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2 19:10최종 업데이트 23.02.2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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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휴게소는 세계의 자랑입니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를 극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휴게소장과 우리나라에서 휴게소를 가장 많이 운영하는 회사의 본사팀장, 휴게소 납품업체 등 다양한 업무를 거치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17년간 근무하고 있는 네이버 카페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자의 글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고속도로 휴게소의 이모저모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고속도로 휴게소 청년창업매장 지원 안내 포스터 ⓒ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 휴게소 '청년창업 매장'에 대해 아시나요?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4년 3월 청년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도로공사가 추진한 청년지원사업 중 하나입니다.

'아이디어는 있으나 자본이 없어 창업을 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휴게소 매장을 직접 운영할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 그 핵심내용이었습니다. 정식 명칭은 '청년창업, 창조경제 휴게소'였으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응모자격 : 만 18~39세 청년층
2. 지원분야 : (1) 일반창업매장: 차별화된 식음매장 (2) 지식창업매장: 공예·그림·패션소품 매장
3. 계약기간 : 1년~3년 (이후 연장시 일반매장으로 전환되어 혜택 없음)
4. 특별혜택 : 투자비 면제(휴게소 투자), 임대료 할인(일반창업: 22%, 지식창업: 15%)
5. 영업장소 : 전국 휴게소 중 매출이 우수한 휴게소 11곳 37개 매장


그로부터 7년 후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이 사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2021년 국정감사에 앞서 도로공사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1년 7월까지 집계된 청년창업매장 340개 중 67개 매장만이 운영중이고 273개 매장은 문을 닫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폐업한 청년창업매장 중 158개는 청년매장 계약종료 후 일반매장 전환을 포기한 경우이며 나머지 115개 매장은 개인사정으로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도로공사는 "청년창업매장은 청년창업 기회 제공을 목표로 하는 사업이며 기회 제공의 플랫폼이라는 사업 취지를 감안해야 한다"면서 "계약기간 1년~3년은 다수에게 기회를 제공하려다 보니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2021년 국정감사에 앞서 도로공사가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고속도로 휴게소 청년창업매장'의 80%가 문을 닫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템의 독창성을 모집 기준으로 두고 있지만 현재 운영중인 67개 매장 중 59개는 이와는 거리가 먼 식음매장이었다. ⓒ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그러나 이 사업은 실패한 것 같습니다. 왜 그런지 알아볼까요?

정책보고서에서나 존재한 청년

먼저 2014년 사업 추진 당시로 돌아가 봅시다. 처음 이 사업을 발표하고 응모자를 모집했을 때 반응이 상당히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언론도 많이 홍보했고, 당시만 해도 '휴게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인식이 많았을 때라 대박의 꿈을 꾸고 이것 저것 물어보는 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 사업을 하려고 하니 정작 적합한 대상자가 생각보다 없었습니다. 우선 '아이디어는 있으나 자본이 없어 창업을 하지 못하는 청년'이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그런 청년은 정책보고서에서나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응모자는 아이디어만 있고 매출에 대한 기대치만 높을 뿐 실제 해본 경험이나 준비가 너무 안 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휴게소 근무 환경을 말해주니 대부분 청년 창업자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매장은 365일 휴무없이 운영해야 합니다. 쉬는 시간에도 절대로 앉거나 한눈 파시면 안되고요. 매입·매출·반품 대장 반드시 기록하고 위생도 점검표에 매일 점검하고 기록하세요. 숙소는 없으니 출·퇴근하셔야 하고요. 휴무갈 경우 반드시 교대근무자를 세우셔야 합니다. 점검은 매월 평균 10회 이상 나오니 항상 대비해야 하며 만일 지적 사항 발생시 모든 문제에 대해 책임지세요' 등등(이보다 훨씬 많겠지만 기억나는 것만 적었습니다.)

이 수많은 규정(!)과 틀(!)과 지시(!)는 자유로운 청년의 영혼과는 너무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도 이미 청년들은 먹고살기 위해 올인하는 인생이 아닌 워라밸을 원하고 있었던 거죠.

게다가 준비 안된 제품은 소비자의 차가운 반응에 부딪혀야 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비싸다는 국민적 이미지가 있는 데다가 식사 시간에만 손님이 몰리므로 재빨리 팔지 못하면 매출이 안 나옵니다. 어설픈 레시피, 느린 조리, 낯선 제품명, 비싼 가격. 소비자가 싫어하는 4박자를 두루 갖춘 거죠.

또한 기존 매장과 휴게소 운영사와의 갈등도 심했습니다. 우선 도로공사의 강제적인 청년창업매장 추진은 해당 매장 누군가의 실업으로 시작됩니다. 기존 매장을 빼서 만든 매장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청년창업매장에 대한 결정은 도로공사가 했으면서 그 매장에 대한 인테리어와 집기 투자를 휴게소 운영사에 떠넘기니 운영사도 좋아할 리가 없죠. 

이러니 청년창업매장의 젊은 사장은 어찌 되겠습니까? 매출은 안 나와, 근무시간은 12시간이나 되는데 휴식시간도 없어, 내가 쉬려면 직원을 채용해야 해, 분위기도 썰렁해, 게다가 이렇게 고생해봤자 2~3년 후면 계약 종료되고 쫓겨나야 해, 차라리 로드 숍에서 이렇게 고생하면 자리 잡고 권리금이라도 생길 텐데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이러지 않겠습니까?

그런 이유로 아무것도 모르고 1년~3년 운영한 후 일반매장 전환을 포기하거나 중간에 개인 사정을 이유로 문을 닫는 것이죠.
 

고속도로 휴게소의 한 청년창업매장. ⓒ 한국도로공사


청년이 일할 수 있는 환경부터

그렇다면 이런 어설픈 제도가 왜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요?

첫째, 도로공사 실적보고서에 올리기 좋기 때문입니다. 국가적 이슈인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공기업의 노력으로 말입니다. 타이틀 멋지지 않습니까?

둘째, 도로공사에서 운영평가에 가점을 주기 때문입니다. 휴게소는 상대평가로 진행되는 운영실적 평가에 따라 재계약이 결정되므로 0.8점(최대 3점)은 매우 절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3년짜리 매장으로만 운영할 경우 손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3년간 도로공사 임대료는 특별 혜택을 받게 되므로 계약연장만 안 하면 운영사는 손해보는 게 별로 없습니다.

결국 청년창업 매장의 진짜 이름은 '3년 미만 계약직 매장'인 것입니다. '청년지원사업'이 아니라 청년들이 가장 싫어하는 '비정규직, 계약직 직장'인 셈인 거죠. 도로공사는 이런 사실을 청년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 안됩니다. 도로공사가 진정으로 청년 창업을 돕고 싶다면 이렇게 해야합니다.

첫째, 고속도로 휴게소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도로공사 임직원 아들 딸도 근무할 정도는 돼야 하는 거죠. 요즘 휴게소에는 젊은 구직자가 없습니다. 종합병원 응급실도 아닌데 연중 무휴, 24시간 영업, 관계기관 수시점검 등 근무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죠. 

둘째, 매출 대비 임대료가 아닌 원가율 대비 임대료 또는 청년창업매장처럼 국가가 지원해야 할 사업이라면 최소 이익율을 보장하는 계약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3년 후 임대료가 2배로 뛰는 운영계약이 도로공사 말처럼 기회 제공 플랫폼일까요? 청년들에게는 3년 후 폭리, 부당계약, 갑질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것이지요.

셋째, 청년 매장에 대한 일회성 창업컨설팅이 아니라 상시 지원이 가능한 지원부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휴게소 전문가 조직에 해당 업무를 맡길 수도 있고요. 생각해 보십시오. 왜 청년창업매장이 3년 후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을까요? 옆에 있는 일반매장들은 이미 그 임대료를 계속 내고 있었는데 말이죠. 원부재료 구매, 일반관리비 절감, 효율적 레시피 등 휴게소에 특화된 운영 노하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도로공사가 이런 업무 지원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네이버 카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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