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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은 원래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있는 '교육권'의 준말이지만 사회적으로 교사의 권리라고 정의내려진 이후에는 '교권이 지켜져야 한다'는 돌림노래만 들린다. 2021년 스승의날을 맞아 연대체 '연대하는 교사잡것들'에서는 연속기고 '#교권이_아니다'를 통해 교권에 대한 논의를 펼쳐보고자 한다.[편집자말]
2020년 11월 3일 91돌 학생의 날을 기념하며 "핸드폰 강제수거금지" 학내 퍼포먼스 11월 3일, 91돌 학생의 날을 맞아 ‘핸드폰 강제수거 금지’를 요구하는 중고생들의 ‘포스트잇 퍼포먼스’가 열렸다.
▲ 핸드폰 강제수거금지 학내 퍼포먼스 2020년 11월 3일 91돌 학생의 날을 기념하며 "핸드폰 강제수거금지" 학내 퍼포먼스 11월 3일, 91돌 학생의 날을 맞아 ‘핸드폰 강제수거 금지’를 요구하는 중고생들의 ‘포스트잇 퍼포먼스’가 열렸다.
ⓒ 청소년인권단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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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활동 공간에서 온라인 공간이 차지하는 비율은 이제 줄일 수가 없고 그에 따라 개인정보 보안도 중요해졌다. 하지만 학교에서 온라인 공간을 다루는 방식과 학생들의 개인정보 보안을 대하는 인식은 매우 후진적이다. 학교는 아직도 통제와 금지를 통해 학생들의 디지털 라이프를 관리하려고 한다. 사회가 아무리 변하고 학생들의 요구가 빗발쳐도 흥선대원군의 마음으로 학교로 들어오는 전파신호들을 차단하려던 모습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보이는 학교의 모습을 보면 우스꽝스러울 때가 더 많다. 신미양요(신미년 서양 오랑캐의 소요)로 인해 문호가 강제로 개방되었던 것처럼 2020년, 경자코요(경자년의 코로나 소요)로 인해 학교의 디지털 차단막이 강제로 허물어졌다. 온라인 수업을 위해 온라인 학습 도구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줌과 구글클래스, 패들릿(온라인 공유 메모장)과 같은 신문물이 소개되자 수업에서 온라인을 활용하는 비중이 늘었고 학생들이 등교를 하더라도 온라인 학습도구를 함께 수업에 활용하는 교사들도 많아졌다.

더구나 몇 개 학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학년이 매일 등교하는 상황이 아니기에 온라인과 오프라인 병행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병행이라기보단 병행이 더 편리하고 효율적이기에 학생과 교사 모두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교사들은 더이상 과제를 프린트로만 나눠주고 걷을 필요가 없어졌고 수업자료는 언제든지 구글 클라우드를 통해 공유할 수 있게 되었으니 수업자료를 미리 인쇄하고 학급별로 인원수에 맞게 정리할 수고가 줄었다.

가정통신문과 보호자동의서도 힘들게 종이로 주고받을 필요 없이 알림앱을 통해 전달하고 동의서도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담임교사와 업무담당자들의 서류정리 업무가 줄었다.

교육청은 교실마다 공용 와이파이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교실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하기 좋은 환경이 됐다. 온라인 수업에서 쓰던 패들릿으로 오프라인 교실수업시간에도 설문을 하고 싶은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을 쓸 수 있도록 했고 그렇게 한두 번 경험을 한 교사와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그동안 왜 쓰지 못하게 했었던 것인가 의문이 들게 됐다.

청소년만 게임에 중독되나? 
 
휴대폰 가방
 휴대폰 가방
ⓒ 청소년문화공동체 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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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학생의 스마트폰을 아침마다 강제로 수거하는 것을 포기하는 학교와 교사들이 생기고 있다.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가능해지자 학생들은 점심시간에 다른 반의 친구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졌고 담임은 학생에게 급히 전달할 사항이 생겨도 쉬는 시간에 급히 교실에 갈 필요 없이 학급 단톡으로 보내면 된다. 세상 사람들이 24시간 누리던 디지털 공간을 드디어 학교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아침마다 스마트폰을 강제로 걷어가는 학교가 훨씬 많다. 내가 일하는 학교도 그렇다. 우리학교는 아직도 교사들의 편의를 위한 디지털 개방만 하고 학생들을 위한 디지털 개방은 어떻게든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왜 그리도 열심히 막으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그동안 막아온 것에 대한 관성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학교에선 새학기가 시작하자 스마트폰 강제수거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동의서를 걷었다. 그런데 동의서를 내지 않겠다는 학생들이 있었다. 담임 교사들은 학교정책과 학생들의 비동의 사이에서 당황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 별의별 얘기를 다 했다. 한 교사는 동의서는 행정 서류일 뿐 의미는 없으니 스마트폰은 그냥 걷는 것이라 했고 한 교사는 미안한데 네가 동의서를 안 내면 학교에 찍힐 수 있으니 그냥 동의서를 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동의서를 내지 않은 학생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학생들의 스마트폰은 매일 담임교사에 의해 아침마다 수거되고 있다. 학생들은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수거되는 현실을 보며 애초에 왜 동의여부를 조사했는지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선 또 다른 의문을 표하는 학생도 있었다. 스마트폰은 걷어가면서 아이패드는 왜 안 걷냐는 의문이었다.

아이패드와 노트북을 가져와 과제를 하고 쉬는 시간에 인터넷을 하는 학생들이 여기저기 있으니 이상하게 느낄 만했다. 아이폰은 안 되는데 아이패드는 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논리적이지 않았다. 두 가지 의문에 학교는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핸드폰을 오랫동안 걷어간 이유는 대체 뭐였을까. 처음 공식적으로 핸드폰을 통제하던 때엔 수업시간에 수업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리고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니 쉬는 시간에도 핸드폰을 하기보단 공부를 준비하는 휴식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핸드폰을 쥐어주면 쉬는 시간에 게임만 할 것이고 결국 학생들은 핸드폰과 게임에 중독될 것이라고.

그런데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난 학교의 정책과 상관없이 항상 핸드폰을 강제로 수거하지 않았다. 대신 수업시간엔 쓰지 않는 것이 에티켓이니 자제하자고 부탁했고 거의 모든 학생은 실제로 수업시간에 쓰지 않았고 수업시간에 쓰다 문제가 된 적은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몇 차례 되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도 게임을 하는 하거나 인터넷을 하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쉬는 시간 10분 동안 게임을 하는 것이 중독으로 이어질 리도 없었다.

정말 게임과 인터넷에 대한 중독을 청소년만의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하는 오해였다. 게임이든 무엇이든 중독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빠질 수 있는 것이니 청소년이라고 더 크게 위험한 것은 아니다. 학생들 통제하는 일에 진심이고 학생인권침해를 밥 먹듯 하는 교사 중 한 분은 예전부터 공강 시간만 되면 게임을 했는데 얼마나 중독이 됐는지 지난번 시험 때 보니 시험 감독을 하면서도 스마트폰의 화면을 계속 손가락으로 터치하고 있었다.

그런 교사들의 모순은 교무실에 있다 보면 매일 볼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교내망의 접속금지가 풀어지면서 교사들은 네이버메일과 카카오톡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학생들의 핸드폰은 철저하게 걷으면서 자신들은 카카오톡으로 지인들과 소통하고 메일도 쉽게 보내게 되었다며 코로나가 끝나고 제발 차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학생들에겐 수업시간에 잠시 온라인 수업자료를 함께 보기 위해 잠시 스마트폰을 나눠주며 생색내면서 교사인 자신들은 쉬는 시간 교내 와이파이망을 피하기 위해 모바일데이터를 켜고 주식시세를 확인하고 수업시간이 끝나자마자 증권을 사고팔기도 한다. 심지어 교육부는 학교망에서 증권사와 게임회사의 접속은 막았으면서 업비트 사이트는 접속을 막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덜 부끄럽고 싶다

교육부도 교사도 자신들의 모습의 모순성을 생각하지 않고 통제와 감시에만 길든 것 같다. 스승의 날만 되면 학생과 학부모에 의해 밤늦게 카톡이 와서 교권이 침해되었다는 기사가 나오고 업무폰 제공으로 교사를 보호하겠다고 하면서 교사가 밤늦게 학생들에게 단톡을 보내거나 학교에서 교육청 보고 마감일자를 놓쳐서 퇴근 시간 이후 학부모에게 앱을 통해 가정통신문을 보내고 당일까지 답신을 보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선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자신들의 개인정보가 학교 밖으로 유출되면 안 된다고 학생들에게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는 것엔 인색하면서 학생들의 개인정보 동의서는 말로만 동의서일 뿐 무조건 동의만 하도록 한 채 학교의 모든 교사는 언제든지 학생의 연락처와 주소 등을 쉽게 열람할 수 있게 관리하고 있다. 같은 개인정보인데 다르게 다뤄지는 것의 이유에 대해 나이 말고는 찾을 게 없어 보인다. 교사들이 겪은 피해만 부각되고 학생들의 피해에는 쉽게 눈감는 것이 교권을 지키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런 모순 가득한 디지털 통제의 모습은 정말 매일 목격하지만 이에 대해 합리적으로 학교는 설명하지 않는다. 매번 학생은 아직 어려서,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라는 이유만 반복한다. 그런데 그 설명은 충분하지도 않고 거짓되어 보이기도 한다. 묘하게 오해할만한 상황들이 있었기에 그렇다. 처음 핸드폰이 나와 소수의 학생들만 핸드폰이 있던 시절엔 핸드폰을 걷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오장풍이라는 교사가 있었고 학생을 때리던 교사의 모습이 학생에 의해 체벌장면이 촬영되었고 세상이 시끄러워졌다. 학교는 열심히 학생의 핸드폰을 걷었다. 묘하게 겹쳐지는 이 상황들이 나의 오해와 의심이 지나친 것이라면 좋겠는데 학교에서 목격하는 모습들을 보면 어쩌면 그 오해들이 진실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젠 그런 모순을 그만 보고 싶고 학생들에게 덜 부끄럽고 싶다. 그러니 아직까지도 디지털 통제를 하는 학교와 교사들이 있다면 이번 경자코요를 핑계로 못 이기는 척 풀어놓았으면 좋겠다. 그게 마지막 품위라고 지키는 길일 것이다. 언제까지 학생들이 미성숙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학생들의 디지털 라이프를 통제하면서 교사 자신의 모순은 숨기고 자신들의 편리함만을 취할 수는 없다. 그것은 아무리 봐도 교권이 아니다.

태그:#교권, #교사, #스승의날, #교사잡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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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손이 자유롭고 싶어서 비가 와도 우산을 안쓰는 사람입니다. #연대하는교사잡것들 #특성화고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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