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8년 7월부터 2020년 8월까지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미국 애리조나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경험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기자말]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문을 잡아주는 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베푸는 친절이다.
 문을 잡아주는 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베푸는 친절이다.
ⓒ unplash

관련사진보기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 영화 <킹스맨> 주인공 해리 하트의 명대사다. '매너'는 라틴어 '마누아리우스(manuarius)'에서 유래됐다. 'Manuarius'는 'Manus(Hand, 손)'와 'Arius(Behavior, 행동)'의 복합어다. 즉, 매너는 '손'을 사용해 '행동'하는 것이다.

'손'으로 수고해서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을 우리는 매너 있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미국 생활에서 타인의 '배려하는 손'으로 자그마한 행복을 느낄 때가 있었다. 교차로에서 먼저 지나가라고 양보하는 손, 아침 조깅 때 반갑다고 흔드는 손 등등이 생각난다.

그 중 빈번하게 행복을 줬던 매너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도어홀더(Door Holder)'다. 문을 열고 지나갈 때 뒤를 돌아본다. 사람이 따라오면 문을 잡고 기다린다. 문에서 손을 놔 뒷사람이 문에 부딪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문을 잡고 기다려주는 사람을 도어홀더라고 한다.

뒷사람은 웃는 얼굴로 '땡큐(Thank you)'로 화답한다. 문을 잡아주는 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베푸는 친절이다. 일상에서 사소하지만 빈번하게 이뤄지는 배려다. 작은 행복은 전염된다. 서로 감사의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한 번 더 웃게 된다.

솔직히 나는 미국 오기 전까지 도어홀더가 아니었다. 건물의 문을 밀고 열 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한 번은 앞 사람이 확 닫은 문 때문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도어홀더다. 늦은 나이에 배운 작은 매너다.

어렸을 때부터 체화하는 매너

가끔 두 아들은 미국 초등학교 생활을 얘기해주곤 한다.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학생들에게 역할을 부여한다. 반장은 따로 없고 각 학생은 여러 역할을 돌아가면서 맡는다. 역할마다 책임감을 가지고 수행해야 하는 자신만의 임무가 있다.

△반에 있는 모든 연필을 깎는 친구(Pencil Sharpener) △유인물을 배포하는 친구(Paper Passer) △수업 후 화이트보드를 지우는 친구(Board Cleaner) 등이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역할이 두 개 있다고 했다. 바로 라인리더(Line Leader)와 도어홀더(Door Holder)다.

라인리더는 반 친구들이 줄을 섰을 때 맨 앞에 서는 학생을 말한다. 이동할 때마다 라인리더가 항상 앞장서 친구들을 인도한다. 라인리더는 반 친구들을 이끌면서 리더로서 자부심을 크게 느낀다고 한다.

줄을 설 때 라인리더 바로 뒤에 있는 친구가 바로 도어홀더다. 반 친구들이 일렬로 줄을 서 이동할 때, 마지막 친구가 문을 통과하는 것까지 확인하며 문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문을 지나가는 모든 친구가 도어홀더에게 '고맙다(Thank you)'라고 인사하는데 이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그마한 손으로 베푸는 친절의 소중함을 배우는 것이다. 교과서를 통해 일방적으로 배우는 예의범절보다 효과적이다. 매너 있는 행동을 하며 느끼는 자부심과 보람을 마음 속에 각인 시켜 준다.

때론 지나친 친절이 불편하지만
문과의 거리가 약 10m가 되면 상황은 조금 무안해지지만... 그림은 초등학생 아들이 그렸습니다.
 문과의 거리가 약 10m가 되면 상황은 조금 무안해지지만... 그림은 초등학생 아들이 그렸습니다.
ⓒ 김태용

관련사진보기

 
문을 잡아주기 위한 적당한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나는 약 1~3미터 앞에서 문을 잡아주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문에 들어가는 사람과 문을 잡아 준 사람 모두 해피엔딩이다.

친절도 지나치면 불편해지는 경우도 생긴다. 개인적인 경험담이다. 대략 문과 5~7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여유롭게 문을 향해 걸어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낯선 미국 아저씨가 만면에 인자한 웃음을 띠며 문을 잡고 우리를 기다렸다.

우리가 사는 애리조나는 여름에 섭씨 48도까지 올라간다. 문을 잡아준 신사분에게 미안한 마음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문을 향해 내달린다. 문을 잡아주신 분에게 '고맙다'라고 했지만, 100%의 진심은 아니었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이마에 맺혔다. 이럴 땐 조금 난처하다.

문과의 거리가 약 10m가 되면 상황은 더욱 무안해진다. 아주 멀리서 문을 잡고 계시는 분에게 감사한 마음은 들지만, 또 질문도 던지고 싶어진다. "굳이 이렇게까지 친절할 필요가 있나요?"라고 말이다.

내가 도어홀더가 됐을 때 무안해지는 일도 있다. 문을 잡고 뒷사람을 기다렸지만, 또 다른 문을 열고 지나가는 경우다. 모든 경우를 다 보더라도, 그래도 얌체처럼 자신만 문을 쏙 빠져나가는 것보단 낫다.

다 같이 해 보자

몇몇 미국인들은 "일부 아시아 국가 사람들은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지 않는가?"라고 질문을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그 원인을 분석한 글도 봤다. 어떤 이는 이렇게 분석했다. "아시아 국가 사람들은 빨리 걷는 것보다 자신의 속도로 걸어가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시아 도시는 인구밀도가 높아 문을 열어 양보하다 보면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미국 뉴욕 등 대도시 몇몇 상점들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문을 잡지 말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런데도 나는 2년간 미국에서 수많은 도어홀더를 만났다. 그리고 나 또한 도어홀더가 됐다. 덕분에 날마다 수시로 작은 행복을 받기도 했고 주기도 했다.

지난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서울로 돌아오니 다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문손잡이를 잡을 때마다 잠시 문을 잡고 뒤를 본다. 뒷사람을 위해서 문을 잡아준다. 웃으시며 고맙다고 인사하시는 분들이 꽤 많다. 손을 조금만 더 움직이면 하루가 훈훈해진다. 다 같이 해 보자.

태그:#미국, #도어홀더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는 시민기자다. 경제학을 사랑한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