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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성공'과 '행복'을 추구합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성공은 '목적한 바를 이룸'이라는 뜻이고, 행복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 흐뭇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성공은 미래지향적이며 목표와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말이고, 행복은 현재 지향적이며 과정과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잘 산다는 것은 어떠한 삶일까요? 성공한 삶일까요? 행복한 삶일까요? 사실 성공과 행복은 이분법적으로 분리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의미도 없어 보입니다. 사람들마다 행복과 성공이 어떤 것이다라고 하는 생각은 다르지만 대부분 이 둘 다 가지려고 하니까요. 그래서 잘 산다는 것은 성공과 행복을 누리는 삶일 것입니다.

<홍이상평생도>에 나타난 성공과 행복의 조건

옛사람들은 성공과 행복을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조선 후기에 그려진 평생도를 통해 당시 사대부가 생각한 '성공과 행복을 누린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평생도는 유교사회에서 사대부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보통 8장이나 10장, 12장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살펴볼 평생도는 조선 후기에 살았던 홍이상의 일생을 그린 8장의 그림입니다. 홍이상이 죽은 지 160년도 더 지난 1781년에 김홍도가 그렸다고 적혀있습니다(김홍도의 그림을 따라 그려진 그림이라고 말하는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홍이상은 선조, 광해군 때의 관리로 학문이 뛰어났으며 대사헌 등의 높은 벼슬을 하였습니다. 형제 사이에 우애가 뛰어나 남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과거에 급제하게 하였으며, 아들 넷을 과거에 급제하게 하여 자신의 집안을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명문 집안으로 만들었습니다. 
 
홍이상평생도 중 돌잔치 장면/ 김홍도
 홍이상평생도 중 돌잔치 장면/ 김홍도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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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홍이상 평생도>의 첫 번째 그림 일부로 돌잔치를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가 돌잡이를 하려고 하고 있네요. 상 위에는 실과 활, 쌀이 놓여 있습니다. 

아이의 양옆에는 부모가 앉아 돌잡이 물품으로 무엇을 잡을 것인지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있고 아이의 뒤로는 할아버지가 담배를 물고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잔치를 구경하러 온 친지들도 모든 시선이 아이에게 몰려있고 따라온 아이들은 지루한지 칭얼대는 모습을 보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분명 돌잡이를 하기 전인데 아이는 이미 양손에 책과 붓을 쥐고 있습니다. 양반 집안에 태어나 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로 돌잡이를 시작도 하기 전에 미리 쥐여줬네요. 사람의 일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출생 즉, 태어남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유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돌잔치를 첫 번째로 그렸네요.
 
홍이상평생도 중 삼일유가/김홍도
 홍이상평생도 중 삼일유가/김홍도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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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그림은 혼인식을 위해 신부의 집으로 가는 장면이며, 세 번째 그림은 과거에 합격하여 <삼일유가>를 하는 장면입니다. 삼일유가는 과거에 합격하여 임금으로부터 받은 어사화를 꽂고 악사와 광대를 앞세워 3일 동안 거리를 행진하는 것을 말합니다. 

홍이상은 1573년 과거에 장원급제하였습니다. 홍이상은 백마를 타고 목을 한껏 뒤로 젖힌 채 이 흥겨운 잔치를 즐기고 있습니다. 과거급제는 자신뿐만 아니라 집안의 영광이었지요. 
 
홍이상평생도 중 좌의정 장면/김홍도
 홍이상평생도 중 좌의정 장면/김홍도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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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그림부터 일곱 번째 그림은 관직에 있을 때의 그림입니다. 네 번째 그림은 첫 벼슬이었던 한림 겸 수찬으로 부임을 하는 장면이며, 다섯 번째 그림은 송도 유수 부임식, 여섯 번째 그림과 일곱 번째 그림은 병조판서와 좌의정으로 있을 때의 모습입니다. 

위의 그림은 일곱 번째인 좌의정일 때의 모습인데요. 재밌는 것은 부임이나 궁궐로 출근하는 모습이 아니라 퇴근하는 모습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앞서 불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퇴근하는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출근만큼이나 퇴근이 중요한가 봅니다. 

더 재밌는 것은 홍이상이 병조판서나 좌의정의 벼슬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평생도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기보다는 한 사람의 일생을 이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보니 높은 벼슬을 한 장면을 그렸습니다. 홍이상이 죽은 이후 영의정으로 추증되었으니 꼭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여덟 번째 그림인 회혼례는 혼인 60주년을 축하하여 다시 혼인식을 올리는 장면입니다. 회혼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부부가 장수하였다는 것이며, 회혼례 때 자손들이 아이들이 있는 색동옷을 입고 춤추며 축하를 하니 자손이 번성하였다는 것이며, 벼슬을 하는 사람이 회혼례를 할 경우 임금이 선물을 하였으니 사회적으로 성공하였다는 것입니다. 

홍이상은 21세에 정경부인 안동 김씨와 1569년에 혼인하였는데, 안동 김씨는 1616년에 돌아가셨으니 47년간 함께 살았습니다. 이 역시 부부가 60년 동안 함께 사는 것이 이상적인 모습이라 생각하여 실제와 다르게 그린 것입니다.  

정약용과 강세황의 <성공과 행복의 조건>

홍이상의 평생도를 보면 태어나 건강하게 자라는 것, 학문을 쌓아 높은 벼슬과 명예를 얻는 것, 혼인하여 부부 간에 화목하게 지내며 장수하는 것을 '성공과 행복'의 조건으로 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성공과 행복'의 조건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18년간이나 유배생활을 했던 정약용이 스스로 지은 <자찬묘지명>과 강세황이 그린 자화상에 쓴 글에서 <홍이상평생도>에 표현되어 있지 않은 '성공과 행복'의 또 다른 조건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정약용은 18년간의 유배생활을 했으며, 유배생활 이후에도 벼슬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는 직접 쓴 <자찬묘지명>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늘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어리석은 마음을 깨우쳤네
육경을 정밀하게 연구해
미묘한 이치를 깨치고 통했네
간사한 무리들이 기세를 떨쳤지만
하늘이 너를 사랑해 쓰셨으니
잘 거두어 간직하면
장차 멀리까지 날래고 사납게 떨치리라


지금은 비록 간사한 무리들에 의해 자신의 뜻과 자신의 뜻이 담긴 책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자신의 학문을 인정하고 크게 쓰임이 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강세황초상/국립중앙박물관
 강세황초상/국립중앙박물관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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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수염과 눈썹은 새하얗고
머리에는 관리의 모자를 썼으나 옷은 평민의 옷을 입었으니
마음은 산림에 있으나 이름은 조정의 명부에 있네
가슴에 만권의 서적을 간직하였고 필력은 오악을 흔드니
세상 사람들은 어찌 알리.
나 혼자 즐기노라


강세황은 자신이 70세 때 직접 그린 자화상에 위와 같은 말을 적어놓았습니다. 머리에는 관리가 쓰는 모자를 쓰고 있으나 관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그려놓고 남들이 원하는 높은 벼슬보다는 고향으로 돌아가 공부를 하며 사는 삶을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학문과 그림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몰라줘도 내 스스로 아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정약용은 어려운 삶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자신의 묘지명으로 사용하였고, 강세황은 다른 사람이 시선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삶을 그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성공과 행복'의 조건은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었습니다. 

성공과 행복의 조건, 스스로 사랑하기

좋은 직장, 사회적 지위와 명예, 많은 돈은 분명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조건이며 성공의 목표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조건만으로 우리는 '성공,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지만 2018년~2020년 국가 행복지수 순위는 10점 만점에 5.85점으로 전제 조사 대상 149개국 중 62위로 하위권에 머물렀으며 그 이유로 많은 노동시간과 노인빈곤율 등을 들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조건과 행복지수가 상관관계는 있으나 완전히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방법과 함께 스스로의 가치를 알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정약용과 강세황처럼 '멀리까지 사납게 떨치며 스스로 즐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태그:#홍이상평생도, #정약용자찬묘지명, #강세황자화상, #행복과성공, #자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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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삶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쓰는 초등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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