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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유학생을 대상으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을 시도했던 문경시 규탄 기자회견
▲ 인구증가 위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추진한 문경시 규탄 기자회견 베트남 유학생을 대상으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을 시도했던 문경시 규탄 기자회견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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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가져온 변화를 가장 확실하게 느끼는 곳 중 하나는 외국인 인력난에 시달리는 산업현장이다. 2019년 252만 명이던 국내 체류 외국인은 코로나 이후 엄격한 국경 통제로 현재 197만 명으로 줄었다. 그에 따라 더럽고 힘들고 위험하지만 저임금인 제조업과 농어업체 고용주들은 출입국 통계가 아니라도 국내체류 외국인 감소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반면, 50만이 넘는 대도시 인구가 감소하는 동안에도 증가세를 유지한 체류 자격이 있다. 국민의 배우자인 결혼이민자(F6) 비자다. 2019년 16만6025명이던 결혼이민자는 코로나로 인해 전년대비 혼인건수는 줄고, 체류자격별로 모든 외국인이 감소세를 보였던 작년(1.5%)은 물론이고, 올해도 0.5% 증가하여 16만8545(7월말 기준)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결혼이민자 숫자가 누적되기 때문에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는 부분이긴 하나 전체 혼인 건수 중 국제결혼이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사회에서 점차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국제결혼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특별히 귀환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국경을 넘어서 결혼을 선택하는 것은 어지간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러나 돌아간다는 건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혼 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제도적 구조적 환경에 처한 이들은 귀국에 앞서 주먹을 굳게 쥐고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해야 한다. 이혼이 파생시킨 문제와 주위 시선 때문에 그렇다. 

귀환이주여성들을 직접 만난 이들

대한민국에 결혼비자로 입국했지만 체류 연장이 되지 않는 건이 연간 약 1천 명이다. 이 중 여성이 얼마를 차지하는지 별도 통계는 없지만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월보에 따르면 결혼이민자 중 남성이 19%, 여성이 81%다. 이를 기계적으로 계산하면 약 800명이 넘는 여성이 매년 체류 자격을 상실하여 귀국하거나 미등록 체류를 하고 있다. 그들 중 얼마가 귀환을 선택하는지도 통계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없지 않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베트남 사무소에 따르면 2015-2019년까지 코이카가 귀환이주여성 지원사업 대상으로 삼은 5곳에서 한국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은 총 1084명이 넘는다. 베트남 여성과 함께 돌아온 아동의 수는 총 229명이다. 전체 결혼이주민 중 베트남 여성이 23%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해마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결혼이주여성이 베트남보다 네 배 이상일 거라고 추산할 수 있다. 

지난 7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펴낸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결혼이주를 선택했던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서 귀국을 선택했는지, 본국으로 돌아간 후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필리핀, 몽골, 태국에서 귀환 이주여성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자발적 귀환도 있지만 대다수는 한국사회가 '쫓아낸' 경우다. 여기 쫓겨난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자 귀환이주여성들을 직접 만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정리한 활동가들이 있다. 

사비까지 털어 귀환이주여성 지원하는 이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책표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책표지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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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위탁받아 운영하는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에서 몽골 상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나랑토야씨는 2019년에 몽골에서 귀환이주여성들을 만났다. 그 후 그들을 대신해 혼인관계를 정리하는 일을 종종 돕고 있다. 귀환이주여성이 본국에서 새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을 서류상으로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원 업무를 하다 보면 귀환이주여성 지원사업에 배정된 예산이 없는 관계로 사비를 들여 서류를 발급받아야 할 때도 있다. 상담이 한꺼번에 몰리면 부담이 되겠지만 동시에 이뤄지지 않아 그나마 큰 부담 없이 사비를 지출하고 있다는 그는 최근 기자와 만나 이미 한국을 떠난 이주민에게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폭력피해 이주여성 지원 사업에 (폭력피해로) 귀환한 이주여성을 지원할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했으면 좋겠다."

나랑토야씨는 결혼이주민 당사자로 한국에서 17년째 생활하고 있지만 선주민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과도한 혜택과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주민 사회통합만 강조하고, 선주민들이 이주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서로를 존중하며 생활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는 현 다문화 이주민 정책은 매우 미흡하다. 
 
"현재 한국에서 추진되는 다문화가족 정책은 이주여성이 한국어와 문화를 배우고 한국에 잘 적응해 아내, 며느리, 엄마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구조 안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의 안전과 삶은 남편, 그리고 남편의 집안사람들에게 달려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p.158)

나랑토야씨는 다문화사회는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 어울려 만들어 가는 과정인데 선주민들은 낯선 이주민들과 살아갈 준비가 안 돼 있다며, 어떻게 보다 나은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겠냐고 묻는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체류 자격을 잃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존재하는데 달라진 게 없다는 나랑토야씨는 책에서 이렇게 통탄한다.
 
"귀환,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나에게는 어쩐지 멀고 어렵게 느껴지는 단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귀환은 설레고,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기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주여성 현장에서의 귀환은 겁나고, 창피하고, 미안해하는 일이 되어버렸다."(P.156)

몽골, 필리핀, 태국 3개국을 방문해 만난 여성들이 겪은 폭력 실태가 너무나 비슷하다는 사실에 참담했다는 김혜정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교육팀장은 여성의 안전한 이주를 위한 연대와 지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주여성이 이혼과 이주배경아동의 국적이나 인지소송 등을 진행하고자 할 때 경험하는 국내 입국 거절 사례 등을 예로 들며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가령 결혼이주여성의 출국 전 교육을 담당하는 현지 기관 등에 대한 지원과 협업이 한국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관련 사업들이 점차 종료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한다. 

"가정폭력피해자로 본국으로 도망치듯 돌아왔지만 한국에서 처리해야 하는 이혼이나 아이 국적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문제를 풀기 위해 한국에 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현실, 아이와 사회재통합과정의 한계 등은 이주여성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혼이주여성과 이주배경아동의 체류와 권리문제에 대해 양국 정부는 물론이고 민간단체 협조가 있어야 한다." 

김 팀장은 실태 조사 이후 귀환이주여성들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이 끊이지 않는다며 여성의 안전한 이주를 위한 연대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보다 안전한 이주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한국에서의 관련 행정, 법률의 개선과 통합적·제도적 지원의 길이 마련되어야 한다. 시민단체 사이의 연대와 정부기관 사이의 협력에 기반한 국가 간 효율적인 지원체계가 작동할 때 여성들의 이주는 비로소 안전해질 것이다."(p.148)

이주여성 지원활동을 하면서 현장이 정말 다양하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는 김 팀장은 이주여성들이 여성이며 이주민으로 겪는 이중 차별적 구조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현실에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이주여성들이 새로운 꿈과 도전을 위해 한국에 입국했지만 이주민이라는 신분적 불안과 차별을 경험하고 여성으로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 젠더폭력에 노출된다. 한국에서 자녀를 임신하고 출산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체류상태와 여성과 아동의 권리가 배제되기 십상이다. 이혼 후 이주배경아동의 국적취득과 이혼 당사자의 한국입국도 한국남성에 의해서만 가능한 현실이다. 이주민에 대한 권리가 타인에 의해 보증되지 않고 스스로에 의한 것으로 권리보장이 주어지길 기대한다. 또한 이주여성이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한다."

함께 살 권리, 귀환한 여성과 아동에 대한 한국사회 책무

결혼이주여성들이 귀환을 결정하는 주된 이유는 제도에 있다. 한국인과 혼인하여 자녀 없이 이혼할 경우, 귀책사유 없음을 법적으로 증명하지 못할 경우 체류자격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있더라도 한국에서 아이를 양육하기가 녹록하지 않아 귀환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렇게 귀환하면 이주여성과 아이들은 한국사회에서 잊힌 존재가 된다. 심지어 본국에서조차 루머와 낙인의 대상이 되며 환영받지 못한다. 

귀환이주여성 문제를 연구해 온 연세대 김현미 교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서 귀환이주여성과 아이가 겪고 있는 큰 어려움 이유로 아버지의 부재 또는 책임 방기를 들며 이렇게 말한다. 
 
"베트남의 한국계 자녀인 '라이따이한'과 필리핀의 한국계 자녀인 '코피노' 등 초국적으로 존재하는 한국계 아이들이 겪는 문제는 우리의 역사적 '상흔'이자, 현재에 존재하며 미래에 도래할 우리의 책임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귀환이주여성들과 동반해 함께 귀환한 자녀들의 숫자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조차 갖고 있지 않다"(p.166)

그나마 코이카 베트남 사무소가 현지 여성연맹과 국제이주기구(IOM)와 손잡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귀환이주여성과 아동에 대한 법적, 제도적인 지원 틀을 마련하기 위해 하는 지원사업은 유의미하다.

코이카는 베트남 귀환이주여성들이 법적으로 맞닥뜨리는 많은 문제(혼인·이혼·출생신고 등) 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해 현지 관계 부처들을 모아 논의하고, 그들의 재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을 2015년부터 펼쳐왔다. 타 기관 지원사업들이 대부분 여성 개인에게 서비스를 해주는 것이 특징이라면 코이카 사업은 이주여성 문제 논의를 베트남 정부 내에서 시작하도록 하는 시도다.

다만 이 사업이 올해 종료될 예정이라 끊이지 않는 귀환이주여성과 아동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이 끊길까 하는 우려가 있다. 오히려 베트남뿐만 아니라 주요 결혼이주민 출신 국가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좀 더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지원을 위해 민간단체와도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김현미 교수의 말이다.
 
"결혼이주는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둘러싼 전 과정은 분명 초국적인 연대와 법적 지원, 돌봄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다. 무엇보다 법에 존재하는 남성 중심주의와 외국인 차별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다."(p.168)

'이주'를 선택하는 이들은 결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어느 나라든지 이주를 선택하는 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도모하고자 하는 의지적 존재다. 무엇보다 결혼이주라면 더욱 그렇고, 귀환을 결정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함부로 재단해서 안 되고, 그들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는 이유다.

태그:#결혼이주여성, #귀환, #코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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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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