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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들었던 첫 자취방의 첫 날 모습
 정들었던 첫 자취방의 첫 날 모습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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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둥지를 옮겼다. 수원으로 이사했다. 새로운 회사에 다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20대의 3할을 보낸 첫 직장을 돌연 그만둔 이유는 단순했다. 새로운 일을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시국에 무모한 선택일 수 있었지만, 멀쩡한 본가 놔두고 10분 거리에 월세방을 구했던 과거의 나는 별반 다를 것 있나. 이로 인해 18편의 '새둥지 자취생 이야기'를 쓰게 될 줄은 알았던가(관련 연재 : 새둥지 자취생 일기).
 
중고거래 3월 가계부
 중고거래 3월 가계부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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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가 바뀌는 순간 

이직을 결정하자마자 모든 일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회사 인수인계, 자취방 정리, 새로운 집 구하기, 짐 정리하기, 이사 견적 내기, 중고거래 등. 짐을 최소한으로 줄이려 있는 대로 잡동사니를 팔았더니, 그달 중고거래 앱 가계부 실적이 약 180만 원을 기록했다. 친구들이 '집안 살림 거덜 냈냐'며 놀라워했다.

주말마다 수원으로 가서 집을 봤다. 세입자와 시간을 조율해야 하다 보니 하루에 많은 방을 봐도 2~3개밖에 볼 수 없었다. 어디 구, 어디 구, 어디 구. 처음 듣는 지역에 각각 동네 특성은 무엇인지. 어렸을 때부터 나고 자란 곳에서 혼자 사는 것과, 아무 연고 없는 왕복 3시간 거리에서 새로운 자취방을 구하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한정된 금액에 맞춰 짧은 기간 내에 방을 구하려니 기상천외한 방도 많았다. '이 컨디션에 월세 60만 원을 받는다고?' 생각했던 곳도 있었고, 창문에 묵직한 쇠창살이 달려있는 방, 호텔을 개조한 방 등등 다양한 타입 등의 방이 있었다.

서너 군데를 더 둘러보고 그나마 시간과 금액, 컨디션이 맞는 적당한 방을 계약했다. 원래 살던 김포로 돌아갈 시간이 촉박해 나도 모르게 부산스럽게 했더니, 중개사분도 덩달아 뛰어다니며 도장을 찍었다.

계약을 했다고 끝이 아니다. 이제 입주 청소와 이삿짐 견적도 내야 한다. 김포는 워낙 오래 살았고, 이사를 자주 했기에 베테랑 업체 서너 군데는 꿰고 있었다. 수원도 그렇겠거니, 하고 조사를 해보는데 웬걸. 괜찮은 청소업체 자체가 몇 개 없다.

그마저도 전화를 해보면 이미 두 달 만큼의 예약은 꽉 찼다. 겨우겨우 청소 어플로 예약을 했는데, 내가 정보 조사를 덜 한 탓일까. 최소 2~3명이 와서 서너 시간 안에 끝낼 거라 예상했는데 한 분이 무려 8시간을 청소하고 가셨다.

그분도 당황했고, 나도 당황했다. 김포로 다시 돌아가기도 애매해 8시간 동안 수원 거리를 떠돌아다녔다. 이삿짐은 다행히 어플을 통해 수월하게 예약했다. 신청서를 올리면 약 10분 안에 5명의 기사님들이 각각 견적을 보내주는 것이 놀라웠다.

'옮긴다'면 끝인 줄 알았는데,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도와줄 사람은 있는지, 짐 박스 개수는 어떻게 되는지 등등 모든 요인을 고려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것을 일일이 업체마다 설명하려면 힘들었을 텐데 번거로움을 줄였다.

낮에는 퇴사를 준비했다. 알바를 제외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처음이다 보니, 인수인계서 작성도 심혈을 기울여 했다. 아쉬워하는 동료 직원들이 날이 바뀔 때마다 내 퇴사일을 카운트다운해주었다. 내 빈자리를 최대한 느끼지 못하게, 또 만약 후임이 들어온다면 처음 보고도 업무를 파악할 수 있게 모든 업무 현황과 문서 위치 등을 정리해 놓았다.

이렇게 정리를 하니 '기보'를 적는 느낌이었다. 내가 3년 동안 이렇게 많은 일을 했었나 싶기도 하고, 그동안 쌓인 데이터가 내가 밟아온 길처럼 보였다. 3년 간 퇴사를 한 번도 생각해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만둘 줄은 몰랐거늘. 놀랍게도 깔끔하고 별 일 없다.

퇴사일이 되니 이전엔 전혀 이런 일이 없던 컴퓨터가 자꾸 먹통이 되었다. 과장님이 '퇴사를 하니 컴퓨터가 아쉬운가 보다' 하며 하하 웃으셨다. 언제든 놀러 오라며 다들 손을 흔드셨다. 집에 돌아와 못다 한 감사 인사를 한 분 한 분 드리니, '너는 어디든 잘 적응 할 거야'라는 따뜻한 말이 돌아온다. 둥지가 바뀌는 순간, 이 말이 가장 따뜻하고 힘이 된다.
 
자취방에 누워서
 자취방에 누워서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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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이기에 가능했던 일들

드디어 이사가 끝났다. 프로젝트는 엉망진창 흘러도 어떻게든 마무리가 된다. 정말 아무도 없는 방 한 칸에 있으니 새로운 둥지에 안착했다는 느낌이 든다.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다.

그간 본가에서 10분 거리에서 혼자 월세를 내고 밥을 먹으며 자취 아닌 자취를 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비훈련에 가까웠다. 부모님이 근처에 있었고, 퇴근 후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동네에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 아프고 힘들더라도 최대한 내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왕복 3시간 거리도 멀게 느껴지는데 해외로 혼자 유학 갔던 친구들은 그걸 어떻게 견딘 것인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침대에 앉아 <오마이뉴스>에서 그간 연재했던 '새둥지 자취생 이야기'를 다시 찬찬히 읽었다. 별일이 다 있었다.

밥솥 놓을 공간이 없어 가마솥 밥 짓는 법을 배운 일, 선물 받은 귤과 막걸리로 샤베트를 만들어 먹은 일, 층간소음을 겪으며 난생처음 '발망치'라는 단어를 알게 된 일, 좀처럼 대화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를 공장 아저씨와 당근마켓으로 밥솥을 거래한 일. 본가에 있었다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엄마가 지어주신 밥을 먹느라 가마솥을 알아볼 생각도 안 했을 것이고, 부엌 어지럽히지 말라는 말에 믹서기에 귤과 막걸리를 갈아 셔벗을 실험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식구들과 떠드느라 윗집 옆집에 누가 사는지 잘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이기에 스스로 생각하고, 귀 기울이고, 기록했다.

이제 나는 다시 한번 둥지를 옮긴다. 지금부터는 오로지 내 힘으로 재료를 구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집을 짓고, 비바람에 무너지면 보수공사도 해야 한다. 가끔은 서럽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덜 자란 새가 한번 나는 법을 배우면, 그 하늘은 모두 자기 것이 된다는 것을. 그 자유를 알기에, 우리는 오늘도 홀로 살기를 도전하는 것이다.

필자는 새로운 자취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새둥지 자취생 이야기 시즌2'로 돌아오려 한다. 지금까지 공감해주며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올리고 싶다. 자취를 꿈꾸는 사람, 자취를 하고 있는 사람, 자취를 했던 사람, 그 밖의 홀로 있는 모든 이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태그:#자취, #홀로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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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정누리입니다. snflsnfl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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