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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없는 이의 죽음에 당신의 지식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 가면 뒤로 숨은 우리들의 죽은 지식 힘 없는 이의 죽음에 당신의 지식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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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있었던 한 청소 노동자의 죽음을 접하면서 이상한 문장 하나가 며칠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누군가를 괴롭힌 그 지식은 아주 위험한 지식이다.' 무엇에 대해 많이 알고 말도 달변으로 잘하는 지식인들을 꽤나 존경하는 나에게 이 불경한 문장은 나를 며칠간 옥죄었다. 결국 나는 이렇게 내 불경을 고백하기로 한다.

일단 나의 개인적인 만신이기도 하고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지성의 샘물이기도 한 '지식'이라는 물건에 대해 감히 불경죄를 저지르기로 했으니 일단은 나도 학자처럼 한 번 크게 풀어보기로 한다. 먼저 우리는 오늘날 지식과 정보가 전 지구적으로 보급되고 있는 매우 최첨단의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다. 오래전 몇몇 천재들의 손에서 발명된 IT 기술의 획기적 발전과 퍼스날 컴퓨터의 보급은 이제 수없이 많은 인포메이션(information)의 창발을 전 세계 모든 영역에서 무한대로 허락하고 있다. 인포메이션의 본뜻은 알리다의 인폼(inform)일테니 따지고 보면 정보화 시대란 결국 수많은 알리미(information)들의 시대이기도 하다. '알리미의 시대', 갑자기 없어 보인다.

잠깐! 권위 있는 외국 지식인의 언급을 놓쳤다. 멋진 외국인 이름이 없으면 글에 격이 떨어지니 꼭 언급하기로 하자. 20세기 중엽 프랑스 철학의 대가였던 롤랑바르트의 저서 < Image-Music-Text(영역) >에 따르면 '텍스트는 이미지에 기생하는 매개로서 그 이면에는 어떠한 이미지가 반드시 존재한다.' 불어를 영어로 옮겼고 또 필자가 의역까지 했으니 원문은 이미 오염되었다. 하지만 어쨌든 요체는 '텍스트 안에 어떤 이미지가 존재한다' 정도이다. 또 그의 다른 저서 < Writing Degree Zero(영역) >에서 바르트는 '텍스트 안에 이미지가 있다'에서 더 나아가 '언어는 불순하다'고 말한다. 그의 언어관에 따르면 텍스트는 순수한 활자 그 자체가 아닌 말하는 이의 어떠한 의도를 품고 있는 기호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드는 의문 하나, 그 청소 노동자 앞에 놓였던, 학교 관련 문제가 담겼다던 'S대의 시험지'는 어떤 의도를 품고 있었을까? 또 시험자로 참여한 그 노동자에게 무엇을 기표(signifier)했는가? 관련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름을 영어와 한자로 쓰라', '특정 건물의 준공년도 및 수용인원은 무엇인가' 등의 문항 등이 시험문제로 동원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항들의 해소 능력은 아마도 즉 청소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로서 기능했거나 기능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 기준이 과연 청소하는 이의 업무능력을 평가하는 일에 굳이 동원되어야 했는지 그 정당성에 의문이 든다. 상식에 비추어 볼 때 환경을 미화하는 능력과 외국어 의사소통 능력 간에는 상관성이 크게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피고용인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함으로써 그 근무 형태 및 강도가 사용인 측의 입장에 부합하는지 명료하게 확인할 필요가 분명 있다. 또한 노무 서비스를 제공하는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현 근로 행태가 고용주의 필요와 잘 맞아 떨어지는지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다. 감시의 눈길이 전혀 없는 백지의 공간에서 사용자와 제공자 모두는 쉽게 나태와 게으름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비록 이상론에 불과하겠지만 어떠한 규범과 기준이 명확하다면 고용주와 피고용인은 평가 시스템을 통해 고용에 대한 상호 간의 올바른 가치와 의사를 확립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지향할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에 해당 청소 노동자를 평가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사측의 시험 문항들은 정당했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그리스적 정의관에 따르면 어떤 사물이나 도구가 해당 용도에 부합할 때 비로소 정당(just)하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아무리 백각으로 사건을 관찰해보아도 S대 청소 노동자가 풀어야 했던 그 시험 문항들은 정의롭지 못해 보인다.

종일 건물을 깨끗이 청소하고 돌아온 그 청소 노동자에게 무심히 던져졌을 그 백색 시험지에 숨겨진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영어, 한자, 숫자, 년도 등의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그 권위 있는 지식의 문항들이 그 청소 노동자에게 은연 중에 지시했던 기호는 무엇이었을까?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은 한 청소 노동자의 죽음이라는 시험지를 받아든 독자들 스스로의 능력으로 찾아보기를 바란다.

태그:#위험한 지식, #지식의 종말, #지성의 종말, #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 정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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