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수권 남자 개인종합 우승 임효준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린 2018-201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자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한 임효준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입국장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임효준 ⓒ 연합뉴스

 
한국 쇼트트랙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임효준이 최근 중국으로 귀화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며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임효준은 오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태극마크 대신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달고 빙판에 설 전망이다.

임효준은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 스타 계보를 잇는 선수중 한명이었다. 평창올림픽에서 남자 1500m 금메달과 남자 500m 동메달을 목에 걸며 에이스로 활약했다. 하지만 지난 2019년 6월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웨이트트레이닝 센터에서 훈련 중 장난으로 대표팀 후배 선수의 바지를 잡아당겨 신체 부위를 드러나게 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후배 선수는 임효준을 강제추행 혐의로 고발했다.

임효준은 이 사건으로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선수 자격정지 1년을 받았고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재판에서 2020년 3월 열린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구형받고 40시간의 성폭력치료 이수 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같은해 11월 열린 2심에서는 임효준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원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임효준이 반바지를 잡아당긴 행위는 인정되지만 이는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를 일으킨다고 보기엔 의심스러우며 추행의 고의성을 판단하기에는 미흡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 측에서 판결에 불복하여 상고하여 3심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임효준은 재판 기간동안 중국 빙상경기연맹의 귀화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효준의 입장에서는 선수생활 연장을 위하여 부득이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차기 동계올림픽 출전을 노렸던 임효준은 현재 국내에서는 징계와 재판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 정상적인 선수활동이 불가능하다. 임효준은 성추행 사건의 여파로 지난해 소속팀 고양시청과 재계약이 불발되었고 대한빙상연맹으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못하여 개인 훈련만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빙상계와 팬들에게는 여러모로 씁쓸한 장면이 아닐수 없다. 임효준의 중국 귀화는 역시 한국 쇼트트랙 간판 스타로 활약하다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의 데자뷰를 떠올리게 한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 3관왕 안현수는 부상 등으로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자 러시아로 귀화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는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하여 3관왕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부활한 바 있다.

현재 빅토르 안은 중국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맡고 있다. 총감독도 평창올림픽 한국대표팀의 사령탑이었던 김선태 감독이다. 이런 배경도 임효준의 중국 귀화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한국 쇼트트랙의 인력과 기술을 그대로 흡수하겠다는 중국의 야심을 읽을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간판 선수를 잃을 것은 넘어서 기술과 정보 유출에 대한 부담까지 안게됐다. 차기 동계올림픽에서 홈어드밴티지까지 안고있는 중국은 한국 쇼트트랙의 최대 장애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임효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올림픽 출전과 선수생활 연장을 위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애초에 모든 사태의 원인은 본인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2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임효준이 동료선수에게 수치심을 줄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임효준 때문에 한국 쇼트트랙의 이미지에는 불명예스러운 오점만 남겼고, 정작 본인은 상황이 불리해지자 도피에 가까운 귀화를 선택했다.

물론 귀화 자체가 손가락질받을 일은 아니다. 올림픽같은 메이저대회 출전을 위하여 귀화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흔한 일이며 한국도 많은 귀화선수를 받은 일이 있다. 하지만 임효준처럼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구설수에 올라 선수생활이 막히게 되자, 개인의 영달을 위하여 국적까지 포기한 사례는 그 성격이 다르다. 한국인들에게 태극마크가 어떤 의미인지 감안하면 임효준에게 느끼는 실망과 배신감이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필 귀화의 대상이 중국이라는 것도 예민한 부분이다. 최근 '김치공정'이나 '한한령' 'BTS 6.25발언 논란' 등으로 국내에서 반중정서가 점점 높아지고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일반적인 귀화도 아니고, 심각한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켜 곤란한 상황에 놓여있던 사정을 틈타 접근하여 경쟁국가에서 유명 선수를 빼내가는 행위는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임효준을 고발했던 후배 선수를 비난하거나 빙상연맹의 징계가 과한게 아니었냐는 반응도 조금씩 나온다. 하지만 엄연한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2차 가해가 될수 있다. 당시 빙상연맹이 임효준에게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다면 그또한 여러 가지 논란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임효준은 대한민국 선수가 아니다. 굳이 그를 더 이상 동정하거나 이해해줘야할 이유는 없어보인다. 오히려 쇼트트랙을 비롯한 한국 빙상계 전체가 이번 사태를 통하여 한층 더 위기의식을 느끼고 각성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한다.

최근 몇 년간 빙상계는 파벌문화, 폭행, 갑질, 따돌림 등 그간의 화려한 외형적 성공에 가려진 수많은 문제점들이 잇달아 드러나고 있다. 임효준만이 아니라 수많은 선수와 지도자, 전-현직 관계자들까지 구설수에 오르내리며 팬들에게 실망을 남겼다. 이미 날아간 화살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제 2의 임효준, 제 3의 빅토르안 같은 사태가 더 이상 되풀이되지않도록 결과와 과정이 모두 감동을 줄 수 있는 스포츠로 한국 빙상계가 거듭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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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준 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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