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도 없는 '도과'라는 말
"고용유지 기간이 도과했다"
"공소시효가 도과했다"
"청구 기간이 도과했다"
"석명 준비 명령(도과기간 확인)"
'도과'라는 알쏭달쏭한 용어가 우리 주변에서 적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 이 '도과'의 한자는 '徒過'인데, 한자로 풀어보려 해도 그 의미는 분명하지 못하다. 우리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는 용어다.
그런데도 검찰과 법원 등 법조계를 비롯한 공공기관에서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도과'라는 이 말은 일본어이다. 일본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우리 공공기관이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사용되다가 지금은 쓰이지 않는 용어가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바로 엊그제도 고용노동부는 정식 공문에 "납기일이 도과될 경우 법에서 정한 독촉 및 징수 등의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고 명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故) 김홍영 검사에게 검찰 상급자가 "야! 너 3개월 도과되는 사건 보고 했어 안 했어!. 왜 이것조차 제대로 못 하냐!" 등 폭언을 반복하며 몰아세웠다는 증언이 최근 나오기도 했다.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는 일본용어를 우리 공공기관이 '아무런 의식도 없이' 계속 사용하고 있는 현실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권위와 우월적 지위 과시 목적, 관존민비 사상의 잔재
그러나 이러한 용어의 사용에 '아무런 의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 '도과'라는 용어는 "넘기다"라는 쉬운 우리말로 대체해도 충분한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 '관리'들은 계속 '도과'라는 말을 고집할까?
필자는 그 배경에 바로 권위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고 판단한다. 가령 "기한 도과"를 "기한을 넘겼으니"라고 말하면 자신들의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 '도과'와 같은 말을 듣거나 보게 되면, 아닌 게 아니라 어딘지 주눅 드는 느낌이 들게 된다. 결국 이렇게 법조계를 비롯한 우리 공공기관들이 '도과'와 같은 용어를 계속 사용하는 행태는 일반인들에게 자신들의 권위와 우월적 지위를 과시하려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일종의 '관존민비(官尊民卑)' 사상의 잔재다.
이러한 용어들은 현대 민주주의 시대와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공공기관들이 어떤 '공공용어'를 사용하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공공기관에서 잘못 사용하고 있는 권위주의적 용어를 바꿔나가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수적인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