇게 찾은 8건의 판결문 속 가해자들에게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범행 장소에 다시 돌아왔다. 가해자들이 "범행 이후에도 버젓이" 가게 문을 밀고 들어오기 때문에, 성폭력 범죄는 여성 자영업자들을 더욱 지독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피해자가 운영하는 식당에 앉아 술을 마시다 갑자기 '살아 있네'라고 말하며 피해자의 음부를 쓰다듬은 가해자는, 현행범으로 경찰에 체포됐다. 같은 날 오후, 그는 석방되자마자 식당을 찾았다. 피해자 곁을 지나며 '살아있네'라고 말하며 또 가슴을 만졌다. 그러면서 '합의 안 해주면 죽는다'고 협박했다. (2020년 11월 울산지법 2020고합○○○)
피해자가 운영하는 식당에 다시 온 가해자에게 피해자는 '1년 전 강제추행한 사건 합의금 50만 원 중 미지급 된 돈을 달라'고 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2020년 6월 의정부지법 2019고단○○○○)
피해자가 운영하는 부동산에 들어와 포옹하며 인사한 후 갑자기 가슴을 만져 강제추행한 고령의 가해자는 두 달 뒤 부동산에 또 왔다. 가해자는 '줄거야 말거야'라고 말하며 가슴 부위를 만지려 손을 뻗었으나 피해자가 손을 잡아 저지하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 (2020년 1월 인천지법 2019고단○○○○)
피해자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피해자를 옆에 앉힌 가해자는 손으로 피해자의 가슴을 잡고 볼에 입을 맞추었다. 피해자가 뺨을 때렸음에도 가해자는 화장실에 가는 피해자를 뒤쫓아가 양손으로 피해자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한 달 뒤 식당을 또 찾은 가해자에게 피해자는 '다른 데 가라'고 말했음에도, 가해자는 피해자를 밀치며 식당에 들어와 욕설을 하며 '돈 주면 될 것 아니냐'며 소란을 피웠다. (2020년 2월 대구지법 2019고단○○○○)
'네 여름휴가 사진 조작해 비키니 입혀 자위했다'는 전단지를 1장 만들어 피해자가 운영하는 미용실 출입문으로 밀어 넣은 가해자는 이틀 뒤 또 다른 전단지 10장을 만들어 미용실 출입문 밑으로 밀어 넣었다. 그로부터 나흘 뒤 '사랑해, 오늘도 널 생각하며 자위했어'라는 문구를 적은 전단지 20장을 출입문 밑으로 집어넣었다. (2020년 10월 창원지법 2020고단○○○○)
이처럼 범행 당일, 길게는 두 달 뒤 성폭력 가해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범행 장소를 재방문했다.
여성 자영업자 폭력 보고서

ⓒ 권우성

자영업자 대상 범죄를 분석한 '상업범죄 피해조사'(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6) 보고서는 "(자영업자 대상) 성폭력 범죄가 반복 피해의 정도가 가장 심하다"라고 짚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2015년 폭력 범죄 피해를 입은 665곳 중 성희롱·성추행·스토킹 등 성폭력 범죄 피해를 입은 사업체는 158곳이다. 이 중 1회 피해는 28곳(17.7%), 2-3회 피해는 45곳(28.5%), 4회 이상 피해는 85곳(53.8%)으로 조사됐다. 즉, 성폭력 범죄의 경우 한 번 피해를 입은 사업체(28곳)에 비해 2회 이상 반복피해를 입은 사업체(130곳) 비율이 4.6배에 달하는 것이다. 반면 폭력범죄 전체 평균으로는 1회 피해 197건(29.6%), 2~3회 피해 238건(35.8%), 4회 이상 피해 230건(34.6%)으로 집계됐다. 폭력범죄 전체를 놓고 봤을 땐, 1회 피해 사업체 대비 2회 이상 반복피해 사업체의 비율 2.37배인 것이다. 1,424건의 성폭력 범죄를 연구한 '연쇄 성폭력 범죄 실태조사'(2014,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결과도 여성 자영업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 반복 피해 양상을 뒷받침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연쇄 성범죄의 경우 성폭행을 위한 접근방법이 '기만'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기만'은 여성 혼자 운영하는 식당이나 술집에 손님으로 와서 여성을 성폭행하거나, 모텔로 커피 배달 등을 시켜 성폭행한 경우를 뜻한다. 보고서가 분석한 연쇄 성범죄 444건 가운데 74건(16.7%)이 여기에 해당된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이에 대해 "성범죄 피해자는 '네가 문제 있는 거 아니냐'는 시선을 받을 수 있다, 또 고소·고발이 진행되면 경찰에 출석해야 하고 피해자 진술도 해야 하고 영업에도 제한을 받는다"면서 "공론화 하는 거 자체가 마이너스라고 생각해 침묵하게 되는데, '침묵하는 피해자'는 가해자로서는 너무나 안전한 대상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악순환

더 큰 문제는 강제추행 등으로 재판을 받은 가해자가 십중팔구 집행유예로 풀려난다는 데 있다. 실제 여성 자영업자 대상 성폭력 사건 8건 가운데 단 한 건을 제외한 7건 모두 집행유예 혹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유일하게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은 가해자가 다른 남성 피해자에게 42일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혀 병합 판결을 받은 사례다. 여성 자영업자를 상대로 성폭력 단일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실형을 받은 것은 0건인 셈이다. 가해자가 식당 안에서 피해자에게 다가가 "데이트 하자"며 가슴을 움켜 쥔 사건의 경우 재판부(인천지법 부천지원 2020고단○○○○)는 "피고인이 사건 범행 이후에도 피해자를 버젓이 찾아가 음식을 주문하거나 협박을 하여 피해자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판결문에 적시하고도,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온 가해자가 "할마이, 돈 좀 빌려줘"라며 피해자를 끌어안고, 피해자의 가슴을 만지고, 피해자에게 얼굴을 비비는 등의 강제 추행을 한 사건에 대해서도 집행유예형이 내려졌다. 2021년 4월 대구지법 경주지원(2020고단○○○)은 "피해자가 운영하는 식당에 드나들며 피해자를 괴롭혔고 참다못한 피해자가 고소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 같이 판결했다. 미용실 문 아래로 전단지를 밀어 넣은 사건 역시, 재판부는 "피해자로 하여금 공포심을 느끼게 하여 피해자를 협박했다"면서 벌금 300만 원 형을 선고했다. 8건의 판결문 중 3건에는 가해자의 성폭력 범죄 전과가 적시돼 있었다. 한 가해자는 강제추행으로 벌금형을, 다른 가해자는 강제추행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또 다른 가해자는 강제추행죄로 2018년 기소유예, 2019년 5월 벌금형, 2019년 9월 벌금형을 각각 받았다. 2019년 11월 같은 죄로 1심 재판 중에 있는 상태였다. 2020년 6월 2명의 여성 자영업자를 상대로 '상습 강제추행'을 해왔다고 인정한 재판부(의정부지법 2019고단○○○○)는 "술에 많이 취한 상태에서 범행에 이르렀다"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인정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전 성폭력 범죄에서 가벼운 처벌을 받았고, 풀려났고, 다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이다. "참다못해 고소한" 64세 여성 자영업자는, 이와 상황이 다를 바 없는 27세·49세·51세·52세·56세·58세·61세 여성 자영업자는, 집행유예 혹은 벌금형을 받고 가해자가 풀려난 재판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허 조사관은 "보호막이 없는 여성들을 상대로 범행 횟수를 늘려갈 때마다 가해자는 '나는 안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라며 "사법부 역시 가해자를 상대로 솜방망이 처벌을 내림으로써 여성들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피해자는 숨고 가해자만 확신을 갖는 시스템은 결국 국가가 추가 피해를 장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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