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신혼부부 전세임대Ⅱ' 프로그램에 지원해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은 어느 신혼부부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당사자로 이름을 밝히기 원하지 않아 익명으로 싣습니다.[편집자말] |
LH를 너무 믿었던 탓인지 아니면 그냥 운이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희 부부같은 사람들이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작성합니다.
저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신혼부부에게 제공하는 '신혼부부 전세임대Ⅱ' 프로그램을 신청한 신혼부부입니다. 2021년 3월 10일 어렵게 LH 전세 계약을 허용해 주는 임대인을 만나 LH 측 법무사가 참석한 가운데 전세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공시지가 1억 4500만 원, 공시지가의 1.5배인 보증보험(LH 전세임대주택은 보증보험이 의무 가입되는 안전한 물건에 대해서만 승인) 가입가 2억 1759만 원인 이 집의 실거래 전세가는 2억 2천만 원입니다. 매매가가 2억 3~4천인데 전세가가 2억2천으로 매매가에 육박하다 보니 처음에는 LH 권리분석에서 통과될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통과만 되면 LH를 통해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다고 믿어 권리분석을 요청했습니다.
걱정과 달리 LH 권리 분석이 통과되어 계약일(3월 10일)이 잡혔고 부동산에서 임대인과 LH 측 법무사 그리고 저희 부부가 한자리에 모여 일사천리로 계약했습니다. 법무사가 안내하는 대로 서명하고 도장만 찍으면 되었습니다. 법무사가 참석했기에 더없이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이날 계약금 2200만 원(10%)을 임대인에게 이체했습니다(신혼부부 전세임대Ⅱ는 전세금의 80%를 LH가 부담하고 계약금 포함 20%와 전세금 80%의 이자는 본인이 부담하는 제도입니다).
이상한 임대인... 불안해서 LH에 알렸지만
6일 뒤(3월 16일) 부동산에서 이상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계약한 집에 현재 거주 중인 세입자가 저희가 이체한 계약금 2200만 원을 임대인에게 받지 못했고 임대인과는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인중개사는 LH에 연락해 이 상황을 전달했고, LH 담당자는 3월 24일까지 임대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기존 세입자는 주택을 점유할 것인 만큼 내용증명을 보내 계약을 해지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3월 24일에 부동산에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임대인이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지만 딸이라는 사람이 세입자에게 500만 원을 입금했고, 세입자는 이사를 나가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LH에 다시 알리니 LH 담당자는 "임대인 측에 연락이 되는 사람이 생겼고, 500만 원이라도 이체해서 계약 이행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니 저희 쪽에서 계약을 파기할 경우 단순 변심에 의한 파기가 되어 계약금을 돌려받기 어려워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임대인의 딸이라고 주장하였을 뿐 증명되지 않았고 여전히 임대인은 저희의 계약금을 받고 연락 두절된 상태라 석연찮았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후 LH가 임대인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임대인은 LH측에 몸이 안 좋아 연락을 못했다며 잔금 지급일에 나오겠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심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희 부부는 부동산에 불안감을 토로했습니다. 이에 부동산이 LH에 전화했습니다.
아래는 4월 2일 통화 내용입니다.
부동산 = "잔금 지급일에 몇 시에 잔금을 보낼 건가요?"
LH = "11시~ 11시 30분 사이에 보낼 겁니다."
부동산 = "저희도 임대인이 오는 것이 안심이 될 것 같으니 (임대인이 온 것을 확인한 후) 저희와 통화하고 나서 잔금을 입금하는 방법이 가능한가요?"
LH = "잔금 담당자에게 여쭤볼게요, 잔금 지급일 당일에도 일찍 출근하니 다시 이쪽으로 연락주세요."
4월 8일 이사 날. 오전 10시 30분경 공과금 납부부터 모든 작업을 끝내고 이사 갈 집으로 출발하려는데 부동산에서 또 이상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임대인이 늦잠을 자서 2시간 정도 늦는다는 전화였습니다.
그간 임대인에게 신뢰가 가지 않아서 4월 2일 LH와 한 통화할 때 바로 계좌이체를 하지 말고 임대인과 부동산이 만나고 난 뒤에 잔금을 보내달라고 말했는데 하필 당일 늦잠을 잤으며, 늦어지는 시간이 정확히 LH 자동 전산 이체 이후인 점도 이상했습니다. 이에 부동산은 LH에 다시 연락했습니다.
부동산 = "임대인이 10시 30분에 오기로 했는데 늦어져 12시경 도착한다고 합니다. 임대인하고 만난 후 잔금이 지급되면 좋겠습니다."
LH = "잘 모르겠네요. 잔금은 잔금 팀에서 나가는 거여서. 11시~11시 30분 사이 일괄 지급되며 임대인 분은 돈 받고 도착할 테니 나머지 진행하면 됩니다."
부동산 = "이 임대인분이 연락이 안돼서 '애먹었던 건'이라는 것 기억하시죠?"
LH : "아니, 그래도 일단 임대인이 12시까지 온다고 했으니까 일단 기다리죠 뭐."
하지만 LH에서는 임대인이 나타나기도 전에 결국 잔금 1억 7600만 원까지 이체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잔금이 이체된 이후부터 임대인은 다시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이후 저희는 신고하려고 경찰서로 갔습니다. 경찰서에서 고소장을 작성하는 와중에 LH 담당자가 전화해 저희에게 "지금부터 잘 들으셔라. 다칠 수도 있겠지만 문을 부수고서라도 들어가 점유를 하셔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확정일자·전입신고·주거점유 3가지를 확보하라는 취지의 조언이란 것을 알지만 너무나도 화가 났습니다. 누군가 다치면 어떻게 할 것이며 저희보고 세입자의 주거를 침입하라는 것인데 법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주려고 그런 말을 하는지 황당했습니다(이 언사에 대해선 추후 담당자의 사과를 받았습니다).
'임대인이 연락이 안 된다', '임대인이 오면 잔금을 넣어줘라'라는 저희 부부와 부동산의 지속적인 언질과 만류에 '단순변심은 계약금을 보호받기 어렵고 계약파기 사유가 되지 않으니 진행하라'고 했던 LH였습니다. 그런데 LH의 잔금이 이체되니 이런 무리한 조언으로 피해를 막으라니요.
다음날 LH 측에서는 민·형사상의 고소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저희의 계약금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오갈 곳 없는 저희는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담당자는 "입주 예정이던 주택에서 30분 더 가야 하는 곳에 매입 임대주택이 있는데 최대 두 달간 머물 수 있으니 의사가 있다면 입주하라"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며 이마저도 '남들은 몇 개월을 기다려야 입주할 수 있는 것'이라며 도의적인 부분은 인정하지만 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들도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대응 매뉴얼이 없어 긴급회의를 열어 마련한 대책이라고 합니다.
저희가 아끼고 아껴 반 포장 이사로 진행해 지불한 이사비용이 58만 원이었는데 고작 두 달을 살려고 컨테이너에 맡긴 짐을 다시 이사 비용을 들여가며 임시 거처로 옮겨가 살라는데 황당해 말문이 막혔습니다.
지금도 제 카카오톡 광고 배너에는 LH 신혼부부 전세임대 모집 광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LH의 권리 분석과 법무사를 통해 계약을 진행했던, 저희의 실질적인 임대인인 LH로부터 제가 인도받기로 한 주택은 지금 어디 있는 것인지... 주택을 인도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제시된 방안이 온갖 추가 비용에 대한 보상은 고사하고, 인도받기로 했던 집에서 30분 떨어진 곳에서 월 임대료를 내며 최대 두 달 동안 임시로 기거하는 것뿐이라니.
LH가 임차인으로 계약서에 명시되다 보니 경찰 고소장 하나도 저희는 임차인의 신분으로 제출하지 못합니다. 더욱이 민·형사상의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답변을 받은 지 현재 약 2주가 되었는데 아무런 진행 절차에 대해 전달받은 바가 없습니다. 언론에 제보하고 국민신문고(상위기관인 국토교통부)에도 올렸으나 저희의 민원은 결국 다시 LH로 이관되었습니다.
다른 LH 담당자는 저희 계약 주택의 전세가와 매매가를 부동산으로부터 듣더니 오히려 그 전세가가 승인되었냐고 반문했습니다. 매매가 2억 3~4천, 전세가 2억 2천으로 매매가에 육박하는 전세가의 주택을 권리분석 승인하고 결국 이 사태가 벌어진 후에 한 질문이었습니다.
발뺌하는 LH
권리분석이나 법무사의 도움이 부동산에서 확인해주는 등기부등본상의 하자 확인과 동일한 수준이고, 사건 발생 전 이상한 정황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도 절차를 진행했으며, 피해 발생 시 적절한 대처는커녕 LH의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는, 결국 임차인의 권리조차 없는 제도라면 신혼부부들이 LH 신혼부부 전세임대 제도를 택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이번 일은 LH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닌 '부동산 사기' 입니다. 따라서 LH 전세임대가 아니었어도 이번 일로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다만 서울시 신혼부부 이자 지원 제도와 버팀목 제도 등 더 이자가 저렴한 제도가 있는데도 LH가 안전하리라는 믿음으로 저희처럼 LH 제도를 이용하시려는 분들은 한번 더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임대인 LH와 계약서를 작성했고, LH는 임차인의 자격으로 다시 임대인과 계약했습니다. 계약서상 임차인은 제가 아닌 LH이며 계약금 2200만 원은 '주택 인도받지 못할 경우 LH에 손해배상청구 할 수 없다'라는 LH의 불공정한 조항 때문에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저희는 기존에도 LH 신혼부부 전세임대 주택에 살았습니다. 2년 전 LH 계약서와 현재 계약서를 대조해 보니 추가 조항이 다수 생겼습니다. 그중 90%가 입주자 과실에 대한 의무 및 책임에 대한 조항입니다. LH의 의무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번 일로 한 언론사가 취재하자 LH는 "잔금 지연 이체 요청을 명확하게 받은 적이 없다"라고 황당한 답변을 했습니다. 또 "중개인으로부터 잔금 송금을 2시간 뒤로 미뤄 달라는 통화를 받고(10:23) 사실관계 파악 및 잔금지급중지 검토과정 중에 잔금이 지급(10:30)됨"이라고 공식 답변까지 보냈습니다.
사실 LH 담당자가 11시~11시 30분 사이에 일괄 지급한다고 하여 중개사가 임대인과의 약속을 10시 30분으로 잡은 것이었는데 이미 10시 30분에 잔금을 지급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발뺌하는 LH의 태도를 보고 나니 제도 개선이 될 거란 믿음조차 없습니다. 부디 다른 분들은 이렇게 매뉴얼과 보상대책조차 없는 제도에 너무 큰 믿음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저희가 겪은, 이런 유형의 사기 사건도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LH라는 공사의 제도가 안전할 것이라는 환상을 걷어내고 정말 확실한 부동산 거래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