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방송에서 건강식품 다루는 걸 종종 본다. 시청자들은 방송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정보를 얻는다. 식품에 대한 신뢰는 덤이다. 그리고 그 신뢰는 식품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해당 프로그램은 정말 그 식품에 대해 제대로 검증한 걸까. 

탐사 전문 매체인 <뉴스타파>는 지난 8월 24일 '방송인가 광고인가 : 아침 방송에서 체리를 팔아봤습니다'라는 기사를 업로드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뉴스타파> 측은 방송사들에 '체리를 홍보하려 한다'고 문의했고, 많게는 1억, 적게는 300만 원의 협찬비를 제공하면 방송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뉴스타파> 측은 고민 끝에 5분짜리 영상을 위해 협찬비 660만원을 SBS BIZ쪽에 전달하고, 그 결과 '생생경제 정보톡톡'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체리가 소개되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방송사가 검증을 위해 요구한 건 사업자등록증. <뉴스타파> 측이 서남식품이라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사업자등록증을 제출하자 방송사 측은 체리를 먹고 건강해진 사례자를 지인 중 추천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이렇게 제작된 영상은 '생생경제 정보톡톡'을 통해 5분 정도 전파를 탄다. 

방송이 나간 후 <뉴스타파> 측은 이 내용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협찬금 660만 원은 누구에게 돌아가는 것인지, 협찬방송이란 사실을 왜 미리 고지하지 않았는지 질의하려 했지만 방송사 측 담당자와 통화조차 할 수 없었다. SBS BIZ측은 며칠 후, 방송 내용이 허위사실이었다며 사과 방송을 했다. 현재 '생생경제 정보톡톡' 홈페이지와 다시보기는 모두 삭제된 상태다.   

취재 뒷이야기가 궁금해 '방송인가 광고인가 : 아침 방송에서 체리를 팔아봤습니다'편을 취재한 <뉴스타파> 김강민 기자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뉴스타파>의 한 장면

<뉴스타파>의 한 장면 ⓒ 뉴스타파

 
다음은 김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지난 8월 24일 <뉴스타파>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된 '방송인가 광고인가 : 아침방송에서 체리를 팔아봤습니다'라는 기사가 화제인데, 소회가 어떠세요. 
"오랫동안 준비한 아이템이 방송됐고 또 여론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일단 만족하고 있습니다."

- 아침 방송에서 체리 팔아볼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언론계 변종 돈벌이에 대한 취재를 계속해왔습니다. 홈쇼핑-방송 연계편성 이런 문제를 계속 취재하고 있었는데 이 연계편성에 사용되는 방송이 사실은 협찬 방송이거든요. 취재하다 보니 협찬 방송이 구체적으로 어떤 구조로 만들어지는지, 돈은 얼마를 내야 되고 또 어떤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드는지, 방송의 공공성이 잘 지켜지는지 이런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해서 직접 팔아보기로 했습니다."

- 취재하기 전에도 그런 방송 한 번쯤 본 적 있을 텐데 어떻게 보셨어요?
"사실 저는 이런 방송 문제를 계속 취재해 왔는데 아침 방송이든 건강 관련 방송이든 내용에 별로 믿음이 가진 않았어요. 그런데 직접 취재를 해보니까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다른 과일도 많은 데 왜 체리를 선택하셨어요?
"처음에는 다른 기능성 식품을 가지고 마케팅 업체들을 접촉했었거든요. 그러나 직접 뛰어드는 시점에 아이템을 체리로 정했습니다. 저희가 잠입 취재하면서 잘못된 내용이 방송될 가능성을 확인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잘못된 내용이 실제 방송되면 시청자 피해가 생길 수 있잖아요. 그래서 과일로 결정했습니다. 체리는 사실 비싸기도 하고 체리를 건강 때문에 꾸준히 매일 먹는 분들이 많지는 않겠죠. 여러 가지 고려를 했습니다."

- 아침 방송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일단 저희가 연계 편성 문제에 관심이 있었어요. 연계편성에는 보통 1시간짜리 건강 교양 방송이 사용되거든요. 그런 프로그램들은 7000만 원에서 1억 원 이상 돈을 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직접 해볼 생각은 못 하고 있었는데, 4~5분짜리 아침방송 꼭지는 조금 더 가격이 싸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지상파는 1500만 원 이상을 줘야 한다고 했는데, 종편이나 케이블 채널 아침방송 꼭지는 6~700만 원, 아주 싸게는 300만 원대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가격이 맞아서 하게 된 거죠."

- 돈만 준다면 지상파 방송에서 검증없이 식품을 소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일단 저희 취재 대상이 아닌 프로그램에 대해서 말씀 드리기가 조심스러워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저희가 알아본 내용으로는 채널 번호에 따라서 가격만 다를 뿐 돈만 내면 협찬을 해주는 구조 자체는 동일한 것으로 보여요. 그리고 제작방식에 있어서도 대부분 그 방송사에 직접 소속된 분들이 만드는 게 아니라 외주 제작업체에 맡겨서 제작하거든요."

- 이게 불법은 아니라고 들었어요. 
"방송법에는 협찬을 받아서 프로그램을 만들 때 '협찬 고지를 할 수 있다'고만 돼 있습니다. 의무조항이 아닌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불법은 아닌 거죠. 그렇지만 협찬 업체에서 상당한 돈을 받고 이 협찬 업체를 홍보해주는 영상을 방송한 거잖아요? 뒷광고라는 문제가 남는 겁니다. 유튜브 뒷광고 사태도 사실 같은 구조인데 협찬금을 받고 유튜브를 만든 데 대해서 많은 사람이 분노를 했잖아요. 그리고 실제로 유튜버들에 대한 법령이 바뀌었고, 유튜버들은 협찬 고지를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방송국은 이런 규제가 적용이 안 되는 거예요.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거죠."

- 광고 대행 업체를 통해 하신 거 같던데.
"단순히 광고 대행 업무만 하는 것은 아니고 그 프로그램을 실제 제작하기도 하는 업체였어요. 비용이나 효율성 면에서 외주제작 방식을 선택할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건 그 방송사의 전파로 방송된 거잖아요. 그러면 방송사가 방송 내용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기능을 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이 전혀 없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방송을 위해) 서남식품이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잖아요. 사업자 등록증만 있으면 가능한 거 같던데.
"제작사에서 이 회사가 실체가 있는 회사인지를 나름대로 검증한다고 사업자등록증을 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었고 홈페이지도 하나 같이 만들었어요. 온라인 샵을 하나 열었고 사업자등록증이랑 온라인샵 링크를 보내 줬습니다. 그런데 사실 검증을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검증을 할 수 있었겠죠. 사업자 등록증에 발급날짜가 나와서 만든 지 얼마 안 된 업체라는 걸 알 수 있고요. 온라인샵도 개설한 지 얼마 안 됐고 제대로 된 상품도 안 올라와 있었어요. 이런 걸 검증하고 거르지 않더라고요."

- 마음만 먹으면 방송으로 사기도 가능하다는 건가요?
"맞아요. 기사형 광고 사례 중에서는 상품권 판매를 하는 업체가 기사형 광고를 통해서 업체 신뢰도를 확 높여놓은 다음에 여러 사람한테 피해를 주는 사건도 있었거든요."

- 기자님은 서류상 서남식품 대표로 되었는데 방소엔 사례자로 나오죠. 제작진이 제안했다면서요?
"일단 제가 서류상으로는 서남식품의 대표였습니다. 제작사에 연락할 때는 '삼촌이 체리 농장을 한다. 그래서 조카인 내가 유통을 도와준다'고 설명을 했어요. 협찬금을 지불한 다음에 구성 작가가 연락하더라고요. 구성 작가가 지인이나 가족 중에 주부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을 좀 찾아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구해 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 얘기했더니 제가 나올 수 있냐는 취지로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나오면 좀 그렇지 않나요'라는 얘기를 했는데 '상관이 없다. 농장에서 삼촌이 인터뷰하면 대표님(기자)이 사례자로 나와도 전혀 문제가 안 된다'라는 거예요. 결국 제가 사례자로 출연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사례자로 나왔습니다."

- <뉴스타파> 김경래 기자는 체리 전문가로 나왔는데요. 
"저희가 사실 체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해 급하게 검색을 하고 갔습니다. 농장에 가서 김경래 기자가 '우리가 미국 체리와 일본 체리를 섞은 신품종을 만들었는데, 당도도 높고 산도는 낮다. 우리 체리는 두 배로 먹어도 된다'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 검증된 내용이 아니었는데 그대로 방송됐습니다."

- 방송 전에 제작진이 검증을 해야 하지 않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전문가를 투입할 때 검증할만한 장치를 준비해 놨습니다. 김경래 기자가 소속됐다고 했던 연구소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연구소였습니다. 그런 이름의 연구원도 없고요. 그러니까 검색을 두어 번만 해 보면 연구소도 없고 연구원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한 검증이 없었고, 결국 가짜 전문가의 멘트가 다 실제로 방송이 됐습니다."

- 방송 나갈 때 어떻게 보셨어요?
"촬영할 때부터 검증이 없다고 생각했고, 방송 내용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준비했던 내용대로 방송에 나오는 걸 보고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 방송 후 체리가 7개 팔렸다던데.
"제가 개설해 놨던 온라인샵에서 체리가 7개 팔렸어요. 본 방송 끝나는 시간에 2개, 재방송 끝나는 저녁 시간에 5개 팔렸습니다. 서남식품은 체리를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일일이 전화드리고 주문을 취소했습니다. 그때 (소비자분들에게) 방송을 봤는지, 이게 협찬금으로 만든 방송인지 알았느냐고 물었는데 대부분 전혀 모르고 계셨어요."

- 방송 협찬비 660만 원 투자해서 (체리를) 7개 팔았으면 광고 효과가 없는 거 아닌가요?
"660만 원을 내고 7개 팔았으면 적게 판 거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 업체 입장에서 보면 신뢰도를 산 거예요. 이 영상을 가지고 다른 검색 마케팅이나 바이럴 마케팅 같은 걸 이어나가면서 신뢰로의 원천으로 쓸 수 있는 거죠. 사실은 그게 뒷광고의 위험인 거 같습니다."

- 방송 후 SBS 비즈 측에 얘기했다던데, 그쪽 반응이 어땠나요?
"사실 저희가 공식적으로 반응을 듣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반론을 받는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질의서를 내용증명 우편으로 보냈거든요. 그런데도 답변은 없었습니다. 다만 방송 나가고 5일 만에 사과방송이 나왔습니다. 사과방송을 보고 입장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죠. 사과방송 내용에서 '모 인터넷 뉴스 사이트가 몇 달 전부터 사업자를 등록하고 스토어도 개설해서 의도적으로 속이고 접근을 했다. 사례자와 전문가를 사칭해서 혼란을 줬다. 그렇지만 검증하지 못해 죄송하다'라는 표현이 들어 있어요. 형식적으로 사과방송이긴 한데 내용 면에서 봤을 때 이게 사과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실제하고 다른 부분도 있었죠. 사례자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사례자를 사칭한 게 아니라 저희에게 사례자로 나와 달라고 제작진이 요구한 거잖아요. 그리고 저희가 체리 사업체 경력이 아주 많은 건 아니고 사업자등록증만 봐도 급조된 업체인 걸 알 수 있는데 저희가 너무 잘 속여서 속았다고 하는 건 납득이 안 돼요."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이미 유튜브 뒷광고에도 규제가 도입됐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방송사의 뒷광고인 협찬에 대해서는 법령에 따른 규제가 전혀 없습니다. 이건 형평성에 맞지 않죠. 협찬 방송에 대해 협찬 사실을 고지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규제라도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저희 보도 결과 그 프로그램이 없어졌어요. 굉장히 황당한 방식으로 없어졌어요. 프로그램 종영하면서 홈페이지도 없앴고, 다시보기까지 없앴습니다. 방송사에서 프로그램 없애는 것 말고 어떤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프로그램을 또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홍보성 프로그램 자체는 필요할 수도 있다고 봐요. 소상공인들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홍보를 할 수도 있고요. 다만 국회나 방통위에서는 제대로 된 규제를 마련하고 방송사에서도 규제를 받아들여서 검증하고 고지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강민 체리 아침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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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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