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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달 31일 2022년도 예산안을 발표했습니다. 총지출 604조 4천억 원, 총수입 548조 8천억 원. 지출이 수입보다 많은 적자재정이 3년째 이어지면서 국가 부채는 내년에 1068조 3천억 원(국내총생산 대비 50.2%)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부채를 누가 갚느냐는 문제에서 시작해 인구도 감소하는데 미래 세대는 빚만 짊어지게 생겼다는 말까지 언론 보도에 나오면서 다시 인구 감소에 관한 걱정이 커졌습니다.

지난 1월 3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2020년 12월 31일 기준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는 모두 5182만 9023명으로 2019년 12월 31일보다 2만 838명(0.04%) 감소해 주민등록 기준으로 처음으로 인구가 줄었습니다. 이 해 출생자는 27만 5815명, 사망자는 30만 7764명으로 사망자 수가 많아지며 인구가 자연 감소한 게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지난 7월 30일 자 <세금·복지 누가 떠맡나…유소년·생산인구 감소 '아찔'>(매일경제)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당장 10년 후 생산인구 감소로 "국가 경제는 물론 사회 구조가 뿌리째 흔들리는 엄청난 충격"이 오고 "경제·사회 전반에 쓰나미"가 될 거라 걱정합니다. 이어 "국가의 세금과 복지를 떠맡을" 유소년 인구의 감소세가 "아찔하기만 하다"라며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지구상 최악으로 떨어진 탓"이라고 합니다. 

아찔, 충격, 쓰나미, 최악...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심정이 묻어있는 기사입니다. 이 기사 외에도 인구 감소로 국가 존립이 위태롭다는 기사는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 인구 감소에 관한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는 글이 있어 눈길을 끕니다. 한승동 전 <한겨레> 기자가 쓴 '인구가 줄면 과연 삶의 질이 떨어지고 나라는 망할까?'(피렌체의 식탁, 2021.8.24)입니다.

지구가 감당 못해

한승동은 코로나19와 기후위기를 계기로 인구 감소에 관한 생각을 바꿔보자고 합니다. 국가 단위의 '인구는 국력'이라는 틀에서 보지 말고 지구라는 행성의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자는 겁니다. 

그는 현 시기 지구의 위기는 과잉 인구 때문이라고 봅니다. 과잉 인구가 자원을 과잉 소비하며 지구를 파괴하는 한 아무리 백신을 만들고 친환경 기술을 개발한다 해도 대증요법에 그칩니다.

그러면 <어벤져스>의 타노스처럼 인류의 절반을 날려버리기라도 해야 할까요. "대량의 비자발적 희생자를 내는 방식이 아닌 자발적·점진적 선택을 통한 감소"로 인류의 수가 줄어들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저출생으로 인구 증가가 멈췄거나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지구 생태계에는 회복할 기회입니다. 
 
중국 광둥성 광저우 거리에 '지구의 날'인 22일 마스크가 씌워진 지구본이 놓여 있다. 2020.4.22
 중국 광둥성 광저우 거리에 "지구의 날"인 22일 마스크가 씌워진 지구본이 놓여 있다. 20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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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은 일본의 월간 <세카이(世界)> 8월호 특집 '사피엔스 감소-인류사의 전환점'에 '제로성장경제와 자본주의'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오노즈카 도모지(小野塚知二) 도쿄대 대학원 경제학연구과 교수의 글을 소개합니다. 

오노즈카 도모지는 "인구증가나 경제성장이 항상적이었던 것은 인류사에서는 근세(15세기) 이후 기껏해야 수백 년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그나마 그것도 이미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명백해지고 있다"라고 합니다. 오노즈카 도모지는 이어 "인류가 인구적, 경제적으로 축소하는 쪽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300여 년간(유엔 경제사회국이 2019년에 발표한 세계인구 추계치를 근거로 그가 추산한 기간) 축소과정이 파멸적이지 않는 경로를 더듬어 가"야 한다고 합니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면서.

1900년에 전 세계 인구가 16억이었고 1920년에 19억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50년간 폭발적으로 늘어 2021년 8월 현재 78억 7400만여 명입니다. 인류사뿐만 아니라 지구 역사로 볼 때도 호모 사피엔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현 시기는 매우 특이합니다. 오노즈카 도모지는 20억~25억 명이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인구 수준이라고 봅니다. 그 정도 수준이면 지구 생태계를 별로 훼손하지 않고 인류의 삶을 지속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오노즈카 도모지가 언급한 대로 인구와 경제가 축소하는 쪽으로 나아갈 때 파멸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GDP 집착 그만

앞서 말한 <매일경제> 기사에는 최슬기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말이 나옵니다. 최슬기는 "올해 대학의 정원 미달 사태 같은 인구 구조 변화의 충격이 시차를 두고 교육을 넘어 국방, 임금 체계, 정년 문제, 연금 등 사회 경제 전반으로 확산할 것"이라면서 "앞으로 남은 5∼10년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감당이 어려운 고통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기사에는 인구 감소를 다룰 때마다 빠지지 않는 적은 생산연령 인구가 많은 노년 인구를 부양해야 한다는 노년 부양비 공포도 나옵니다. 자녀세대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는 다짐과 함께.

이런 예측이 "파멸적"인 상황의 사례일 것입니다. 
  
한승동은 "인구감소나 제로 성장을 망국으로 받아들이는 근시안적인 근대적·현대적 관념의 내셔널리즘부터 극복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사진은 서울 명동길을 걷는 시민들. 2021.7.2
 한승동은 "인구감소나 제로 성장을 망국으로 받아들이는 근시안적인 근대적·현대적 관념의 내셔널리즘부터 극복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사진은 서울 명동길을 걷는 시민들. 202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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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은 "인구감소나 제로 성장을 망국으로 받아들이는 근시안적인 근대적·현대적 관념의 내셔널리즘부터 극복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타국을 경쟁자 내지 가상적으로 상정하고, 국력 경쟁에서 지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민족국가들의 인구감소 공포와 인구증가 집착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서.

국내총생산(GDP)에 그만 집착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한승동은 "중요한 것은 GDP로 포착되는 경제지표의 고저가 아니라 개개인들이 얼마나 안락하고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GDP에는 잡히지 않는 ▲ 풍요롭고 오염되지 않는 자연환경 ▲ 존중받는 직업으로서의 고령자 돌봄 서비스 ▲ 여유 있는 생활공간 ▲ 균형 잡힌 노동·여가를 중심으로 사회를 새로 디자인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한국 사회에는 실제 이런 움직임이 있습니다. 'GDP를 너머 국민총행복(GNH)'을 목표로 하는 사회운동단체가 지난달에 생겼습니다. 도올 김용옥 한신대 교수와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가 대표 발의한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 대행진 추진위원회'로 이 단체는 "우리 사회 발전의 패러다임을 경제성장에서 인간의 보편적 열망인 행복과 균형으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노즈카 도모지 역시 가사노동이나 고령자 돌봄 등 시장을 통한 거래과정에서 제대로 포착되지 않아 GDP 계산에서 누락되는 노동력 및 서비스 등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패러다임의 전환

노동력 부족, 사회보장재정 파탄, 마이너스 성장 등은 인구 감소하면 떠오르는 암울한 사회상입니다. 그러나 인구 감소를 재앙으로만 여기는 것은 "정치와 경제, 문화, 사회 시스템은 거의 모두, 말하자면 우리의 세계관은 인구가 계속 늘어난다는 것을 전제로 구축돼 왔"(<세카이> 8월호 특집 '사피엔스 감소-인류사의 전환점')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인구 감소는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뜻입니다. 한승동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게 맞느냐고 따지는 게 아니라, 인구가 줄어가는 세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 세계를 어떻게 다시 디자인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이전과 다르며 또 달라야 한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경제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 질서가 재편되는 지금 인구 감소에 대한 논의도 지구적인 관점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아이 낳으면 돈 줄게' 식의 차원이 아닌. 

태그:#인구 감소, #지구, #근본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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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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