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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이 금지된 나라에서 우리는 우리가 겪는 차별의 일상을 어디에,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성소수자 차별, 이주민 차별, 지역 차별 등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차별의 경험을 말하기 위해, 우리는 청년의 현실을 진단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아닌 우리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말하기로 했습니다. 5월 25일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시작됩니다. 5월 17일부터 '차별금지법 나만 필요해?' 기획을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는 우리가 바꿀 세상을 제안합니다.[기자말]
전이수 작가가 2018년 11월 <우태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SNS에 올린 글. 식당에서 거절당한 경험을 어린이의 시선에서 작성했다.
 전이수 작가가 2018년 11월 <우태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SNS에 올린 글. 식당에서 거절당한 경험을 어린이의 시선에서 작성했다.
ⓒ 전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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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이렇게 얘기했다. "여기는 노키즈존이야."

"그게 뭐예요?" 하니까 "애들은 여기 못 들어온다는 뜻이야" 한다. 무슨 말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우리는 밥 먹으러 왔다니까요. 오늘 제 동생 생일이거든요!" 그 누나는 화가 난 채로 다시 말했다.

"여기는 너희는 못 들어와. 얼른 나가!"

문밖을 나와 우태를 보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 2018년 작가 전이수(11) 인스타그램 게시물
 
'노키즈존(No Kids Zone, 아이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인 식당이나 카페, 가게에는 가지 않는다. 큰 소리로 우는 아이가 내가 있는 공간에 있을 때면 웬만하면 절대 바라보지 않으려고도 한다. 공공장소에서 우는 아이에 대한 차가운 시선들과, 그 시선들 때문에 진땀을 빼는 양육자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가 울고, 칭얼거리고, 떼를 쓰는 행위가 어느 순간 짜증스러운 소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마치 인간의 성장 과정상 누구나 그럴 때가 있었다는 것을 완전히 잊은 것처럼 말이다.

노키즈존은 그대로 '맘충(극성맞은 부모)'이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사회적 배려와 충분한 인프라가 없는 현실이 지적되기보다 공적인 장소에 나온 여성을 비난하는 것이 더욱 쉬운 일이 되어버릴 때, 노키즈존과 맘충이라는 단어가 함께 탄생한다. 동시에 아기와 어린이, 청소년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때 이들의 행위는 '귀찮은 것'이 되고, 이들을 통제하지 않는 여성의 잘못으로 이어진다. 누구는 "일부 무개념 엄마들만 '맘충'이라 부르는 것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아기를 안고 문밖을 나가는 순간 모든 여성이 잠재적 '맘충'으로 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모두가 안다.

누군가는 그 '맘충'이라는 말과 '노키즈존'이라는 공간 속에서 타인을 비난하며 편안함을 얻을 수 있겠으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추방을 통해 만들어진 고요함을 즐기고 싶진 않았다. 타인을 추방하고 배제하면서도 진짜 피해자는 나 자신이라 말하며 그 행위를 옹호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노키즈존에 가지도 않고, 일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비서로 일하는 국회라는 공간이 거대한 '노키즈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키즈존을 피해가며 살아왔다고 28년간 믿고 살았는데, 2021년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이 거대한 노키즈존의 일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알자 노키즈존을 거부해왔던 28년의 노력이 노키즈존에 갈 것인가, 아니면 가지 않을 것인가의 선택지 바깥의 답, "노키즈존이 없는 세상"에 가닿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키즈존' 국회
  
출산을 한 달여 앞둔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이 2018년 8월 8일 국회 정론관에서 국회의원의 출산휴가 규정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다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기자회견 하는 "예비엄마" 신보라 의원 출산을 한 달여 앞둔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이 2018년 8월 8일 국회 정론관에서 국회의원의 출산휴가 규정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다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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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 당시,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은 임기 중에 임신과 출산을 했다. 국회의원으로서는 두 번째 일이었다. 그때 쯤 그는 법안 하나를 발의했다. 무려 66명의 의원이 해당 법안 발의에 동참할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결과만 말하자면, 해당 법안은 논의되지 못한 채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해당 법안은 국회 회의장 내부로 24개월 이하 영아가 국회의원과 함께 출입할 수 있게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법안 계류 소식을 접하자 신보라 의원은 이번에는 의장에게 아이를 데리고 회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 국회법상 의장이 허가한 사람은 회의장 안으로 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국회의원들의 의안 심의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하고, 관련 법안이 논의 중인 상황에서 회의장 출입을 선제적으로 인정할 시 입법 심의권에 영향이 갈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되었다.

이 모든 일은 누군가에게는 해프닝에 불과했지만, 나에게 그 사건은 '노키즈존' 국회를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랬다. 우리는 단 한 번도 법을 만드는 공간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은 적 없다.

엄숙해야 하고, 고요해야 하며, 이성적이어야 하는 국회 회의실에 아기가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아기는 울 수도 있고, 떼를 쓸 수도 있고,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엄숙한 공간은 아기 울음소리로 인해 잠시 소란스러워질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 모습을 보는 모든 이들은 깨달을 것이다.

그 엄숙했던 공간에 용감하게 침입한 '귀찮은 존재'가 '노키즈존' 국회를 결국 허물어버렸다는 것을. 일하는 엄마가 직장에 어느 날 아기를 데려와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가 올 것이라는 점을. 국회에 아기를 데리고 등원하는 국회의원이 있고, 그것이 충격적인 일로 매스컴을 탄다면 모든 이들이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신과 출산, 육아가 정말 사회적인 문제가 맞는 것 같아." 그건 멋진 일이었다.

역대 세 번째로 임기 중 임신과 출산을 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이라는 이름의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을 발의하며 용혜인 의원은 "노키즈존 국회가 아닌 예스키즈존(Yes Kids Zone) 국회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해당 법안을 의원과 함께 준비하며 우리가 만들 변화가 노키즈존이 없는 세상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동시에 노키즈존이 없는 세상을 위해 더욱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스키즈존' 국회를 만드는 것만으로 노키즈존인 세상을 만들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도 하다.

노키즈존이 없는 사회
  
예스키즈존 국회를 넘어 노키즈존이 없는 사회로 넘어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가장 먼저 노키즈존이 사회적 차별이라는 점으로?인정되어야 한다.
 예스키즈존 국회를 넘어 노키즈존이 없는 사회로 넘어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가장 먼저 노키즈존이 사회적 차별이라는 점으로?인정되어야 한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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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키즈존 국회를 넘어 노키즈존이 없는 사회로 넘어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가장 먼저 노키즈존이 사회적 차별이라는 점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는 통제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존재들이 하나의 존엄한 개인이라는 깨달음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나와는 다르고, 한편으로 '미성숙'한 이들로 여겨졌으며, 사회적 권리가 박탈된 어린이·청소년이 '귀찮은 존재'를 넘어 권리의 주체임을 인정하는 길은, 지금의 사회가 차별적이었다는 시인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노키즈존 없는 세상을 꿈꾸는 나는 이 지점에서 차별금지법과 만났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정당한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박탈되거나, 공간에 들어갈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 차별이라는 걸, 사회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나이에 따른 차별이 잘못된 일이라는 사실이 법으로 명시될 때, 모든 이들은 노키즈존에 갈 것인가, 아니면 가지 않을 것인가의 선택지 바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바깥의 선택지는 공동이 주장하는 "그것은 차별입니다"라는 목소리로 완성될 것이다. 노키즈존에 대한 차별을 당사자의 글로 증언한 전이수 작가도, 동생 전우태도 "그것은 차별입니다"라고 항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한 일상 속의 반란이 노키즈존 식당과 카페, PC방도 점점 줄어들게 만들 수 있음을 믿는다. 타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편의 대신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더 늘어날 것을 믿는다.

국회 회의장 안으로 '귀찮은 존재'가 용감하게 침입하는 것만큼 '귀찮은 존재'들의 반란이 터져 나오는 것도 멋진 일일 것 같다. 그러한 세상이 최대한 빨리 도래하기를 바란다. 5월 25일 시작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나도 말하고 싶다, 겪었던 이야기!

📢방법1. 자신의 SNS에 해시태그(#차별금지법_나도필요해)와 함께 경험 적기
📢방법2. 구글 설문지에 경험 적기!
https://forms.gle/HVaSZUqgABSgUxqW7
📢[#차별금지법_나도필요해] 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 10만행동>을 목표로 각자의 차별경험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를 쓴 신민주는 기본소득당 서울시당 상임위원장입니다.


태그:#차별금지법, #차별금지법_나도필요해, #노키즈존,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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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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