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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밖에 나가 열심히 일하게 만든 저의 두 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
- 제93회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자 윤여정씨의 수상소감 중

일하는 엄마는 우리 집에도 있다. 그는 1년의 1/3을 집 밖에 있다. 내가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는 2주 정도 사라졌다 나타나기도 했다. 밥은 알아서 해 먹는다. 집안일 역시 마찬가지.

사진작가인 엄마는 마흔여섯 나이에 대학을 가서 사진을 공부했다. 3년 과정을 수료한 다음에는 세계 15개 국가를 돌며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다. 그에게 있어 예쁜(?) 딸 사진은 많은 사진 중 하나일 뿐이다.
 
장은미 작가가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장은미 작가가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 장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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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키르기스스탄... 아무리 다 키웠다 해도 그렇지, 하나뿐인 딸을 너무 내버려 두는 것은 아닐까?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다 옛말이다. 텅 빈 집이 이미 익숙해진 내게 남은 건 하루가 달리 강해지는 자생력뿐이다. 집 나가는 엄마, 세상을 담아온 그의 카메라. 나는 거기서 낯선 여성을 만난다.

"<미나리> 윤여정 배우 35관왕 됐대. 진짜 대단하지 않아? 인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맞아. 윤여정처럼 살고 싶다."
"윤여정처럼 사는 게 뭔데?"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며칠 전 나눴던 대화처럼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갈 나의 엄마. 이제는 딸도, 엄마도 아닌 그냥 나로 살고 싶다는 장은미의 사진이 궁금해졌다.
  
내가 그러했듯 당신도 위로받고 흔들리지 않기를
 
Querencia #2_완차코, 페루_2017
 Querencia #2_완차코, 페루_2017
ⓒ 장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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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밥을 먹고 있을 때 그는 세계 곳곳에서 일상 속 아픔과 슬픔을 찾았고, 취업 준비에 허덕이고 있을 때 그는 인생의 단면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2017년 나와 함께했던 페루 여행은 엄마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여행이 끝나면 페루에 남게 될 딸과 1년 동안 떨어져 홀로 지내야 했기에 즐겁다가도 종종 슬프고 착잡했으며 쓸쓸했다.

그때 그 감정들은 초보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에 그대로 투영됐다. 해 질 무렵 페루 북부의 완차코 해변을 걷던 할아버지의 사진에는 눈물이 치밀 만큼의 외로움과 고독이 담겼다.

그러나 마냥 외롭고 고독하지만은 않다. 할아버지를 감싼 붉은 석양빛이 따뜻해서다. 엄마는 사진 공개 후 쓸쓸함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는 감상평을 종종 들었다. 그만의 감정선이 사진에 녹아든 덕분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발행한 2021년 1월 17일자 서울주보 1면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발행한 2021년 1월 17일자 서울주보 1면
ⓒ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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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으로 사람을 살린 일도 있었다. 지난 2월 일면식도 없는 한 천주교 신자가 그를 찾아왔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가 주보에 실린 그의 사진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것이다. 주변 정리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들렸던 성당에서 주보를 받아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단다.

"절벽에 서서 기도하는 수도사가 꼭 자기 모습 같더래. 이 수도사는 도대체 뭐 때문에 이 절벽에 서 있으며 무슨 기도를 저렇게 간절히 올릴까. 나는 원망만 했지, 이토록 간절하게 기도해본 적이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미사 시간 내내 울었다 하더라고."

한바탕 울고 나니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단 이야기를 듣고도 엄마는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그의 작품이 보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절망하게 만들 수도 있겠구나 싶어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사진 한 장의 무게를 실감하는 지금, 그는 셔터를 누를 때마다 작가로서의 책임을 생각한다.

비정한 현실 속 부정(父情)을 조명하다

엄마의 사진에는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담겨 있다. 보통 해외동포라는 말은 유럽과 미국, 일본에 사는 한인을 부를 때 쓴다. 그런데 왜 중국과 중앙아시아에 사는 한인은 조선족이나 고려인이라고 부를까?

우리와 다른 인종처럼 불리는 그들 역시 한글을 알고 한국 문화를 간직하며 한국인과 유대감을 가진 해외동포다.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엄마의 사진을 보며 처음 알게 됐다.

전시 <HER-STORY: 코리안. 디아스포라. 여성>은 그가 가장 보람을 느꼈던 작업이다. 2019년 3월부터 11월까지 장장 8개월간 이어진 장기 프로젝트에 메인 작가로 참여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본디 성경에서 나온 말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지칭하던 용어다. 현재는 정치적 난민이나 이민자, 소수 인종 등 재외 동포를 통칭하는 쪽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프로젝트에서 만났던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은 역 디아스포라였다. 일제시대 때 강제 이주당했던 고려인이나 조선족, 까레이스키, 자이니치 2·3세대가 고향 땅에 돌아와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어서다.

노벨상을 수상한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는 엄마의 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사람은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지나온 세월이 바로 자신의 삶이었으며, 이제 그 삶을 받아들이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상처를 받은 채 떠나고 싶지는 않은 법.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렇게 쫓기듯 황망히는. 지난 삶을 돌아보는 사람의 마음속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욕구뿐만 아니라, 풀지 못한 삶의 비밀까지 알아내고픈 욕구도 숨어 있다.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p.2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디아스포라 3세대 임도경의 아버지 故임명수님의 생전 모습
 디아스포라 3세대 임도경의 아버지 故임명수님의 생전 모습
ⓒ 장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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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관심이 그 사람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세운 것 같아 미안했어. 나는 단지 운이 좋아 여기서 태어났고, 그들은 운이 나빠 이주당한 거니까."

엄마는 그들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사실이 너무 죄송스러웠다고 했다. 실례를 범하지 않으려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조심하며 디아스포라 여성들을 만났다. 여러 차례 행사에 참여하며 대화를 나눴고, 그중 몇몇은 집에 직접 방문해서 전시회에 실릴 초상사진을 찍었다.

작가의 진심이 모델에게도 닿은 덕분일까. 그해 11월, 송년회 겸 열린 전시회에서 사진 속 주인공들이 직접 밝힌 소감에는 '장은미 작가님께 너무 고마웠다'는 감사 인사가 빠짐없이 들어가 있었다.

엄마는 그중 3세대 디아스포라 여성 한 명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자신을 키우기 위해 힘들게 돈을 벌다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 앞에서 펑펑 울며 고맙다 인사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서다.
 
故임명수님의 유품들
 故임명수님의 유품들
ⓒ 장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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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딸이랑 나이가 비슷해서 더 마음이 쓰였는지 몰라. 아버님 일기장을 보는데 이런 게 부정(父情)이구나 싶더라. 평생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둔 그 마음이 얼마나 서럽겠어. '한평생 그늘진 곳에서 살아온 우리 아버지, 이렇게라도 주인공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우는데 큰일 한 것도 아니지만 뿌듯했지." 

자유로이 나는 저 새처럼
  
VENTANA #31_안티구아, 과테말라_2020
 VENTANA #31_안티구아, 과테말라_2020
ⓒ 장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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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볼 때마다 그냥 웃음이 나오고 행복해져. 저 새가 어떨 땐 나 같다가 예수님 같기도 하고, 때론 너 같기도 하더라. 누구든 이 새에 대입하면 자유롭게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아."

작품 하나하나 소중한 작가에게도 유독 마음 가는 사진이 있기 마련이다. 그에게는 과테말라에서 촬영한 'VENTANA #31'이 그런 존재다. 스물넷 어린 나이에 결혼해 사회활동을 하지도, 친구를 만나지도 못하고 아이를 키워야 했다. 우울증에 좀먹히는 건 시간문제였고 극단적 시도까지 했다. 당시 그를 붙든 건 하나뿐인 딸이었고, 이제는 사진이다. 사진 덕분에 삶을 되찾은 그는 자유로이 유영하는 새처럼 카메라 들고 세계 각지를 누볐다.

배낭 메고 떠난 이십 대 청춘도 막판에는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고 외치게 만드는 게 바로 여행이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낯선 곳에 있기를 즐기는 그의 여행기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나이는 오십 줄에 접어들었고 타고 나길 '저질 체력'의 소유자인 탓에,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고산병으로 인해 몸져누웠다.

키르기스스탄의 샤르첼릭(생물 보존 구역) 3박 4일 트래킹 코스를 걷던 중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계속 여행을 다녔다. 낯선 곳에서만 받을 수 있는 설렘과 기대감이 좋아서다. 낯선 두근거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배가 된다.

집 나간 엄마에게 인생 최고의 여행지는 딸과 떠났던 볼리비아다. 고산병과 추위,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고생했지만 딸과 함께 봤던 우유니의 별이 가득한 밤하늘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단다.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일은 곧 주어진 삶을 거부하는 일이다. 남겨진 사람들도 자신의 삶을 찾아갈 임무를 부여받는다. 엄마에게 나는 남겨진 사람이다. 모성은 엄마에게 주어진 삶의 방식이다. 나는 엄마가 모성을 거부했다고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그 모성이 남과 다르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엄마는 엄마일 뿐이다.

단지 나는 엄마에게 많은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만들게 될 가족에, 엄마가 알려준 원칙을 적용해 볼 생각이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족을 만들면 서로의 짐밖에 될지 모른다고 그는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족이 행복의 전부를 만들어주지 않는단 것도 가르쳐줬다. 이렇게 서로에게 익숙해져 가는 것. 이런 게 가족 아닐까? 독립된 존재가 서로 익숙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
 
VENTANA #01_보고타, 콜롬비아_2020
 VENTANA #01_보고타, 콜롬비아_2020
ⓒ 장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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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TANA #17_과나보, 쿠바_2020
 VENTANA #17_과나보, 쿠바_2020
ⓒ 장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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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TANA #34_독도굴 호수, 키르기스스탄_2019
 VENTANA #34_독도굴 호수, 키르기스스탄_2019
ⓒ 장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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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저의 개인 블로그 blog.naver.com/lhwon96 에도 게재됩니다.


태그:#딸이쓰는엄마이야기, #사진작가, #여행, #딸,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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