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3 12:21최종 업데이트 21.10.13 12:21
  • 본문듣기
9월 24일, 독일의 10대와 20대가 다시 거리로 나왔다. 2019년 전 세계적으로 6백만 명 이상을 동원했던 기후 파업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을 재개하기 위해서다. 기후 파업의 상징적 존재인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 우리는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가 그 변화다"를 외쳤다. 그리고 28일, 그녀는 세계 각 국가의 기후 정책에 대해 "어쩌구저쩌구"만 외친다며, 행동이 따르지 않는 빈말이라고 비판했다. 

유럽 젊은 세대가 당장 압박하는 것은 3주 앞으로 다가온 유엔 기후변화회의(UN Climate Change Conference, COP 26)다. 이번 회의는 G20회의 다음 날인 10월 31일부터 11월 12일까지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된다. 영국 정부가 공개한 자료집에 따르면, 탄소 중립화와 생태계 보호, 이를 위한 자금 확보와 국제 협력이 주요 의제다.
 

스웨덴 기후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와 기후 시위자들이 스웨덴 스톡홀름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변화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1.6.18 ⓒ 연합뉴스

   
현재 기후 변화에 대한 이견은 거의 사라졌다. 2015년까지만 해도 기후 변화를 "원시적 두려움"이라며 그 실체를 의심했던 보리스 존슨 총리도 지난 9월 유엔 총회에서는 "인류가 성장해야 할 때"라며 글래스고 회의가 "인류에게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다만, 해결을 위한 속도에 있어서는 각 정부와 젊은 세대 환경운동가들 간 괴리가 크다. 젊은 세대는 각 국 정부가 기후 문제를 최우선에 놓기를 바라지만, 이들을 만족시키는 국가는 없다.  

유럽의 젊은 세대는 "기후 파업(Climate strike)"에 머무르지 않고 "기후 소송(Climate litigation)"으로 전략을 확장하고 있다. 거리에서의 외침은 사회적으로 경각심을 일으키는데 효율성이 있지만 정부 구속력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다. 반면 법원은 절차가 느리고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지만 강제력이 있다. 젊은 세대와 이들을 법률적으로 돕는 비영리재단들은 인권이라는 포괄적 틀에서 "미래 세대의 권리(right  of future generation)"를 전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화낼 권리가 있다"

지난 9월 30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상징적인 장면이 있었다. 그 날은 10-20대 400여 명이 참가한 유엔 청년기후회의(Youth Climate Summit)가 끝나는 날이었다. 폐막식에 화상으로 참석한 영국 존슨 총리는 "젊은 세대는 화낼 권리가 있다"고 했다. 동시에 그 날은 글래스고 본회의를 위한 장관급 회의가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다. 회의 직전 청년기후회의 대표를 만난 이탈리아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 총리는 "세계 지도자들은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회의에서 청년들이 제시한 제안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학교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던 이들이었다. 2018년 그레타 툰베리 시위를 계기로 수십만의 영국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 테레사 메이 당시 영국 총리는 "기후 변화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미래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학생들은 학교에 있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세계 최대 석탄 수출국으로 기후 문제에 있어 대단히 소극적인 호주의 재정부 장관은 산호초 파괴 등 환경 파괴를 우려하며 거리로 나온 학생들에게 학생은 교실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의 고루함에 비해 학생들의 기후 파업은 각종 사회단체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결과도 좋았다. '기후 파업'은 2019년의 단어로 선정될 만큼 유의미한 것으로 각인되었고, 첫 유엔 청년기후회의는 2019년 9월 뉴욕에서 유엔의 지원을 받아 개최됐다. "젊은 세대가 기후 변화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인식의 확산과 맞물려 젊은 세대에 맞춰 기후 변화의 사회적 영향을 연구하는 주제도 등장했다. 
 

2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위대가 이곳에서 이틀간 열리는 주요 20개국 협의체(G20) 환경장관 회의 및 기후·에너지 합동 장관 회의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환경문제와 기후변화에 대한 더 많은 조치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2021.07.22 ⓒ 연합뉴스

 
기후 선거, 기후 소송

2018-2019년 기후 파업을 통해 "화낼 권리"를 획득한 젊은 세대는 "기후 선거(climate election)"를 다음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정치의 벽은 높았다.

첫 실패는 2019년 말의 영국 총선이었다. 영국 노동당은 기후 변화에 있어 전 세계적으로 앞서가고 있었다. 파리기후협약보다 훨씬 이전인 2008년, 에너지&기후부 장관이었던 노동당 에드워드 밀리반드는 세계 최초로 기후법 제정을 주도, 1990년 기준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80% 감소시킬 것을 법으로 못 박았다. 2019년 노동당은 "녹색산업혁명"(Green Industrial Revolution)을 내걸고 산업 구조의 전환을 약속했다. 하지만, 보수당의 "브렉시트를 끝내자"에 참패했다.

다음은,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었다.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된 기후 운동 단체들이 버니 샌더스의 "녹색 뉴딜"을 지지, 선거 운동에 참여했지만 버니 샌더스는 2020년 4월 조 바이든을 지지하고 물러났다.

기후 변화가 아직은 최우선이 될 수 없는 정치 현실 속에 새로운 돌파구가 젊은 세대에게 주어졌다. 2019년 12월 네덜란드 대법원의 판결이 그것이다. '네덜란드 정부와 우르헨다(Urgenda) 재단' 소송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2013년 900여 명의 주민과 우르헨다 재단이 소극적 기후 대책을 추진하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며 시작된다.

고소인 측은 환경을 개선해 시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네덜란드 정부는 2020년까지 15%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목표를 이행하고 있으며 비용 상 단기간 내에 줄일 수 없다고 맞섰다. 2015년 법원은 국제적 감축 기준이 25-40% 임을 확인, 정부에 2020년까지 25% 감축하라고 결정했다. 정부 측이 항소했지만, 대법원은 2019년 우르헨다 재단 측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은 시민이 인권 개념을 기반으로 하여 정부에 기후 정책 책임을 묻는 유럽 내 첫 판결로 "게임 체인저" 혹은 "역사적 전환"으로 불린다. 이 판결이 가능하기까지에는 유엔의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다.

UN "환경 보호는 인권 보호다"

기후 변화가 인권을 침해하는가? 기후 변화라는 자연 과학적 개념을 정치 사회적 개념인 인권과 연결시키는 질문이 어딘가 어색하다. 침해한다면, 누가 기후 변화를 일으키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리고 어느 정도로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까다로운 질문이 뒤따른다.  

이 질문의 시작은 2005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누 (에스키모) 극지방회의(the Inuit Circumpolar Conference) 의장은 아메리카대륙 인권협회(Inter-American Commission on Human Rights)에 인권 관련 청원을 넣었다. 요지는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해 온 미국 때문에 북극 주변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있고 그 결과 이누인들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은 당시 "돈키호테"같은 것이었고, 해당 인권 협회는 공식 답변도 하지 않았다.

에스키모들의 주장을 주목한 쪽은 기후 변화에 즉각적인 영향을 받는 국가들, 저지대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들이었다. 피지, 바베이도스, 몰디브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2007년 몰디브(Maldives)의 수도 말레(Malé)에 모여 말레 선언을 발표, 기후 변화와 인권이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음을 국제적으로 처음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UN에 기후 변화와 인권과의 관계성 조사를 요청한다.
 

미국 '원주민의 날'인 1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원주민과 환경운동가들이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1.10.11 ⓒ 연합뉴스


2008년 유엔 인권이사회(the UN Human Right Council)는 구체적 사례 연구에 착수한다. 2009년 유엔 인권 고등 판무관실(Office of 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은 기후 변화가 인권 실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기후 변화-인권의 관계성이 법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 적용된다면 어느 선까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법 적용 여부와 관련 없이 유엔은 기후 변화로 인한 인권 침해 사례를 보강했다. 기후 변화로 인한 물 부족 및 식수 오염, 극심한 더위로 인한 농업 생산량 감소,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주거 불안의 사례가 누적되었다. 그리고 2015년 12월 유엔 환경프로그램(UN Environment Programme)은 '기후 변화와 인권'이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기후 변화는 우리 세대 인권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의 하나로, 기본적인 생명권에 심각한 위험을 끼치고 있다." 

법원으로 향하는 젊은이들

네덜란드 대법원의 "역사적" 판결 두 달 후인 2020년 2월, 9명의 젊은 독일 기후 운동가들은 독일 기후보호법(Climate Action Law)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이 법은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탄소 배출을 55%까지 감축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원고 측은 55% 감축으로는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억제하기에 불충분하다며, 정부의 부족한 노력으로 인해 독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파리기후협약 실행을 위해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70% 감축하라고 요구했다.

2021년 4월 독일 헌법재판소는 독일 기후보호법이 위헌적이라고 판단했다. 국가는 기본권을 보호하는 일환으로 "삶의 자연적 기반"을 지킬 의무가 있지만 현행법 하에서는 "인간적인 미래"를 가질 권리가 보장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독일 정부에 2030년 이후의 온실 가스 감축 계획을 명확히 세우라고 판결했다. 독일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맞게 법을 수정하겠다고 4월 30일 발표했다.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활동가들이 이산화탄소를 뜻하는 'CO2' 모양의 구조물에 불을 붙여 밝히고 있다. 이날 활동가들은 오는 6일부터 이틀간 독일에서 열리는 제12회 페테르스베르크 기후 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더 적극적인 기후 변화 대응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2021.5.6 ⓒ 연합뉴스


영국의 경우, 인권이라는 전략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가 평등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021년 5월 영국 정부를 고발한 20대 초반 세 명은 공기 오염의 경우 소수 인종과 저소득 계층 주거 지역에 더 심하게 나타나는 등 영국 정부가 사회적 차별로부터 보호할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플라스틱을 빈곤국으로 수출하는 것도 지적하며, 2050년까지 기후 변화를 위한 확실한 청사진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포르투갈의 젊은이들은 기후 변화로 책임을 져야할 국가들의 숫자를 늘렸다. 2020년 9월 2일, 8-21세 6명은 독일 슈트라우스베르크(Strausberg)에 소재한 유럽 인권재판소에 무려 33개국, 즉 EU 전체, 노르웨이, 러시아, 영국 등을 동시 고소했다. 국제앰네스티 법정책 국장 아시팍 칼판(Ashfaq Khalfan)은 "기후 위기는 국경을 존경하지 않는다"며, 포르투갈 소송을 주시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들의 논지는 비슷하다. 33개국이 파리협약에 따른 탄소 배출 감축을 충분히 실천하지 않음으로써 인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대규모 산불 및 극심한 더위를 겪은 이들은 기후 변화로 인해 생명권이 위협받고 있으며, 야외 활동을 할 수가 없어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훼손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0년 11월 30일 유럽 인권재판소는 이례적으로 이 사건을 신속 심사(fast-tracking)로 검토하겠다고 결정했다. 소송에 걸린 국가들은 신속 심사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이 사건을 맡은 GLAN(Global Legal Action Network)은 "이것은 (기후 소송은) 젊은 세대 운동의 귀결이다. 지금 그들은 법원이 한 발짝 더 나오기(step up)를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당신은 노화로 죽을 것이다. 나는 기후 변화로 죽을 것이다."

2019년 기후 파업 때 사용된 대표 구호 중의 하나다. 죽음을 소재로 기존 세대와 확실히 선을 그으며 세계 모든 젊은 세대에게 통할 정체성을 형성한 강렬한 구호다. 이들은 거리 활동으로 "화낼 권리"를 획득했고 "미래 세대의 권리"도 법원에서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남은 건 이들이 실패한 기후 선거다. 그래야 기후 변화와 자본주의를 논할 수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