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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주살이 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에 거셌던 제주 러시 현상은 다소 진정된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제주 이주를 꿈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제주 1년 살이 혹은 1달 살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이 글은 동아일보 기자와 세종대 초빙교수를 지내고 은퇴한 후 제주로 이주한 한 개인의 일기이자 제주에서의 생활을 소재로 한 수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제주도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제주의 자연환경,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한국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제주사회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읽을거리가 되길 기대한다.[기자말]
금년 6월20일 밤 한 장소에서 똑같은 장면을 촬영한 여러 컷의 사진을 합성하여 얻은 이미지.
▲ 청수곶자왈 반딧불이 금년 6월20일 밤 한 장소에서 똑같은 장면을 촬영한 여러 컷의 사진을 합성하여 얻은 이미지.
ⓒ 임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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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9월 14일, 밤 8시경이었다. 거실의 불을 모두 끄고 TV를 시청하고 있었는데 거실 방충망에서 무언가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반딧불이였다. 반딧불이가 우리 집까지 찾아오다니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사진도 한 컷 찍었다. 이후에도 몇 차례 반딧불이 한 두 마리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는 것이었다. 집 주위로 숲이 우거져 있어 반딧불이들이 살고 있는 듯했다. 비록 한 두 마리지만 청정 지역에서나 볼 수 있다는 반딧불이의 방문은 기분 좋은 일임이 틀림없었다.

이때부터 제대로 반딧불이 구경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반딧불이가 멸종위기종이라고 하지만 청정지역 제주도가 아닌가.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제주도에서는 한경면 청수곶자왈이 반딧불이 서식지로 첫손가락에 꼽혔다.

청수곶자왈은 매년 6월경 반딧불이 축제를 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명소였다. 집에서 자동차로 30분이면 닿을 수 있으니 다음 반딧불이 축제 때는 꼭 가보리라 마음을 먹고 기다렸다.

그러나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거의 모든 대면 행사가 취소되는 바람에 반딧불이 체험도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곶자왈 지역은 원래가 숲이 우거진 곳이기도 한 데다 밤이면 불빛 한 점 없는 암흑세계가 된다. 곶자왈 지리에 밝은 안내자 없이 개별적으로 들어가면 위험하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해 뒤를 기약하는 수밖에.
  
매년 6월초에서 7월초까지 반딧불이 체험 축제가 진행되나,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열리지 못했다.
▲ 청수리 반딧불이 축제 매년 6월초에서 7월초까지 반딧불이 체험 축제가 진행되나,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열리지 못했다.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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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산반딧불이의 최대 서식처

대신 아내와 함께 대낮에 청수곶자왈을 보러 갔다. 이 곶자왈은 다른 곶자왈에 비해 탐방하기가 쉬웠다. 무엇보다도 길이 평탄해 걷기가 편했다. 곶자왈 하면 울퉁불퉁한 길에 크고 작은 암석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고, 나뭇가지들이 무성하게 얽혀 있기 마련인데, 이곳은 마치 산책로처럼 길이 정비돼 있었다.

시작점인 웃뜨르빛센터에서 출발, 3개의 탐방코스(A코스 숲터널길 2.6km, B코스 테우리길 3km, C코스 미지의 숲길 1.5km)를 돌아 시작점으로 되돌아오도록 했다. 호젓하고도 울창한 곶자왈 숲과 목장 지대를 거쳐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왔다. 올레길에서 가끔 만나게 되는 곶자왈에 비해 훨씬 걷기에 편하고, 코스 길이도 적당해 좋았다.

금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여전히 축제는 열리지 못했다. 반딧불이 축제 때면 하루에 20명씩 3팀이 해설자 인솔 하에 반딧불이 체험을 하곤 했는데 올해도 무산된 것이다. 축제 대신 소규모 인원을 사전에 인터넷으로 신청받아 반딧불이 체험행사를 진행했다고 하는데, 예약 개시 10초 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그나마 올해는 반딧불이가 일찍 나왔다가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조기에 종료했다는 것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7월 초 청수리 이종권 이장을 찾아가 사정 이야기를 하고 반딧불이를 볼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이번 시즌엔 꼭 반딧불이를 보고 싶다는 진심이 통했는지 어렵사리 협조를 약속해주셨다. 또 반딧불이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들려줬다. 미리 반딧불이 공부를 하게 된 셈이다.

이종권 이장의 해설에 의하면, 청수곶자왈에서 볼 수 있는 반딧불이는 운문산반딧불이라고 한다. 운문산에서 처음 발견돼 붙은 이름인데, 국내에서는 이곳이 운문산반딧불이의 최대 서식처라고 한다.

반딧불이는 알-유충-번데기를 거쳐 1cm 안팎 크기의 성충이 된다. 이 성충이 바로 우리가 밤에 보는 반딧불이다. 섭씨 19-24도, 습도 70-80% 정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조건에 맞는 6월 초부터 7월 10일경까지가 반딧불이를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여서 이때 반딧불이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이 지역에 반딧불이가 집단 서식하는 이유는 이곳이 청정지대인 데다가 소나 말 목장을 끼고 있어 먹이가 많기 때문일 것으로 그는 추측했다. 소나 말의 분비물이 흔하고 따라서 지렁이, 달팽이, 다슬기 등 좋아하는 먹이도 많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설명이다.
  
청수곶자왈은 목장의 소나 말의 분비물로 인해 달팽이 지렁이 등 반딧불이의 먹이가 풍부해 운문산반딧불이 최대 서식지로 꼽힌다.
▲ 청수곶자왈 목장지대 청수곶자왈은 목장의 소나 말의 분비물로 인해 달팽이 지렁이 등 반딧불이의 먹이가 풍부해 운문산반딧불이 최대 서식지로 꼽힌다.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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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반딧불이가 달팽이를 잡아먹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흉하게 생긴 이빨로 달팽이를 갉아먹더라는 것이다. 반딧불이의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이미지와는 잘 연상이 되지 않는 무자비한 먹이활동인 셈이다.

가장 흥미로운 건 '반딧불이의 사랑' 이야기였다. 성충이 된 반딧불이는 10일 남짓 살면서 짝짓기를 한 뒤 알을 낳고는 생애를 마친다. 반딧불이가 자기 몸의 꽁무니에서 반짝거리는 빛을 내는 것은 짝짓기 상대를 유혹하는 구애 행위라는 것이다. 수컷은 암컷을 찾아 날아다니며 빛을 발하고, 암컷은 앉아서 발광하면서 수컷을 유혹한다. 죽음을 앞두고 상대를 갈망하는 애처로운 몸짓이 아닐 수 없다.
 
청수리 이장의 안내로 반딧불이를 감상한 청수곶자왈 서식지 현장의 한낮 모습
▲ 청수곶자왈 반딧불이 서식지 청수리 이장의 안내로 반딧불이를 감상한 청수곶자왈 서식지 현장의 한낮 모습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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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서 보호해야 할 정도로 귀하신 몸

그날 밤 8시 아내와 함께 청수곶자왈로 향했다. 약속대로 이장님 부부가 함께 나와 안내 겸 해설을 해주었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이장의 사전 설명을 들은지라 가벼운 마음으로 곶자왈 탐방로로 들어섰다. 어떤 빛이라도 보이면 안 된다고 해서 준비해 간 손전등도 끄고 스틱으로 땅을 더듬으며 걸었다.

짙은 어둠으로 덮인 곶자왈, 불빛 한 점 없는 암흑의 세계가 펼쳐졌다. 밤 9시로 향하는 곶자왈 숲길은 한마디로 경이로웠다. 녹나무, 종가시나무, 개가시나무 등이 우거진 숲은 신기하게도 어둠 속에서도 그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동행한 사람도 나무들도 모두 암흑 속에서 '무형의 형태'로 자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숲으로 다가가자 곧 여기저기서 반짝거리는 형광(螢光)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뭇잎이나 땅바닥에서 빛을 발하며 수컷을 기다리는 암컷과 역시 형광의 신비한 빛을 뽐내며 암컷을 찾아 비행하는 수컷.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짝짓기 상대를 향해 빛의 비행을 하는 반딧불이의 아름다운 그러나 치명적인 사랑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종권 이장은 한참 반딧불이가 많이 나올 무렵의 광경을 '6월의 크리스마스'로 묘사했다.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단 전구가 점멸하듯 숲 속 곳곳에서 수많은 반딧불이가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그런 멋진 군무(群舞)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곶자왈 숲길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여기저기서 반짝거리는 밤의 신비를 오롯이 즐겼으니 말이다. 곶자왈이라는, 지상의 밤하늘에 별들이 빛나는 광경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반딧불이 갈증을 조금은 해소한 듯하다.

제주도에는 곶자왈처럼 사람의 발길이 드문 청정지역이 많아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곳이 많다고 한다. 일단 곶자왈지대에는 반딧불이가 서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청수리 인근 산양곶자왈 저지곶자왈에서도 반딧불이를 흔히 볼 수 있다. 이 일대의 도로명이 '반딧불이로'이기도 하다.
 
청수곶자왈 산양곶자왈 등으로 반딧불이가 많이 서식하는 청수리 방향 도로가 '반딧불이로'로 명명됐다.
▲ 반딧불이로 청수곶자왈 산양곶자왈 등으로 반딧불이가 많이 서식하는 청수리 방향 도로가 "반딧불이로"로 명명됐다.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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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권 이장은 사려니숲에도 반딧불이가 많이 살고 있지만 한밤중에는 출입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볼 수가 없을 뿐이라고 한다. 천지연폭포 부근에도 많이 서식하고 있고, 유명 관광지인 중문동과 이웃한 예래생태마을도 반딧불이보호지역이다. 곶자왈지대가 아니더라도 청정지역이고, 불빛이 없는 곳이라면 반딧불이가 서식할 확률이 높다.

청수리곶자왈이나 예래생태마을 등 청정지역 제주도에서는 운문산 반딧불이뿐만 아니라 늦반딧불이도 볼 수 있다. 반딧불이 축제가 벌어지는 무주의 반딧불이가 바로 늦반딧불이다. 이 늦반딧불이는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볼 수 있다고 한다. 늦반딧불이는 서식 조건이나 먹이활동 짝짓기 활동 등이 운문산반딧불이와 거의 비슷하나 크기가 1.5-1.7cm로 조금 더 크다.

이왕 반딧불이의 매력에 반했으니 9월이 되면 예래생태마을에 가서 늦반딧불이도 감상해볼 생각이다. 이 마을에서 관리하는 예래생태공원을 가본 적이 있는데, 숲과 하천을 잘 정비해 안전하고 편리하게 둘러볼 수 있게 했다.

한밤중에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홀로 가더라도 그리 위험하지 않을 것 같다. 곶자왈과는 다른 개방된 공원 숲에서 즐기는 반딧불이 감상도 특별한 체험이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반딧불이는 장수하늘소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곤충이다. 노래로도 유명한 개똥벌레가 반딧불이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개똥벌레라는 이름은 늦은 밤 축축하고 습한 개똥 밑에 숨어 있어서 개똥을 먹는 줄 알고 붙인 것으로 추측된다. 아니면 개똥처럼 흔해서 붙은 이름일 수도 있다. 예전엔 어린 시절 추억 속의 곤충으로 친숙한 이름이었지만, 이제는 나라에서 보호해야 할 정도로 귀하신 몸이 됐다.

청정지역에서만 살고 환경에 민감한 지표 곤충, 반딧불이의 빛나는 비행이 멈추게 된다면 우리 인간의 생존도 멈춤 위기에 처할 것이다. 거실에 날아든 반딧불이 한 마리로 인해 여기까지 이야기가 길어졌다. 반딧불이 효과라고나 할까. (2021.7)

(편집자 주) '제주살이를 꿈꾸는 당신에게'는 날짜순으로 연재하고 있으나 시사적인 이슈나 계절 요인 등을 고려해 게재 순서를 일부 조정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태그:#반딧불이, #청수곶자왈, #늦반딧불이, #반딧불이축제, #예래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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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봄 제주로 이주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제주현대사의 아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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