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31 07:40최종 업데이트 21.03.31 07:40
  • 본문듣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9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부동산 부패 청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 적폐 청산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라는 단어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 단어를 다시 사용한 것은 'LH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단호함을 보임으로써 온 국민의 분노를 잠재워 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대통령이 지목한 적폐의 번지수가 틀렸기 때문이다. LH 사태는 국민의 분노에 불을 당긴 도화선일 뿐, '몸통'은 따로 있다. 그 '적폐의 몸통'을 청산하지 않고는 분노의 불길을 결코 잠재울 수 없을 것이다.


한 여론조사에서 LH 등 공기업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는 이전 정권부터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절반이 넘었다. 그런데 왜 LH 사태에 온 국민의 불같은 분노가 온전히 문재인 정부를 향하는 걸까?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여당을 심판하겠다는 의지가 맹렬하지 않은가.

정부·여당 심판론의 진원지

서울 시민의 절반 이상은 무주택자다. 그들이 집값 폭등으로 겪는 고통은 필설로 형용하기 어렵다. 무주택 가구의 가장들은 밤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받는다.

회원 대다수가 무주택자인 <집값 정상화 시민행동> 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읽다 보면 가슴이 먹먹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이 한순간에 부정 당하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의 심정이 어떠할지 상상해 보라. 죽을 때까지 내 집을 갖지 못할 거라는 절망감이 주는 공포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30대가 내 집 마련의 꿈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때 느끼는 절망감은 또 어떤가?

이런 절망과 고통은 문재인 정부 이전에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다.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이 6억원이었고, 강북에는 2억~3억원이면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수두룩했다. 집값을 하락시킬 거라고 굳게 믿었던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폭등시켰으니 무주택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한 것이 당연하다.

청와대와 여당은 집값 폭등이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을 한다. 이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탓하기도 하고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 등 외부 요인을 원망하기도 한다. 진보성향 신문과 공영방송들도 이런 주장에 슬며시 동조하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한다. 청와대와 여당은 이런 편파적 보도를 민심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의 삶의 가장 절실한 문제이자 극심한 고통을 안기는 집값 폭등에 대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4년 넘게 집값 폭등을 경험하면서, 정부가 25번이나 대책을 발표했는데도 폭등이 멈추지 않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원인이 무엇인지 깊이 탐구하고 숙고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원인을 알고 있다.

민심을 살피지 않는 부동산 대책
 

민중공동행동 대표자들은 지난 16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앞에서 'LH사태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대통령의 '부동산 적폐 청산' 발언을 믿을 수 없다'며 '말잔치가 아닌 행동을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 ⓒ 권우성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는 집값 폭등 원인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어떤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쿠키뉴스>의 의뢰로 지난 22일 데이터리서치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여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 3.1%p)에서 '다주택 임대사업자 세금특혜 폐지'에 찬성하는 사람이 46.3%로 반대 38.7%를 오차범위 밖으로 앞질렀다.

더 흥미로운 점은 문재인 정부가 뒤늦게 추진하려는 주택공급 정책에 대한 국민의 생각이다. '주택공급 확대'보다 '다주택 임대사업자의 보유주택 매도'가 더 효과적인 공급정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 50.2%였다.

서울에만 50만 채의 임대주택이 등록돼 있다. 2·4대책에서 서울에 공급하겠다는 32만 채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게다가 2·4대책은 실제 공급까지 10년이 걸리지만, 임대주택 매물은 당장 시장에 공급된다. 임대사업자가 소유한 주택을 매도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공급대책이란 사실을 일반 국민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은 그 특혜를 폐지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 같다. 지난 2월 17일 열린 국무회의는 종합부동산세법 시행령 제3조(합산배제 임대주택)를 개정했다. 제3조는 임대사업자가 등록한 주택에 종부세를 비과세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전국에 등록된 160만 채, 서울에만 50만 채 임대주택의 대부분이 '종부세 0원'인 것도 제3조에 근거한다. 그런데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이 조항을 폐지하기는커녕 종부세 비과세 대상을 더 확대했다. (관련기사 : "집값 명운 걸라" 했건만... 건설사까지 종부세 특혜 확대)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심과 정반대의 정책을 대통령이 주관하는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것은 실로 경악할 만한 사건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부·여당 심판론의 원인이 집값 폭등이란 사실과 그 집값 폭등의 근본 원인이 주택임대사업자 세금특혜라는 사실을 진정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국민 분노의 불길에 정권을 내맡길 건가
 

서울 강남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 연합뉴스


<집값 정상화 시민행동>은 지난 28일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여당·고위공직자의 직계존비속과 형제들 중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여 엄청난 세금특혜를 누리는 자들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대통령과 여당에 요구했다.

작년 11월과 12월, 올해 2월 이 단체는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일한 요구를 했었다. 돌아온 답변은 실로 기가 찬 내용이었다. 지난 2월 15일 기획재정부가 보내온 답변은 "세무공무원의 비밀유지 의무, 개인정보 침해 등의 요인을 고려하여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는 사항"이라는 게 전부였다.

50만명에 달하는 임대사업자 전체 명단의 공개를 요구한 것도 아니고,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의 내부자 중에서 엄청난 세금특혜를 누리는 자들의 명단 공개를 거부했다. 박범계 법무장관의 배우자가 주택임대사업자라는 사실도 인사청문회가 아니었으면 영원히 비밀로 남았을 것이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민심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대통령의 "부동산 적폐" 발언은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심 악화를 돌려보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집권세력이 무주택 국민의 고통을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가 많다. 아예 관심이 없는 것도 같다. 집값을 폭등시킨 가장 큰 원인이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세금특혜라는 사실은 일반 국민도 알고 있는데 정책은 반대로 가고 있다.   

진정 민심 이반을 두려워한다면 가장 먼저 부동산 적폐의 몸통인 주택임대사업자 세금특혜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 그것이 폭등한 집값을 원상회복시킬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적폐의 몸통을 청산하여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지, 아니면 그 분노의 불길에 자신을 내맡길지는 대통령과 여당의 결단에 달렸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