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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정부가 서울 등 대도시의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공공이 직접 시행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추진한다. 역세권·준공업지역·저층주거지에 대해선 정부가 직접 지구지정을 하고 공공기관이 사업을 이끄는 공공주택 복합사업이 시행된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재개발 상담 관련 등의 내용이 적힌 모습.
 정부가 서울 등 대도시의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공공이 직접 시행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추진한다. 역세권·준공업지역·저층주거지에 대해선 정부가 직접 지구지정을 하고 공공기관이 사업을 이끄는 공공주택 복합사업이 시행된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재개발 상담 관련 등의 내용이 적힌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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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장기투자'는 일종의 성공 공식입니다. 널리 알려진 공식이지만, 어떤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투자를 계속 이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던지고 나갈' 유혹을 버티는 자가 최종 승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동산 투기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재건축 아파트를 갖고 끝까지 버티던 투기꾼들에게 4일 낭보가 전해졌습니다.

공공재건축 사업에 대해선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면제해주고, 2년 실거주 요건도 충족하지 않아도 재건축 아파트 우선공급권을 준다는 주택 공급 대책이 나왔습니다. 현재 기대 수익보다 더 많은 재건축 이익을 '정부가 보장한다'는 파격적인 보증서까지 내밀었습니다.

이는 재건축 시장에서 호재 중 호재입니다. 현 시점에서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함박웃음 짓게 하는 대책입니다.

대못 뽑는 데 성공한 투기꾼들

먼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부터 살펴볼까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 투기꾼들에겐 '대못'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 제도는 개발비용을 빼고도 재건축 수익이 과도하게 나올 경우, 정부가 부담금을 부과해 회수하는 제도입니다. 좀 더 정확히 설명하면 재건축 수익이 인근 주택가격 평균 상승분과 개발 비용을 빼고도 3000만원 이상(가구당)이 남을 경우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수익에 따라 최대 50%까지 정부가 환수합니다. 부동산으로 앉아서 돈 버는 불로소득을 차단하는 장치 중 하나입니다.

이 제도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도입된 제도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건설 경기를 살려야 한다"며 지난 2012년 12월부로 이 제도의 시행을 한시적으로 미뤘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18년 1월부터 다시 부활했습니다.  당연히 투기꾼들의 반발은 거셌고 위헌 소송까지 이어졌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9년 12월 '합헌' 결정을 내려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초과이익환수제 흔들기는 계속 돼 왔습니다. 

그런데 이날 발표된 주택 공급 대책에서는 공공재건축 사업에 참여하면 초과이익환수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투기꾼들이 투기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게다가 재건축 아파트에 적용하기로 돼 있는 2년 실거주 요건도 충족하지 않아도 됩니다. 즉 은마아파트 소유자들도 더 이상 "녹물 먹어가면서" 버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은마아파트 등 낡은 아파트에 투자한 투기꾼들은 이제 펜트하우스로 이사해 전월세 받아가면서 느긋하게 기다리면 됩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날 브리핑에서 "공공이 시행하는 사업이라서 초과이익환수제를 면제해준다"고 답했는데, 공공 사업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업은 공공이 하고, 돈은 투기꾼들이 먹는 사업이 공공사업인가요?

초과 수익 보장해 준다는 정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 방안 당정협의에 입장하고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 방안 당정협의에 입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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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이 아닙니다. 정부는 "기존 방식의 재건축 기대 수익보다 10~30%p 이상의 수익을 보장한다"고 공언했습니다. 은행 예금통장도 5000만원 이상은 원금을 보장하지 않는 정부가 재건축 투기꾼들에게 수익을 보장해주겠다고 보증서를 써준 것입니다. 아무리 주택 공급이 시급하다고 해도 국민 세금으로 투기꾼 이익을 보장해주겠다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는 용적률 상향을 통해 확보되는 물량의 일정 부분을 환수해 공공주택으로 공급하겠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인 수치는 사업지별로 따져봐야겠지만, 투기꾼 수익을 철저히 보장해주고 남는 공공주택은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까요? 용적률 상향 등에 따른 상당 부분은 투기 수익 확보에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료에는 이번 대책으로 공급되는 83만호 가운데 공공주택은 구체적으로 몇 호인지 제대로 집계가 안 돼 있습니다. 정부가 재건축 이익을 현재 기대 수익보다 높여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한다고 해도 이들 공공주택 가격이 정말 서민들이 부담가능할 정도로 저렴하게 나올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대책에는 '부담 가능한' 공공 주택이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20~30대 신혼부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6억~7억원대 신혼희망타운을 분양하고 '시세보다 저렴하다'고 했던  전철을 밟을까 우려됩니다. 이번 대책 자료의 14페이지를 보면 '9억원 이하 특별 공급 비중'을 늘리겠다고 했는데, 분양가를 9억원 가까이 책정해 놓고 시세보다 싸다고 우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기우이길 바랍니다.

최종 승자
 
정부가 25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4일 서울 한 부동산중개업소에서 공인중개사가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정부는 서울 등 대도시의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공공이 직접 시행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추진한다. 2025년까지 서울에만 32만호 등 전국에 83만6천호의 주택을 공급을 목표로 한다.
 정부가 25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4일 서울 한 부동산중개업소에서 공인중개사가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정부는 서울 등 대도시의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공공이 직접 시행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추진한다. 2025년까지 서울에만 32만호 등 전국에 83만6천호의 주택을 공급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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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들고나온 이번 주택공급 대책의 진정한 승자는 현재 재건축 아파트와 재개발에 지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투기는 용납하지 않겠다"던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의 말을 듣지 않고 잘 버티면서 부지런히 땅을 사들인 덕분입니다. 종합부동산세 오르는 거야 기대 수익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니 그냥 내면 됩니다. 투기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일찌감치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종부세를 면제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들은 지난 2017년부터 오랜 기간 '투기 세력'이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서, '집을 팔라'는 압박에도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끝까지 버텼고, 결국 정부 보증 아래 재건축 수익을 챙길 수 있게 됐습니다. 

정부가 나름대로 투기를 막겠다는 여러 방책을 내놓긴 했습니다. 정부는 대책이 발표된 4일 이후 사업 대상지역에서 부동산을 매매하면, 우선입주권을 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날 이후 투기 목적으로 집이나 땅을 산 사람은 사업 시작 시점에 현금 청산을 해야 합니다. 현금 청산을 하더라도 아마 토지 가격이 상승한 것 만큼은 챙겨갈 수 있겠죠. 

때문에 서울을 비롯한 대도심에 개발 기대감이 커지면서 일대 주택이나 토지는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입니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실망감을 나타내던 건설업계와 부동산 업계에서 환영 일색의 반응이 나온 건 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은행에서 고객들을 상대로 부동산 투자 자문을 해주는 한 관계자는 "분명한 호재"라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역세권은 물론, 서울 강북을 중심으로 매매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더군요. 이 관계자의 말을 그대로 옮겨오면 이렇습니다.

"서울 강북 지역에선 수익성이 나오지 않아 고민하던 아파트들이 많았는데, 공공재건축 참여하면 그런 고민이 사라지게 되면서, 가격도 상승할 겁니다. 2년 실거주 요건도 강남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고민이었는데 그런 고민 역시 사라졌습니다."

정부의 건투를 빌 뿐

정부의 의도는 멈추지 않는 주택 가격 상승에 겁먹은 3040세대에 시세보다 저렴한 분양주택을 대거 공급하겠다는 분명한 신호를 줌으로써 이들의 '패닉바잉'을 진정시키겠다는 것이겠죠. 이를 통해 당장의 주택 매입 수요를 줄여 집값 안정도 이루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실제 지난해 5월 정부가 파격적 특혜를 통해 주택 공급 물량을 늘리겠다는 공공재개발 정책을 발표한 후, 서울 지역 다세대·빌라 주택 가격은 지난해 6월부터 6개월째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대책이 차질 없이 시행된다 해도 실제 주택 공급까지는 적어도 5년이 걸립니다. 이 기간동안 서울 등 대도심 안에서 일어날 개발 열풍이 집값의 추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시장을 제어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정부의 건투를 빕니다. 

태그:#공급, #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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