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브레이킹 포인트>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브레이킹 포인트> 포스터. ⓒ 넷플릭스

 
2012년 US오픈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던 2012년 9월 3일, 로저 페러더와 마디 피시의 16강전을 하루 앞두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 당시 미국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마디 피시가 돌연 기권 의사를 밝힌 것이다. 미국 해설진은 상대가 어차피 올타임 넘버 원 로저 페러더이니, 최선을 다해 뛰다가 져도 그만인데 왜 기권해 버리냐고 비난했다.

하지만 마디 피시로선 인생을 뒤흔들 만한 심각한 일을 겪고 있었고, 남은 일정을 모두 접고 치료를 시작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같은 해 3월에 있었던 마이애미 마스터스 8강전에서 탈락한 직후 그는 심장 부정맥으로 병원에 실려가 카테터 절제술을 받았단다. 그럼에도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와 윔블던에서 16강에 진출하며 회복을 보였지만 US오픈 16강전에서 돌이키기 힘든 증세로 기권을 결정한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컬렉션 <말하지 못한 이야기>의 '브레이킹 포인트' 편은 전 세계에 익히 알려진 테니스 스타가 아닌 한때 미국의 희망이었던 '마디 피시'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그가 프로 스포츠 선수로서 치명적인 불안 장애를 만천하에 알린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미국 테니스의 희망, 마디 피시

지난 5월 프랑스 오픈에서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가 중도 기권에 이어 기자회견에 불참하며 논란에 휩싸였다. 기자회견 참석이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이유였는데, 당시 언론은 집중포화를 날렸고 선수들은 응원세례를 보냈다. 마디 피시는 반대로 기자회견에 참석해 자신의 불안 장애를 고백했다. 그때 역시 선수들의 응원세례가 있었다.

마디 피시는 앤디 로딕과 더불어 주니어 시절부터 미국 테니스의 월드 넘버원 계보를 이을 재목으로 주목 받은 인물이다. 그러나 기대에 부응해 세계 랭킹 1위에도 오른 로딕과는 다르게 만년 2등 피시는 정상을 밟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최선을 다했고 로딕의 파트너로 미국 테니스의 현재이자 미래로 충분히 제 몫을 다했다.

그러던 중 로딕이 로저 페러더라는 거대한 산에 가로막혀 여러 번 준우승에 그쳐야 했던 그는 2010~2011년 즈음, 각종 대회에서 연승 행진을 달리며 미국 랭킹 1위와 세계 랭킹 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말릴 수도 없는 최전성기, 하지만 이듬해 거짓말처럼 불안 장애에 시달리며 급추락했던 것이다.

강철멘탈과 유리멘탈

강한 정신력은 프로 스포츠 선수가 가져야 할 필수 덕목으로 꼽힌다. 설령 무섭고 두려워 숨고 싶고 도망치고 싶어도 티를 내선 안 된다. 상대방에게 약점을 잡히는 일이자 경기에서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선수도 인간이다.

강한 정신력과 체력을 바탕으로 모두를 파괴적으로 압살하는 선수도 있는 반면, 무섭고 두려운 마음으로 경기를 뛰는 선수도 있을 테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프로 스포츠 선수와 정신 건강의 연관성은 금기시되어 왔다. 일반인도 정신 건강과 관련된 언급이 터부시되는데, 하물며 선수들은 어떠겠는가?

마디 피시의 이야기는 그래서 너무나도 많은 걸 우리에게 던져 준다. 프로 스포츠 선수로서 자신의 아픔이자 약점을 있는 그대로 모두에게 공개하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다. 마디 피시야 말로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가감없이 내보인 것이기에 말이다.

누구나 정신이 아플 수 있다

지난 2015년 9월 3일은 마디 피시에게 뜻깊은 날이었다. 그날 그는 2015년 US오픈 2회전을 3시간 넘게 치른 끝에 석패한 뒤 프로 테니스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정확히 3년 전 로저 페러더와의 16강전을 기권하고 힘든 시간을 보낸 끝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의미 있는 도전이자 위대한 도전을 완수한 것이다.

제목 'Breaking point'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한계점'이라는 의미도 되지만 마디 피시가 기권한 그날의 순간을 가리키는 말에 가깝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올 법한 한계점, 어떻게 받아들여 헤쳐나가야 할까. 그런가 하면, 테니스 용어로 상대방의 서브게임을 가져오는 결정적 한 방이라는 뜻도 있다. 마디 피시가 아픈 기억의 US오픈에 다시 돌아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한 그날의 그 순간을 가리키고 있기도 하다. 참으로 절묘한 제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비로소 마디 피시는 우리 모두의 마디 피시가 되었다. 누구나 그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누구나 정신 건강에 타격을 입고 힘들어 할 수 있다. 그럴 때 그의 대처가 올바른 선례로 남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브레이킹 포인트 마디 피시 미국 테니스 유리멘탈 정신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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