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7 16:46최종 업데이트 21.07.1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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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 림수진

  
"뚱뚱이네 옆집."

우리 마을에서 누군가 우리 집 주소를 물을 때 가장 간결하고 쉽게 통하는 방법이다. 내가 굳이 그렇게 답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물음에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우리 집 주소를 대주기도 한다. 뚱뚱이네 옆집이라고.


수년 전 마을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나를 뚱뚱이네 옆집 사람이라 불렀다. 마을이 생긴 이래 3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동양인이 들어왔으니 우리 집이나 나의 택호는 '아시아댁' 혹은 '한국댁'이 되었어야 할 것이나 엉뚱하게도 '뚱뚱이네 옆집댁'이 되어버렸다.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집 공식 지번 대신 어느 샌가 나도 '뚱뚱이네 옆집'을 우리 집 주소로 쓰고 있다. 가겟집에 외상을 달 때도 뚱뚱이네 옆집이고 GPS에 잡히지 않는 우리 집을 찾아 도시로부터 택배 차량이 들어올 때도 기사에게 마을 사람 아무에게나 뚱뚱이네 옆집을 물으시라 청한다.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도, 뚱뚱이네 옆집 사람으로 칭한다.

뚱뚱이의 정체

마을에서 그토록 유명한 뚱뚱이는 우리 옆집 할머니다. 뚱뚱이, 아무리 별명이라지만 한국에선 누군가에게 섣불리 붙이고 부르기 어려운 별명이다. 그런데 우리 마을에선 뚱뚱이라 불리는 사람이나 뚱뚱이라 부르는 사람이나 수십 년 그렇게 불러온 것을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어느 날 할머니께 여쭈었다. 남들이 뚱뚱하지도 않은 당신을 뚱뚱이라 하는데 기분 나쁘지 않냐고.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다며, 그게 뭐 기분 나쁠 일이냐고 오히려 내게 물었다. 당신의 진짜 이름은 당신에게도 쑥스럽다는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Luz(루스, 빛)라는 할머니의 진짜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우리 마을에서 오직 '뚱뚱이네 옆집댁'으로 통하는 나뿐이다. 당신의 남편도, 자그마치 열 네 명이나 되는 당신의 형제자매들도 모두 그녀를 뚱뚱이라 부른다. 그러니 내가 어쩌다 Luz라는 이름을 대면 열이면 열, 그가 누구냐고 내게 묻는다. '뚱뚱이'라고 거듭 말해줘야 내가 말하는 그 사람이 우리 옆집 할머니임을 알아차린다.

문제는(물론 나 혼자 생각하는 문제겠으나), 우리 옆집 할머니가 전혀 뚱뚱하지 않다는데 있다. 그런데도 뚱뚱이라 불리는 이유를 굳이 짐작하자면, 할머니가 태어났을 때 엄청 우량아였다는 사실뿐. 자그마치 반세기 훨씬 전의 일이다. 할머니가 여전히 뚱뚱이로 불리는 유일한 추정의 근거로, 그 댁 마루에는 할머니가 첫 돌 무렵 엄청난 체구를 자랑하며 찍은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에 등극한 멕시코의 비만율이 설명하듯, 내가 사는 이 마을에도 진정으로 뚱뚱한 사람들이 차고도 넘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우리 옆집 할머니를 제치고 뚱뚱이라 불리지 않는다. 아마 우리 할머니의 뚱뚱이 별명이 갖는 오리지널리티는 제법 터를 깊게 다진 듯하다. 혹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묘비명에도 '뚱뚱이의 무덤'이라고 적히지 않을까 은근 걱정이긴 하다.
  

사진의 우측 가방을 메고 있는 아저씨 별명은 '돈(Don)본본'이다. 이곳에서 마시멜로를 칭하는 본본에 아저씨에 대한 존칭 Don이 붙은 말이다. 아마도 어려서는 그냥 본본이었을 텐데, 세월이 흐르면서 앞에 존칭 Don이 붙었다. 덩치가 크고 피부색이 비교적 밝아서 그렇게 붙여진 별명 같다. ⓒ 림수진

 
이름 대신 별명으로 불리는 사람들

그러고 보면 내가 사는 멕시코 어느 소읍 이 마을에선 대부분 별명 혹은 각자 이름의 애칭이나 약칭으로 불린다. 수십 년을 같이 살아온 사람들도 서로의 본명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러니 낯선 곳에 본명만 가지고 사람을 찾아온다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전혀 뚱뚱하지 않지만 여전히 뚱뚱이라 불리는 할머니 남편의 별명은 Pólvora(뽈보라), '폭죽(화약)'이다. 별명 치곤 참 희한한데, 어릴 적부터 성미가 워낙 급했다 하니 일리는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폭죽이란 별명이 당신의 아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그 아들 역시 50년 넘게 폭죽이란 별명으로 살아가고 다시 또 아들의 아들 역시 3대째 폭죽이란 별명으로 30대 청춘을 살아간다.

원조 격인 1대 폭죽을 제외한 아들과 손자의 성미가 절대 급한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폭죽이니 아들 역시 폭죽으로 그리고 손자까지 폭죽으로 살아간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 삼대를 각각의 이름과 전혀 상관없이 큰폭죽, 아들폭죽, 새끼폭죽이라 부른다. 한때 할아버지 아들이 마을에서 세차장을 운영하였는데, 상호명이 폭죽세차장이었다.
 

늘 말을 타고 다니는 이 아저씨 별명은 '옥수수'다. 처음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별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자꾸만 보면 볼수록 묘하게도 정말 옥수수 같은 느낌이 든다 ⓒ 림수진

 
별명이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이어지는 일은 흔하다. 엄마의 이름은 큰딸에게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은 큰아들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멕시코 문화의 일면이 별명에도 작용하는 셈이다. 아버지가 호세면 아들도 호세, 어머니가 마리아면 딸도 마리아이듯, 아버지가 폭죽이면 아들도 폭죽이 되어버린다.

조상 중 누군가가 권투를 잘해서 '챔피언'이란 별명을 얻은 집안은 4대 5대째 자랑스럽게 세대를 통해 장자들이 별명을 이어 쓴다. 어쩌다 아버지가 두꺼비라는 별명을 얻은 집안은 딸이 두꺼비의 여성명사로 별명을 이었다. 아버지와 딸, 그리고 다시 손자로 별명이 이어지는데,셋 다 생김을 아무리 봐도 왜 두꺼비인 줄 모르겠다.

우리 마을 사람들의 쉼터, 우리들이 바그다드 카페라 부르는 사탕수수밭 주인의 별명은 씰란트로(Cilantro)다. 듬직한 체구에 매우 과묵하고 어지간해선 사람들과 희희낙락 어울리는 일 없이 오직 자신의 사탕수수밭을 돌보며 살아가는 남자의 별명이 중남미 지역에서 흔히 먹는 고수풀에 해당하는 스페인어 씰란트로라니.
  

마을 사람들은 바그다드카페에 모여 일요일 하루를 보낸다. 웃고 이야기하고 춤 추며. ⓒ 림수진

 
여성이라도 별명으로 충분히 가벼울 지경인데 칠레 이스터 섬에 있다는 모아이 석상보다 훨씬 더 장중한 형상과 인상을 가진 이의 별명이 어쩌다 씰란트로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역시나 마을 사람 대부분이 그의 본명을 알지 못하고 그가 왜 씰란트로가 되었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낯선 이가 찾아와 마을 입구에서부터 '씰란트로'를 찾는다면 그의 집에 닿을 성공 확률은 100%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 각자의 별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마을 아주머니 한 분은 어찌나 말씀이 많으신지 시끄럽기로 유명한 새, '금관앵무(Guacamaya)'가 별명으로 붙었다. 애석하게도 그 딸은 수줍기 이를 데 없음에도 '작은 금관앵무'다. 그 옆집 아저씨 별명은 '삐지지'. 명사도 아닌 의태어 혹은 의성어일 텐데, 마을 사람들 그 누구도 왜 그가 삐지지가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피부색으로 별명이 붙는 경우도 흔하다. 굳이 시골 우리 마을뿐 아니라 멕시코에서 피부색이 좀 밝다 싶으면 어김없이 '백인(Güero)'이란 별명이 붙고 그 반대라면 '초콜릿(Chocolate)' 혹은 '갈색인(Moreno)'이란 별명이 붙는다. 피부가 흰 사람에 대해 '미국인(Gringo)'이란 별명도 흔하다. 모든 미국인의 피부색이 희지 않음에도 말이다.

아, 치약 상표로 유명한 '콜게이트(Colgate)'란 별명도 있다. 유난히 검은 피부에 하얀 치아가 상대적으로 돋보여 붙은 별명이다. 그 집 역시 아버지와 아들 모두 별명이 '콜게이트'다. 바로 위의 나라 미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피부색이 상당히 민감한 주제임에도, 이곳 멕시코에선 피부색에 따른 별명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수많은 '백인'과 '초콜릿'과 '갈색인'들이, 심지어 '꼴가떼(영어 콜게이트의 스페인어식 발음)'까지 오히려 그게 무슨 대수랴 하면서 살아간다. 혼혈에 기반을 둔 나라이기도 하고 독립 이후 피부색에 의한 일방적 권력 행사가 없었던 역사에서 기인하는 현상일 것이다.  
 

우리 마을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의 주인공 베또 아저씨다. Beto라는 이름은 알베르토(Alberto), 힐베르토(Gilberto), 에리베르토(Heriberto), 로베르토(Roberto) 라는 모든 이름들의 축약형이다. 늘 사륜 오토바이에 사랑하는 개들을 싣고 밭으로 올라가는 베또 아저씨도 평생을 베또라고만 불렸으니, 마을 사람들 모두 그저 베또라고만 알고 있을 뿐, 알베르토인지, 힐베르토인지, 에리베르토인지, 혹은 로베르토인지 알지 못한다. 아마도 로베르토일 것이라고, 언젠가 한 번 들은 기억이 있다. ⓒ 림수진

  
이들이 본명을 쓰지 않는 이유

별명이 아니더라도, 멕시코 사람들은 본명에도 약칭이나 애칭을 주로 쓴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쓰기 시작하면, 약칭이나 애칭이 본명을 덮어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니 이 또한 본 이름 가지고 어느 마을에 사는 아무개 찾기가 썩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들어본 '뻬뻬', '빠꼬', '빤쵸' 등이 애칭으로 불리는 이름들이다. 뻬뻬는 호세, 빠꼬와 빤쵸는 프란시스코의 사전적 애칭이다. 우리나라에서 '프란치스코'로 표기되는 교황 이름이 이곳에선 '빠꼬' 혹은 '빤쵸' 등으로 불린다. 어쩐지 훨씬 더 정겹다. '나쵸'는 이그나시오, '꼰챠'는 꼰셉시온, 그리고 '꾸까'는 까르맹 이름에 대한 애칭이다. 물론 이런 애칭들은 극히 일부일 뿐, 대부분의 이름들이 많게는 두 서너 개씩 사전에서 정의하는 애칭을 갖기 때문에 멕시코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이름은 참으로 무궁무진하다.

다시 우리 마을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사실 별명이 없다면 이 마을에는 숱한 호세와 마리아와 프란시스코와 후안이 살고 있어 같은 이름을 두고 혼란을 초래할 일이 뻔하다. 멕시코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생년월일시와 항렬자 등을 고려하여 글자들의 조합으로 이름을 '짓는' 것이 아니라 문제은행에서 문제를 뽑듯 이미 만들어진 이름들 중 맘에 드는 것을 가져다 쓰는 방식이다.

이름 은행이라 할 만한 것은 바로 성경이다. 오랜 시간 동안 성경에 나오는 이름들이 세대를 따라 돌고 돌아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멕시코의 경우 라틴아메리카 다른 나라에 비해 성경식 이름 사용이 여전히 강한 편이다. 한 마을에 숱한 호세와 마리아가 살아가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니 차라리 별명을 붙여 그 혼돈을 피하고자 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떨결에 '뚱뚱이네 옆집댁'으로 택호를 얻은 나는 좀 억울한 맘이 든다. 그나마 자손이 없기 망정이지, 자손이 있었더라면 작금 나의 택호가 자자손손 이어질 뻔하지 아니하였는가.
 

우리마을 전경. 이른 아침 또뇨(Toño) 아저씨가 말과 노새를 끌어 사탕수수 밭을 갈고 있다. Toño는 안토니오(Antonio) 이름의 축약형이다. 마을에서 안토니오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축약형인 또뇨 혹은 그 만의 별명으로 불린다. ⓒ 림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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