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지금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스케치 하나를 본다. 들판의 나무가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그림이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와 이파리는 산발한 머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무는 땅에 뿌리를 박고 굳건히 서 있다. 한눈에 봐서는 대충 그린 그림 같지만 비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나무가 얼마나 잘 버티는지를 느낄 수 있다.

주정뱅이 창녀 시엔과 일 년 반 남짓 사귀다 헤어진 고흐는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산책하러 나갔다. 산책길에서 고흐는 거센 비바람을 맞았다. 이 비바람이 고흐에게 위안을 선사했다. 아니, 비바람이 아니라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나무가 그에게 위안을 주었다.

1983년 9월 중순,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썼다.

"혼자 산책을 했어. 거센 비바람을 맞고 서 있는 나무를 보았지. 비할 데 없이 씩씩해 보이더구나. 주변 오두막과 모든 것이 다 비바람에 쓰러졌는데 그 나무는 씩씩하게 버텨내더라. 그걸 보고 느꼈지. 아무리 평범한 인간이라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 낸다면 그 내면에 비범함이 있다는 걸."
  
거센 비바람을 맞고 꿋꿋하게 서있는 나무 스케치
▲ 비바람이 치는 들판  거센 비바람을 맞고 꿋꿋하게 서있는 나무 스케치
ⓒ 반 고흐 미술관

관련사진보기

 
고흐는 천재형 예술가가 아니다. 남겨진 기록으로 알 수 있다. 독학으로 그림을 익힌 그가 초기에 보여준 다작 노력은 놀랍다. 10년 동안 86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가 남긴 걸작 대부분은 생애 마지막 2년 동안에 완성되었다. 이 기간에만 400여 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니 고흐는 지독하게 노력하는 예술가였다.

어떻게 해냈을까. 창조할 때 생겨나는 즐거움과 환희를 그 보상으로 받았을까. 나 같은 사람은 고흐처럼 하긴 어렵다. 하지만 고흐가 그린 그림을 보며 나는 일말의 위안을 얻는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다. 햇살, 해바라기,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 거친 손, 별이 빛나는 밤하늘, 바람에 흔들리는 삼나무, 고흐는 자연이 선사하는 이런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들을 울림을 주는 예술로 승화시켰다. 거센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지금 나를 위로한다. 비바람에 굴하지 않고 버티는 나무의 모습이 내게 힘을 준다.

태그:#빈센트 반 고흐, #나무, #비바람, #고통과 위안, #스케치
댓글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미술애호가, 아마추어화가입니다. 미술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씁니다. 책을 읽고 단상글을 쓰기도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