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02 14:58최종 업데이트 21.09.0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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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교도=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28일 관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긴급사태 연장 배경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5.28 ⓒ 연합뉴스


선거 정국이 돌아왔다. 그것도 45년만의 임기만료 총선거다.

보통 일본의 중의원은 내각총해산에 의한 총선거가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내각총리대신의 권한 때문이다. 일찍이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의 힘은 각료임명권과 총해산권이 전부다"라고 공언한 바 있다. 실제로 그 역시 총리 재임 시절 오키나와 반환을 공식화 한 후 바로 총해산을 실시해 승리한 바 있다. 국가전반의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총리의 권한이 가장 강력해졌을 때 승부수를 띄우는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한 이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였다. 그는 2005년 8월, 지금 돌이켜보면 사실 별 것도 아닌 '우정민영화(우체국 민영화)'를 고이즈미 개혁의 중추라 칭하며 거대한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 내더니 우정민영화에 관한 국민의 뜻을 묻겠다며 총해산을 실시해 '고이즈미 칠드런'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승리했다.

이례적인 상황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2.8.10 ⓒ 연합뉴스=EPA

 
반면 임기만료가 다가와 어쩔 수 없이 내각총해산이라는 기존의 관례에 사로잡혀 총해산을 실시했다가 망한 사례도 있다.

2009년 아소 다로 내각과 2012년 노다 요시히코 내각이 그러했다. 아소 내각은 2008년 발족 직후 미국 발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인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등으로 인해 내각 지지율이 10-20% 대를 오갔다. 눈에 보이는 뚜렷한 대책도 없는 상태에서, 그의 독선적인 성격 및 여전히 당내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던 반(反)우정민영화 세력들과의 갈등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총해산을 실시했다. 반 아소 세력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한 총선거였다.

즉, 자민당 입장에서는 대의명분이 하나도 없었던 그 총선거에서 일본 민주당은 다채로운 정권공약(매니페스토)과 정권을 잡을 경우 누가 어떤 식으로 나라를 운영할 것인지 내각 각료들까지 미리 다 정해놓는(shadow cabinet)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 이어 1995년 자민당·사회당·신당사키가케 연립내각을 제외한다면 처음으로 실질적인 정권교체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 체제로 출범한 민주당 역시 2011년 동일본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처리에서 불거진 아마추어리즘과 총해산이 아닌 전당대회를 통한 당대표, 즉 내각총리대신의 선출이 두 차례나 이어지면서 지지율이 대폭 떨어졌다. 결국 민주당의 마지막 총리대신이었던 노다 요시히코는 2012년 12월 총해산 총선거를 실시해 돌아온 아베 자민당에 대참패를 당했다.

그 이후는 잘 알다시피 아베 내각이 7년 8개월을 했고, 작년 9월부터 자민당 당대표 선거를 통해 총재, 즉 총리대신이 된 스가 요시히데가 일본을 이끌고 있다. 위 사례들의 공통점은 상황의 유불리를 떠나 중의원의 경우 일단 '내각총해산 후 총선거'가 일본의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반면 참의원은 내각구성에 영향을 못 미치기 때문에 무조건 6년의 임기가 끝난 후 '통상선거'를 치르게 돼 있다).

그런데 이번엔 총해산이 아닌 임기만료에 따른 총선거(10월 17일)라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게다가 집권여당인 자민당의 총재선거(9월 29일)까지 겹쳤다. 이유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다. 하루 평균 확진자 1만 5천 명에서 2만 명을 오고가고 연장을 거듭하고 있는 긴급사태선언 상황 하에서는 도저히 해산 총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것이 스가 총리의 입장이다. 작년에도 비슷했다. 물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건강상 문제가 가장 컸지만 여전히 코로나 정국이었던 관계로 전국적 선거를 실시할 상황이 아니라는 의견이 우세했고, 결국 긴급양원총회라는 임시방편으로 행해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스가 총리가 압승했다.

지지율 1-4위 불출마 선언
 

기시다 후미오 전 자민당 정조회장 ⓒ EPA=연합


자민당 총재선거로 총리를 뽑는 것은 작년과 같다.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일단 출마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기시다 후미오 전 정조회장이 출마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요미우리신문>의 8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이 생각하는 차기 총리로 적합한 인물 순위'에서 기시다는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19%), 고노 다로 백신담당상(18%),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17%), 아베 전 총리(12%)에도 못 미치는 5위를 기록했다. 물론 기시다는 3%를 기록한 스가 현 총리보단 나은 8%를 기록했지만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정작 상위권인 이시바, 고노, 고이즈미 등은 모조리 불출마를 선언했고 아베 전 총리와 총선거 전략을 책임져야 할 니카이 간사장은 스가 총리의 연임을 지지했다.

결국 자민당 총재선거는 20%대의 내각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스가와 존재감이 사라져버린 기시다의 대결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관심이 높아질 수가 없다. 한국식으로 따지자면 지지율 1, 2, 3, 4위 대선후보가 모조리 다 빠져버린 대통령 선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런 허망한 사태가 발생했을까. 똑같은 상황에서 펼쳐졌던 작년 총재선거는 그래도 꽤 흥미진진했다. 스가, 이시바, 기시다 후보에 각 파벌들의 지지 후보, 니카이 간사장 및 아오키 미키오 전 참의원장의 의중 등등 여러모로 흥미로운 분석재료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총리를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지닌 후보들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 도쿄도(東京都) 우에노(上野)역 인근 거리가 행인들로 붐비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30일 일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사태를 확대·연장하기로 결정했다. 2021.7.30 ⓒ 연합뉴스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되더라도 평균 1만 5천명을 넘나드는, 게다가 델타 변이의 새로운 형태인 '도쿄 발 변이'까지 발생한 일본의 코로나 사태를 통제할 수 없다. 두 번째 이유는 10월 총선거 결과의 책임을 지기 싫어서다. 현재 자민당의 중의원 의석은 8월 11일 현재 총 465석 중 276석으로 압도적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임기만료 총선거를 치르더라도 자민당은 중의원 원내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 의석보다 43석을 덜 얻을 경우 단독 과반수가 되지 못한다. 자민당의 경우 단독과반수를 실현하지 못할 경우 선거패배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그 책임을 지기 싫다는 것이다.

일본 미래 가늠할 전환점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12일 오후 청와대 접견실에서 아베 신조 일본총리 특사로 방한한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의 예방을 받고 있다. 2017.6.12 ⓒ 연합뉴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연임 가능성이 높은 스가 총리는 벌써부터 총선거 전략을 들고 나왔다. 그는 8월 30일 니카이 간사장을 만나 1시간 동안 회담을 한 후 "과감한 인적쇄신(인사)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간사장, 정조회장, 국회대책위원장 등 내각이 아닌 당내 인사를 대대적으로 교체하겠다는 것 자체가 총선전략이다. 무엇보다 무파벌에 당내기반이 없던 자신을 총리로 만들어 준 가장 큰 은인 니카이 간사장에게 물러나 달라는 요구를 했고, 니카이 간사장 역시 진의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9월 6일 5년간 재임해왔던 간사장 직에서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간사장은 흔히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불린다. 간사장을 총선거를 앞둔 시점에 교체하겠다는 것은 총리가 아닌 당 총재로서 자신의 정치력과 카리스마를 입증해, 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라고 봐야 한다. 스가 총리가 발 빠르게 움직이자 기시다 후보도 "당5역 인사 임기는 1기 1년, 최장 3년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기시다의 발표대로라면 이미 5년이나 간사장 직을 수행하고 있던 니카이는 자동으로 탈락된다. 스가가 당사자를 만나 담판을 지었다면, 기시다는 시스템(당규 변경)으로 니카이를 끌어내리겠다는 뜻이다.

니카이에 집착하는 이유는, '요괴'라는 별명이 의미하듯 그의 존재가 자민당이 낡고 늙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후임 간사장 후보로 거론되는 노다 세이코나 고이즈미 신지로 등으로 세대교체를 일궈내겠다는 것이 스가 총리의 생각이며, 이러한 인사를 통해 한달 반 앞으로 다가온 총선거를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총선거는 일본사회 전체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전환점이다. 정권 재탈환 후 지난 8년 8개월간 일본은 배제와 차별, 역사수정주의가 당연하게 통용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관료의 촌탁과 긴급 상황에 대비하지 못하는 낡은 매뉴얼주의, 선진 민주주의 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이익집단 로비와 사적 이익 편취, 국가 예산의 무분별한 남용, 중앙은행의 직접적 시장개입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위들이 자연스레 행해졌다. 이러한 정치에 과연 일본 유권자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여전히 자민당이 단독 과반수를 차지한다면 일본사회의 미래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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