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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개최에 관한 우려가 독도 영유권 문제로 비화되고 거기에 이낙연·정세균 전 총리의 '강경발언'까지 보도되면서, 한일 양국의 인터넷 공간은 상호간의 적대감정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주요 포털들의 댓글창에는 단순히 정치외교적 현안에 대한 의견 개진 수준을 넘어, 차마 여기에 옮겨 적을 수 없는 혐오발언들까지 난무하는 상황이다. 정부 간의 갈등이 봉합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양국 시민사회 간 감정의 골 역시 깊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현실 위에서, 한때는 가까웠던 옛 한일관계를 복기해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는 것은 양국 시민사회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5월 30일의 화창한 일요일, 고대 일본의 수도 나라(奈良)에 위치한 '나라국립박물관'에서 실시되고 있는 <쇼토쿠 태자와 호류지>를 찾았다.

뜻밖에 등장한 이름, 백제
 
호류지는 쇼토쿠 태자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고찰이다. 나라국립박물관에서는 호류지의 불교 유물을 중심으로 쇼토쿠 태자 특별전을 구성했다.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호류지의 금당과 목탑 호류지는 쇼토쿠 태자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고찰이다. 나라국립박물관에서는 호류지의 불교 유물을 중심으로 쇼토쿠 태자 특별전을 구성했다.
ⓒ 박광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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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토쿠 태자(聖徳太子)는 고대 일본에 불교와 율령 등을 도입하여 국가의 기틀을 잡았다고 평가되는 인물로, 현대 일본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호류지(法隆寺)는 쇼토쿠 태자에 의해 607년에 창건된 불교 사찰로, 670년 이후 재건된 금당과 5층 목탑은 지금까지도 보존되어 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꼽히고 있으며,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쇼토쿠 태자 1400주기를 맞아, 나라국립박물관에서는 호류지에 보존되어 온 고대 일본의 불교 관련 유물들을 중심으로 쇼토쿠 태자의 생애와 고대 일본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특별전을 마련했다.
 
 나라국립박물관에서는 다수의 전시물을 통해 일본의 불교가 '백제'에 의해 전래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 인도에서 일본에 이르는 불교 전래(나라국립박물관)  나라국립박물관에서는 다수의 전시물을 통해 일본의 불교가 "백제"에 의해 전래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 박광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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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토쿠 태자가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일본의 불교 도입과 그 발전이 전시 주제로 다뤄지는 가운데, 뜻밖에도 박물관 곳곳에 등장하는 이름이 있었다. 일본식 독음으로는 '쿠다라'(百済), 즉 우리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백제이다. 근세 이전까지 동아시아 질서의 중심축이었던 중국조차도 쇼토쿠 태자의 '견수사 파견' 정도로 언급되는 데 반해, 백제가 언급되는 빈도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었던 백제 출신 승려 혜총을 시작으로, 그와 함께했던 백제계 도래인들의 모습을 그린 다양한 그림과 목상들이 이번 전시에 선보여졌다. 나라국립박물관에서는 이들 백제계 도래인들에 대해 언급하며, 한반도의 고대 국가 백제로부터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었음을 분명히 소개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이러한 전시자료들을 살피며, 백제계 도래인들이 고대 일본의 국가체제 확립에 있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으리라.

사실, 백제가 멸망하던 시기에 일본이 국운을 걸고 백제 구원에 나섰던 것을 상기해본다면, 양국의 유대 관계에 대해서는 더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지난 기사 : 일본인들도 새해맞이 참배하는 백제왕 신사)

"옛날에는 참 가까웠군요"
 
1932년에 촬영된 사진. 호류지에 안치되어 온 관륵의 목조상은, 평소에는 공개되지 않는 '비불'이다. 쇼토쿠 태자 1400주기를 맞아 나라국립박물관에 전시되었다.
▲ 백제 승려 "관륵"의 목조상 1932년에 촬영된 사진. 호류지에 안치되어 온 관륵의 목조상은, 평소에는 공개되지 않는 "비불"이다. 쇼토쿠 태자 1400주기를 맞아 나라국립박물관에 전시되었다.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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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박물관 측에서 비중 있게 전시한 불상들 가운데, 백제 승려 '관륵'(観勒)의 목조상의 존재는 특기할 만한 것이었다. 602년 일본으로 도래한 것으로 알려진 관륵은 쇼토쿠 태자를 도와 일본의 천문과 불교를 정립하는 데 힘쓴 것으로 전해진다.

관륵의 목조상은 헤이안 시대(한국사의 남북국 시대~고려 시대에 해당)에 만들어져 천년의 세월동안 호류지에 안치되어 있었다. 호류지 측은 이 목조상을, 평소에는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비불'(秘仏)로 관리해왔다. 오랫동안 자태를 감췄던 관륵의 목조상이, 쇼토쿠 태자 1400주기를 맞아 대중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온화하고도 강건해보이는 표정, 흐트러짐 없는 자세, 피부와 의복의 세세한 주름까지 표현해낸 섬세함... 쇼토쿠 태자가 염원했던 일본이라는 나라의 출발, 그 여정에 함께 했던 백제 승려 관륵의 자태가, 일본이 자랑하는 헤이안 시대의 예술양식으로 아름답게 다시 재현된 것이다.

이번 특별전이 끝나면 언제 다시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관륵의 목조상 앞에서, 여러 관람객들은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이리저리 목조상을 살펴보는 관람객들의 사이로, 헤드셋의 음성해설을 들으며 무엇인가를 꼼꼼히 메모하는 학생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사진촬영이 허가된 유일한 구획이다.
▲ 나라국립박물관의 "금강역사" 사진촬영이 허가된 유일한 구획이다.
ⓒ 박광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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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나서다가, 관륵의 목조상 앞에서 메모에 몰두해있던 학생을 우연히 다시 마주쳤다. 한국인임을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쑥스러워하면서도 반가워했다. 그는 인근 대학에서 일본사를 전공하는 새내기 학생이었다.

"코로나 전에는 가끔 한국에 놀러가곤 했어요. 서울이랑 부산에 가봤는데, 참 좋은 추억이네요."

관륵의 목조상을 유심히 살폈던 이유를 묻자 그는 수줍게 웃으며 답했다.

"목조상이 아름다워서 눈길이 가기도 있지만, 백제에서 온 스님이라고 하니 더 관심이 갔습니다. 옛날에는 일본 열도와 한반도가 참 가까운 관계였구나 하고 새삼 생각했습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는 학생의 뒷모습을 보며, '새삼 생각했다'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그렇게 '새삼 생각해보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미래의 지향점을 발견하고 서로를 향한 혐오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일까.

태그:#일본, #백제, #한일관계, #불교,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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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논리에 함몰된 사측에 실망하여 오마이뉴스 공간에서는 절필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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