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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전남 광양시 광양백운고등학교에서 열린 '5월의 인문학 -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의 잡학사전' 강연 중 질의 응답하는 박준영 변호사
 지난 11일 전남 광양시 광양백운고등학교에서 열린 "5월의 인문학 -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의 잡학사전" 강연 중 질의 응답하는 박준영 변호사
ⓒ 허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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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르지도 않은 일에 꾸중을 들으면 속이 상하게 마련이다. 언젠가 우리 집 거실에 오렌지 주스가 쏟아졌을 때, 사건의 경위를 모르는 엄마는 나를 범인으로 꼽았다. 만약 언니가 자수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대로 야단을 맞고 혼자서 펑펑 울며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까짓 꾸중 한 마디. 고작 오렌지 주스일 뿐이며 사랑하는 엄마의 가르침이니, 이틀 뒤에는 몽땅 털어낼 수 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살인범으로 지목당하는 것은 어떨까? 정의를 수호하는 공권력으로부터 따귀를 맞으며 저지르지 않은 살인을 자백해야 한다면, 떨쳐버리려 해도 떨칠 수 없는 빨간 줄이 그어진다면 어떨까?

특별하지 않은 변호사의 이름으로

어느 날, 국가는 두 명의 시민을 향해 강간살인범이라는 지위를 부여했다. 두 청년은 수용되었다. 21년 5개월 20일이라는 시간을 억겁처럼 흘려보내야만 했다. 그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니 세기가 바뀌었고, 두 살배기 한글도 못다 뗀 사랑스러운 딸은 숙녀가 되었다. 세상은 많이도 바뀌었다. 분명 엊그제까지만 해도 폴더였던 것이 아이폰이 되어버렸다나. 그들의 인생 삼 할은 그런 식으로 지나가 버렸다.

무고한 시민 장동익을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낙인찍었던 사법부는 어느 날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자신의 투지, 어머니의 유품, 그리고 변호사 박준영이 일구어낸 결과였다. 박준영은 수임료도 없이 때로는 주머니를 털어가며 억울한 사람의 손을 잡았다.

재심 전문 변호사, 파산 변호사, 바보 변호사. 우리는 박준영을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내가 본 인간 박준영은 어떤 미사여구보다도 솔직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17년 조금 넘는 짧은 인생을 살며 우리 동네 작은 파출소에 고개도 들이밀어 보지 못한 나는, 변호사라고 불리는 사람의 구둣발도 두 눈으로 본 적이 없다. '테레비'에 나오는 유명한 변호사의 강연을 듣게 된 것은 우리 학교 국어 선생님과 사서 선생님의 피땀 서린 결실이다.

지난 11일 전남 광양시에 있는 광양백운고등학교에서는 '5월의 인문학' 강연자로 박준영 변호사를 초대했다. 이날 박준영 변호사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마이크가 최근에 코로나 때문에 보기 힘든 노래방 마이크네요."

고조된 긴장을 툭 끊어버리는 가위 같은 말이었다. 내가 만나 본 첫 번째 변호사였음에도 확신이 들었다. 이 사람은 한국 땅에서 제일 웃기는 변호사일 것이라는 확신.

그의 책을 읽을 때는 장엄한 용기와 숭고한 정의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국가가 씌운 누명을 벗겨준다니. 실행은 고사하고 마음먹기조차도 힘든 일이다.
 
"쉬운 일은 누구나 다 해요! 어려운 일, 아무나 못 하는 일을 해야죠.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글이나 쓰려고 기자 되셨어요? 적당히 편한 길만 찾으면 세상 못 바꿔요. 이 사건은 아무나 다를 수 없어요." (<지연된 정의>, 박상규 박준영, 145쪽)
 
약촌오거리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했을 때, 박준영 변호사가 박상규 기자의 참여를 설득한 말이다. 박준영 변호사는 약촌 오거리 사건을 맡았을 적에 지겹도록 악몽을 꿨다. 그럼에도 박 변호사는 멈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과연 어떻게 나아가야 조금이라도 더 깊게 들어갈지를 고민했다. 그런 박준영 변호사는 나에게 '다른 차원의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박준영 변호사는 내 공상을 깨부수려는 듯 거침없는 언사를 보여줬다. 작은 무대 위 고운 목소리와 하얀 얼굴과 전라도 말씨, 분위기를 주도하는 당당한 모습. 그런 것들이 뒤틀리면서도 어우러졌다.

그는 준비해온 본인의 말에도 막힘이 없었지만, 학생들이 묻는 말에도 시원하게 답했다.

"최근 방송에 나오셔서 심리학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웃음)…. 제가 말을 잘못 꺼냈구나. 심리학 공부는 안 했어요."


그는 재밌는 말을 하면서 진지한 분위기를 끄집어내는 재주도 있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다고 그러죠. 그런데 빨간 것이 사과밖에 없습니까? 맛있는 것은 바나나뿐이에요? 어떻게 잘 맞춰서 원숭이 엉덩이로부터 백두산까지 이어가지 않습니까. 그렇듯 논리란 때로는 허망한 것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 학교의 학생들은 그의 저서를 두고 토론을 진행했다. 열 개의 논제가 등장했고, 모두가 열띤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하나 쉽게 결론이 나는 것이 없었다. 그중에 인상 깊었던 한 가지를 꼽아 이야기하겠다.

친한 친구의 살인을 숨겨줄 수 있는가?

딱 잘라 그럴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한 번쯤은 숨겨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반문이 나왔고, 오히려 잘 타일러 자백하도록 종용하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어느 하나 정답이라고 꼽을 수 없는 형식의 주제였다.

가만히 토론 패널을 지켜보던 박 변호사는 이야기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겠느냐고. 어느 정도로 친한 친구인지, 어떤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살인자로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인지를 고려해봐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사실 토론에 있어 무책임한 태도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가장 현실적인 말이기도 하다. 언제나 대쪽같이 어느 한 입장만을 견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남은 아홉 개의 논제에 대해서도 그는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상황에 근거해서 보아야 하니까.

이 사회는 너무나도 선명하고 즉각적인 정의를 요구한다. 하지만 상황 파악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생각해야 한다. 판단이란 공유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사고가 그를 재심의 길로 이끌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니까, 억울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분명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있기만 할까. 많을 것이다.

그 누가 어떤 주장을 표명하든 간에, 필연적으로 그 반대편 입장이 존재한다. 따라서 확고한 의견은 누군가의 동의를 얻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난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소 모호하고 우유부단하게, 주변에 묻어가듯 살아간다면 민감한 주제로 부딪힐 일은 없을 것이다. 확실히 일상은 평온할 테다. 하지만 힘을 주는 대로 휘어지는 철사처럼 지내다 보면 결국 내가 옷걸이가 되는지 철조망이 되어가는지도 모른 채 꺾여버리기 마련이다.

박준영 변호사의 의견이 전부 옳다고 결론 내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포괄적인 사고를 갖는 것만큼 나 스스로 주관을 갖는 일 또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배웠다. 박준영은 말했다. 자신의 '민감한' 발언이, 역사 속에서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고. 모두가 외면하지 않았으며 누군가는 목소리를 냈다는 평가를 받게 될 미래를 기대한다고 말이다.

박준영 변호사의 곁에는 한 사내가 한참을 묵묵히 앉아있었다. 객석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 그 남자의 이름을 알았다.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에서 누명을 쓴 사법 피해자 장동익씨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장동익씨의 눈에는 매 순간 애틋함이 서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장동익씨가 애틋했다. 한 개인을 궁지로 몰아넣은 국가에 대한 분노와 억울한 수감 생활을 견뎌낸 의지에 대한 존경심, 다양한 감정이 복잡하게 섞여들었다. 장동익씨는 박준영 변호사로부터 수줍게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21년 5개월 20일, 통한의 시간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여러분. 5년 뒤의 자화상을 한 번 그려보세요."

그는 처음 '억울하다'라는 목소리를 냈을 때도, 자신이 도로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체포를 당하던 날의 아침에도, 5년 뒤 감옥에 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비전을 내다보며 나 자신의 미래를 그려나가야 한다는 당부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가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밝히니, 이렇게 진실이 밝혀질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모든 일에 솔직하게 임해야 하는 법입니다."

장동익씨는 웃음이 만개한 얼굴, 호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가늠할 수도 없는 고통을 겪어온 사람이 보여주는 환한 웃음. 마스크에 숨겨져 있었지만 완연한 표정이 눈앞에 드리우는 듯했다. 그의 말을 내가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따금 장동익 씨의 목소리와, 사인을 해주는 조심스러운 손, 정갈한 글씨체로 쓰인 '긍정의 힘'이라는 문구가 떠오를 것만 같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장동익씨는 한 글자마다 정성을 눌러담아 사인을 남겼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장동익씨는 한 글자마다 정성을 눌러담아 사인을 남겼다.
ⓒ 허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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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준영, #장동익, #부산 엄궁동 살인사건, #재심, #지연된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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