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25 19:16최종 업데이트 21.08.2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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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여름방학이면 자주 찾는 곳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천해수욕장이었다. 당시 대천해수욕장은 서해의 가장 큰 해수욕장답게 인파도 많았고, 무엇보다 여름이면 머드 축제가 발길을 끌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과 같은 코로나 시국에는 상상도 못 할 참으로 소중한 일상 중 하나였다.
 

대천해수욕장의 머드축제 머드를 몸에 바르고 마르면 바닷물에 들어가 씻는다. 코로나로 인해 과거의 일상이 참 소중했음을 느낀다. ⓒ 최수경

 
국내 대표적인 축제 중 하나인 보령 머드축제는 외국인 관광객의 참여도 두드러졌다. 얼굴과 몸에 온통 머드를 칠하고 돌아다니고, 시간이 지나 젖은 진흙이 건조해져 회색의 낯빛으로 변해 다소 우스운 꼴을 해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머드를 이용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진흙과 바닷물을 오갈수록 피부가 더 건강해진다고 믿었고, 재미도 있었다.
 

대천해수욕장의 여름 조개껍데기로 이루어진 대천해수욕장 ⓒ 최수경

 
한 여름 해수욕장은 유인하지 않아도 저절로 인파가 운집한다. 삼면이 바다인지라 사실상 삼면이 해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수욕하기 좋은 해변은 단연 모래질 해변이다. 그래서 경포해수욕장, 대천해수욕장, 해운대해수욕장 등 동·서·남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여수 앞바다 풍경 몇 시간만 일하면 용돈을 벌 수 있는 마을 앞 갯벌은 생명과 같은 밭이다. ⓒ 최수경

 
흔히 갯벌 하면 머드와 같은 펄을 주로 생각한다. 사실은 모래와 점토의 입자 크기에 따라 모래질 갯벌이냐, 점토질 갯벌이냐로 구분한다. 푹푹 빠지는 펄 갯벌은 조개를 캐는 어민들의 어장을 상기하게 되는데, 실제 어촌마을을 존속하게 한 공동의 밭이자, 어촌 문화의 발원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안의 뻘 갯벌에서 낙지를 잡는 어민 삽질도 신속한데다 일반인은 푹푹 빠지는 뻘에서 물위를 걷듯 가볍게 걸어다닌다. ⓒ 최수경

 
한때는 간척으로 훼손하고 마을 하수와 쓰레기를 흘려버려 오염시키는 쓸모없는 땅이었지만, 해양환경의 오염과 해양자원의 고갈로 인해 해양생태계에 관심을 갖게 된 어민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갯벌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조간대에 따라 나타나는 모래톱 신비의 바닷길 같은 서천군 비인면 선도리의 쌍섬 ⓒ 최수경

 
지난 7월 26일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서해의 갯벌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서해 갯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의 5대 갯벌에 속하는 한반도의 소중한 자연자원이었다. 오랜 노력으로 어렵게 등재되었지만 사실 속을 들여다보자면 부끄럽다.

처음에 세계유산위원회는 갯벌 면적이 충분하지 않고,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핵심 지역이 포함되지 않았으며, 완충 지역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려했다. 그후 보완된 내용에 대해 "한국의 갯벌이 지구 생물 다양성의 보전을 위해 세계적으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서식지 중 하나이며, 특히 멸종위기 철새의 기착지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된다"며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했다.
 

새만금 개발로 배들이 폐업한 하재포구 그 많던 백합 조개는 다 어디로 갔는가. ⓒ 최수경

 
면적이 좁아진 이유는 살 땅을 더 만들자고 메웠기 때문이다. 정권의 야욕에 유린된 새만금 갯벌이 대표적인 예다.  
  

비행기가 내려앉는다는 백령도 사곶해변 모래층이 단단해 활주로로 이용되는 모래갯벌 ⓒ 최수경

 
갯벌은 만과 연안 등 다양한 지리적 특징에 의해 퇴적 작용이 일어나고, 파랑과 조류 에너지와 같은 힘으로 층이 쌓인다. 이런 갯벌들은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처가 될 뿐 아니라 인근 해역에 영양을 공급해 오염 물질을 정화하는 허파 역할을 한다.  
 

서천군 장항읍에서 바라본 금강하구둑 강은 양안의 사람을 모이게 하는 곳이고, 하구는 강과 바닷물을 모으는 곳이건만, 하구둑은 모든 것을 갈라놓았다. ⓒ 최수경

 
특히 한강과 금강 등의 하구역(河口域)은 민물과 조석 주기에 따라 들어오는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다. 파랑과 하천 유량의 영향을 받아 환경 변화 폭이 매우 커서 그만큼 생물 다양성도 역동적이다.  
 

하구둑이 생긴 후 뻘로 가득한 군산 강과 바닷물이 오가지 못해 벌어진 금강하구의 참상 ⓒ 최수경

 
부여 금강가의 세도면에서 하구둑이 생기기까지 물고기를 낚던 어부는 이렇게 말했다.

"금강이 바다와 소통을 하던 때에는 썰물이면 고군산열도나 흑산도까지 금강의 누른 황토 흙이 내려갔어. 들물(밀물의 방언)이면 연평도의 황토 흙을 싣고 왔을 만큼, 황토 흙, 즉 흙탕물은 물속의 물고기 알들에게 약을 주는 물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지."
 

모래갯벌에서 볼 수 있는 생물의 흔적 드러난 갯벌은 사람이 만들 수 없는 아름다운 작품 전시장이다. ⓒ 최수경

 
대륙을 오가며 생애 주기를 완성하는 물새들은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서해 갯벌을 찾는다. 갯골이 그리는 세밀화만큼이나 하구는 독특한 자연환경을 자아낸다. 한강과 금강, 만경강과 동진강과 같은 강의 힘이 바로 하구역 갯벌의 생물다양성을 만들어내는 힘인 것이다. 
 

하구둑이 막혀 담수된 금강호에 핀 녹조. 서천군 조류생태전시관. ⓒ 김종술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이다 보니 입구 자를 써서 하구라 하지만, 상류에서 바라다보면 강 하구는 똥구멍이 아닐 수 없다. 똥구멍이라 표현해서 민망하지만, 사실 온갖 내륙의 잡것을 다 끌어안고 바다에 던져주는 곳이 아닌가. 사람도 똥구멍이 막히면 우선 아랫배가 묵직한 것이 더부룩하고, 가스가 차서 방귀도 안 나온다. 급기야 나 좀 살려줘 하면서 표출되는 것이 얼굴에 나는 뾰루지다.

금강 하구둑의 어도를 통해 금강물이 내려오고 있다. 누런 황톳물이 아닌 녹조물을 흘려보내는 하구둑. ⓒ 최수경

 
강도 똥구멍을 막으면 바닥에 실트층(입자 지름이 0.002∼0.02㎜인 토양입자)이 깔린다. 쉼 없이 흐르며 큰 바윗돌을 모래로 만들어내야 하는데 하구가 막혀 있다 보니 물이 흐르는 힘이 약해 모래가 아닌 실트와 같은 개흙을 강바닥에 쌓아놓는다. 바다로 가지 못한 강물은 방귀도 못 뀌고 녹조가 된다. 죽어서 둥둥 떠오르는 물고기는 뾰루지인 셈이다.

이밖에도 하구둑으로 하구가 막히면서 회귀성 어류가 감소해 관련 수산업이 몰락했다. 또 육지의 영양염류가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썩어 수질이 나빠졌다. 그리고 기 수역(강물이 바닷물과 섞이는 곳, 하구역) 생태계가 단절되면서 갯벌 생태계의 사막화가 가속되고 있다. 
 

군산시에서 바라본 금강하구둑 충남의 해수유통 정책과 군산의 하구둑 보존 정책이 상충해 강을 가운데 놓고 지역 갈등을 유발하는 금강하구둑. 자랑스러운 서해 갯벌을 살찌우기는커녕 똥칠만 하는 전근대적인 유물이다. ⓒ 최수경

 
생태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음이 자명한데도 새만금은 지칠 줄 모르고 직진만 한다. 물고기 알들에게 약이 되는 황토물임을 알면서도 하구둑은 여전히 견고하다. 서해 갯벌 세계자연유산 선정에 부끄러움이 없는지 자문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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