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8 12:37최종 업데이트 21.05.2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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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 나도 세금 보고를 마쳤다. 매년 4월 15일 즈음이 미국 연방 국세청(IRS)이 지정한 개인소득 신고서 제출 마감일(Tax day)이지만, 올해는 한 달 늦춰진 5월 17일로 조정됐다. 펜데믹 때문이다.

열심히 더하기 빼기 한 2020년 세금 보고 결과, 나는 내가 사는 뉴저지 주에 141달러를 더 내야 한다. 연방 국세청으로부터는 예년보다 많은 3059 달러를 돌려받았다. 지난 4년 간 운영해 오던 에어비앤비와 가이드 일은 1년 넘게 개점휴업 상태다. 경제와 일상이 모두 셧다운 된 펜데믹 직격탄을 맞는 중이다.

작년 5월부터 기 세금 보고를 바탕으로 주와 정부에서 나오는 실업수당을 받고 있다. 그나마 환급금에 한숨 덜었다. 나같이 스몰 비즈니스, 특히 여행 관련 일을 하는 이들에게 2020년은 최악의 한 해였다. 세금 정산을 해보니 더욱 더. 
 

납세 마감일(Tax Day)인 지난 5월 17일, 애국적인 백만장자 회원 30여명이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뉴욕 아파트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아파트 주변을 돌고 있는 트럭엔 웃고 있는 제프 베이조스 얼굴에 도발적인 문구가 쓰여 있다. "tax me if you can!(할 수 있다면, 나한테 세금을 걷어보시지)" ⓒ CNBC 기사 캡처

 
백만장자들의 시위

납세 마감일(Tax Day)인 지난 5월 17일, 맨해튼 5번가의 한 고급 아파트 앞에서 30여 명의 사람들이 시위를 벌였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뉴욕 아파트 앞이다.


"억만장자와 기업들은 1조 달러를 벌었다" "부자에게 세금을" 같은 문구들이 그들의 피켓에 적혀 있다. 아파트 주변을 돌고 있는 트럭엔 웃고 있는 제프 베이조스 얼굴에 도발적인 문구가 쓰여 있다. "tax me if you can!(할 수 있다면, 나한테 세금을 걷어보시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들은 가난하거나, 부자를 증오하거나, 좌파라 불리는 자들이 아니다. CNBC가 보도한 이들 시위대는 연간 수입 100만 불에서 500만 불 이상인 '애국적인 백만장자(The Patriotic Millionaires)' 회원들이다. 이들은 택스 데이에 맞춰 뉴욕과 워싱턴D.C. 등지에서 본인들을 포함한 부자들에게 정부의 엄중 과세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제프 베이조스는 미국 세금법의 총체적 문제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기술로 돈을 번 이 재벌은 지금 5500 억 원짜리 127미터 크기의 요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이조스가 2019년 6월 6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아마존 컨벤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애국적인 백만장자' 설립자 겸 회장인 에리카 페인은 CNBC 인터뷰에서 팬데믹 덕에 세계 최고 부자가 된 아마존 창립자를 인용해 거대 부자에 관대한 미국 세법을 비난했다. 페인 회장은 자산 202.3빌리언(포브스)으로 세계 최고 부자로 등극한 제프 베이조스의 재산은 그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2010년부터 이 단체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디즈니 상속자 애비게일 디즈니도 백만장자에게 유리한 현 미국의 세금 제도를 비난한다. 

"전염병이 진행되는 동안 가난한 이들이 목숨 걸고 출근해 일 한 덕분에 부자들은 집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생명을 구하는 필수 직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집에서 안전히 머문 부자들보다 비례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4월 3일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애비게일은 가난한 이들의 희생으로 안전이 보장되었다면 부자들은 세금으로 보답하라고 일갈한 바 있다. 팬데믹이 우리 사회 저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드러나게 했다면서 말이다. 

같은 기사에서 <가디언>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250만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 갔을 뿐 아니라 1억 5천만 명을 '극도의 빈곤'으로 추락시켰다는 세계은행 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했다. 보고서에는 "코비드19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 가장 취약한 곳을 찾아 공격하는 '열추적 미사일'" 등의 내용이 담겼다.  

벤 & 제리(Ben & Jerry) 아이스크림 공동 창업자, 뉴질랜드 최대 소매업체 창립자, 오스카 핫도그 재단 상속자 등 2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애국적인 백만장자 운동'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운 반역자"로 묘사한다. 이들 단체 공식 블로그에는 왜 이들이 부자 과세를 위해 싸우고 있는지가 나와 있다.  
 
우리는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백만장자, 억만장자, 부유 기업의 금리를 인상하는 국세법 개정을 방해하는 이들에게 대한 공격을 시작합니다. 이기적인 억만장자, 월가의 거물, CEO들이 미국 국민을 희생시키면서 그들의 특별 세금 감면 혜택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낙수효과는 없다

"누구나 억만장자, 백만장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국내 최대 기업 55곳의 작년 한 해 연방세는 0원이었습니다. 이 기업들은 400억 달러 넘는 수익을 올렸지만 조세 피난처 등을 통해 세금을 회피했습니다. 그들은 세금의 허점과 공제로 이익을 얻었습니다... 미국 기업들과 가장 부유한 1%의 미국인들은 이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지난 4월 28일, 취임 후 첫 번째 의회 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최상위 기업들에 대해 제대로 된 과세를 하겠다고 선포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가장 부유한 이들의 세금을 인상해 미국의 사회 구조를 재정립하겠다는 야심 찬 의제를 발표했다고 평했다. 

5월 3일 버지니아에서도 대통령은 같은 내용의 연설을 했다. 

"낙수효과는 경제적으로 효용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굳이 도움이 필요 없는 이들에게 너무도 오랫동안 여러 혜택들을 주어왔습니다. 이젠 맨 아래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이들에게 그 혜택이 직접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아이젠하워 행정동의 사우스 코트 오디토리엄에서 일자리 창출 투자와 관련해 연설하고 있다. 연단 뒤에서 카멀라 해리스(왼쪽) 부통령이 경청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법인세율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21.4.7 ⓒ 연합뉴스

 
작년 10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어 바이든 대통령도 낙수효과를 비판했다. 재벌과 거대 기업 투자로 국민 경제를 살린다는 이론은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말한 것. 바이든 대통령은 기업 증세를 통해 2조 25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계획을 마련하자고 제안한다. 1조 8000억 달러 규모의 새 계획은 고소득 개인에 대한 증세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부유층과 기업에 대한 세금 인상은 공정성의 문제라고 말한다. 미국 억만장자들의 순자산이 증가한 대유행 기간 동안 일자리를 잃은 수백만 명의 중산층들이 있었다며 부자 증세야말로 미국 전체를 위한 길이라 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부자 증세 의지에 대해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이 앞장서 환영했다. 이에 반대하는 미국 언론도 눈에 띄지 않는다. 국민 1.3% 종부세에 분개하는 한국 언론에 익숙해진 독자로서, 바이든의 부자 증세를 긍정적으로 보도하는 미국 언론이 신기하다. 사주가 제프 베이조스인 <워싱턴 포스트>의 이와 관련한 가장 최근 기사 제목도 <부자 세금 부과에 터무니없는 새 주장 펴는 공화당>이다. 

대통령은 연소득 40만 달러 미만 개인이나 가구는 세금 인상 계획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금 인상 자체를 거부하는 공화당은 대유행 침체에서 회복되는 과정에 경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반발한다. 법인세 인상은 기업 투자와 성장에 타격을 줄 것이며 기업은 임금 인하로 노동자 주머니를 가볍게 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여론은 바이든 대통령에 기울어 있다. 4월 30일 퓨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8명은 일부 기업과 부자들이 공정한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적인 <폭스 뉴스>도 4월 여론조사 응답자의 56%가 기업과 기업에 대한 세율을 인상해서 인프라 확충에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에 응답한 사람 중 58%는 기업의 법인세율을 28%로 올리는 것을 지지한다고 나왔다.

기업들의 조용한 로비와 야당의 비협조 속에도 부자 증세를 통한 수백만 개의 일자리 창출에 대한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된 것 같다.

오바마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의 자문이 된 팀우 교수. 그가 쓴 <빅니스>라는 책에는 거대 기업의 독점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쉽게 설명돼 있다. 1890년대 강고하던 철도와 정유 독점기업의 해체가 100년간 미국의 경제를 이끌어온 사례를 들며 지금의 초재벌에 대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지금 미국에서는 선출된 권력과 자본으로 무장된 재벌들 사이의 총성 없는 세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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